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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매 - 어느 사랑 이야기 ㅣ 쏜살 문고
글렌웨이 웨스콧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글렌웨이 웨스콧의 소설 <순례자 매>는 192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정적이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인물들의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 숨은 걸작이다. 미국인 작가인 주인공 알윈은 친구의 저택에 머물던 중 예기치 못한 손님인 아일랜드 출신의 부유한 귀족 컬런 부부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들의 방문은 부인이 손목에 얹고 나타난 스페인산 암매 '루시'로 인해 시작부터 기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소설은 이 매를 매개로 하여 인간 관계의 가장 깊은 바닥에 자리한 소유욕과 지배욕,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컬런 부인은 매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사랑은 매의 야생성을 거세하고 가죽 끈으로 묶어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이기적인 집착에 가깝다. 반면 남편인 컬런 씨는 아내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한 이 동물에게 깊은 혐오감과 질투를 느끼며, 동시에 매의 발목에 묶인 끈을 보며 아내에게 종속되어 자유를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자유로운 독신 생활을 지향하는 관찰자 알윈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들 부부가 나누는 사소한 눈빛, 신경질적인 대화, 그리고 매를 둘러싸고 벌이는 양보 없는 심리적 대치 상태를 제3자의 눈으로 냉철하게 포착해 낸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는 상류층 부부의 일상이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고 길들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칼날을 겨누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 미소 지으며 생살 할퀴는 심리 묘사 기존쎄고, 매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굶주린 눈빛을 감각적이고 밀도 높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맹목적인 구속의 본능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구현하는 솜씨 아득하다..아.... 여튼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뒤에 숨겨진 잔인한 지배욕을 폭로하는 동시에, 타인에게 얽매인 삶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구속이 주는 안정감으로 되돌아오고 마는 인간의 모순적인 심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이 숨 막히는 관찰기는, 읽는 이에게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늘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약 100 페이지 남짓으로 분량이 짧은데 그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요것도 다 하는 기막힌 필력이 가히 압권. 매..매 라니 우리집 베란다에 매형이 왔어요의 그 매를 데리고서 아니 이런 얘기를?!? 여튼 진짜 정말 여러가지로 굉장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