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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평점 :
김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은 갓 구운 소금빵의 겉바속촉한 비주얼과 짭조름한 풍미를 완벽하게 복제한 식용 애벌레 '빵충'이라는 미친 설정으로 시작해, 벼랑 끝 청년의 생존 투쟁과 인간의 터져 나가는 탐욕을 기쾌하고 뻔뻔하게 그려낸 신개념 코믹 크리처 서스펜스다. 한때 망할 놈의 음악을 한답시고 트럼펫을 불며 폼 잡다가 밑바닥을 치고 시골로 튕겨 나온 주인공 정한은, 인생 막판 뒤집기로 전 재산을 털어 정부 지원 신산업인 '빵충 사육'에 영끌 투자를 감행한다. 꿈틀거리는 빵충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대박을 치고 통장에 찍히는 대기업급 숫자를 보며 정한은 마침내 흙수저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고 착각하지만, 이 기묘하고 맛있는 애벌레를 안전하게 키우려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사육 준수 사항'이라는 룰북이 존재한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더 살찌우고 크게 키워 거액을 벌어들이려는 사육자들의 눈먼 탐욕과 "설마 별일 생기겠어?"라는 안일함이었다. 경고를 씹고 하나씩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자, 소설은 씁쓸한 짠내 나는 청년 잔혹극에서 한순간에 약을 사정없이 판 듯한 엽기 크리처 난장판으로 대폭주한다. 귀여운 소금빵 코스프레를 벗어던진 빵충들은 식인 성향을 드러내며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모하고, 사육장은 단숨에 코믹과 비명이 난무하는 헬게이트로 변한다. 이러한 설정과 서사 구조는 1904년 발표된 H. G. 웰스의 고전 SF 소설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를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하게 연상시킨다. 웰스의 소설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신물질 '허클라 물질'이 연구자들의 부주의와 관리 소홀로 유출되어 쥐와 닭, 곤충들을 공포의 거대 크리처로 탈바꿈시키고 끝내 기존 문명의 질서를 위협했던 것처럼,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역시 인간의 오만함과 방심이 초래한 생물학적 파국이라는 거대한 장르적 계보를 잇는다. 웰스가 20세기 초 과학기술의 폭주와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문명론적 풍자를 보여주었다면, 김혜영 작가는 이 영리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 생존 투쟁, 자본주의의 날것 그대로인 욕망, 그리고 B급 매운맛 감성으로 완벽히 재해석해 냈다. 작가는 황당무계한 세계관을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취재력과 디테일한 묘사로 밀어붙여 독자에게 웃기면서도 가슴 졸이는 고밀도의 도파민 폭탄을 안긴다. 그러고 보면 작품 속 '사육 준수 사항'은 단순한 벌레 키우기 매뉴얼이 아니라, 웰스의 소설 속 통제력을 잃은 인간 사회처럼 자본주의라는 미친 굴레 속에서 인간이 최소한 짐승이나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의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파국이 몰아쳐 사육장이 개판 오분전이 된 와중에도 도망치는 대신 자기가 싼 똥을 치우고 과오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나서는 정한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돈이 안 된다며 던져버렸던 그 망할 놈의 예술이, 역설적이게도 지옥 같은 파국 속에서 그를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남게 만드는 유일한 가오이자 영혼의 방파제가 되어준 셈. 소금빵 탈을 쓴 애벌레가 선사하는 골 때리는 웃음과 서늘한 스릴, 그리고 삭막한 자본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건져 올린 것이 결국 예술이었다는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역설ㅋ 깊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