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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지옥 같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러시아 전선, 독일군 병사 에른스트 그레버는 하루하루가 말년 병장보다 더 끔찍한 말기 군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야.. 기적적으로 3주간의 특별 휴가가 나온거다. "나 돌아간다!" 외치며 룰루랄라 고향에 도착했는데, 띠로리.. 고향 집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 길 없는 황망한 상황에서, 도시 전체는 나치즘의 광기와 "쟤가 간첩이냐, 얘가 밀고자냐"를 시전하는 불신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지옥이 되어 있었던 것. "전쟁터나 고향이나 ㅅㅂ..." 멘붕에 빠진 그레버 앞에 구세주처럼 옛 동창 엘리자베스가 나타난다. 폐허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며 "어차피 내일 폭격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할 일을 하쟈"라며 초고속 결혼 도장을 찍어버린다. 식량 배급 줄에 서서 연애하고, 방공호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로맨스를 찍는 이들의 모습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억까 시스템에 맞서 "우리는 부품이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온몸으로 우기는 아름답고도 슬픈 저항 같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순식간인 법.. 달콤했던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그레버는 다시 지옥 같은 러시아 전선으로 복귀하라는 영장을 받게 된다. 고향에서 사랑을 배우고 인간성을 가득 리필해 간 그레버는 이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게 된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적 결단이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에게, 곧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절대적인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과연 사랑을 알고 돌아온 병사는 이 미쳐버린 전쟁터에서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힘들 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 같다. 레마르크의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필체는 독자에게 묵직한 반전(反戰) 메시지와 함께,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과 사랑이 얼마나 기적 같은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PS.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힘들 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조금 더 생각해 보쟈ㅋ 인간성이 말살된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거대한 사상이 아니라 평범하고 '연약한 것들의 연결'이다. 첫째, 내가 기계의 부품이나 숫자로 전락할 때 나를 존엄한 존재로 바라봐 주는 '타인의 눈동자'가 있다면 인간은 버텨낼 힘을 얻는다. 둘째, 누군가를 지키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랑과 온기'는 본능만 남은 동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며 내일을 살아갈 강력한 동력이 되고. 셋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바탕으로 한 '계산 없는 선의'는 시스템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결국 구원이란 거대한 힘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아주 작고 개인적인 선택들의 연속이 아닐까.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내일을 꿈꾸는 연약한 마음들이 모여 끝내 인간을 구원해 내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