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야구'라는 단어가 사전 속 박제된 사어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미래 혹은 평행세계를 배경으로 문학의 전통적 문법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념비적 띵작이다ㅋ 현실의 대중적인 스포츠로서의 야구는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세상의 변두리에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직 남아있는 기록의 파편만을 쫓으며 자신들만의 기괴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야구를 재정의하고 맹신하는 괴짜들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황당한 설정을 발판 삼아 선형적인 기승전결이나 일관된 주인공을 과감히 거부하고, 인과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단편과 기묘한 에피소드를 콜라주처럼 직조해 낸다. 작품 속에는 프란츠 카프카가 사실은 열정적인 포수 지망생이었을 거라 믿으며 평생 야구 기록을 수집해 온 노인,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하루에 야구 시 900편 쓰기와 포르노 비디오 100편 보기라는 황당하고 무의미한 고행을 견뎌내는 소년, 공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잘 보여서 도저히 배트를 휘두를 수 없다는 타자나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매료되어 슬럼프에 빠진 투수 등 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적 고뇌에 빠진 인물들이 나온다. 작가는 이처럼 야구라는 프레임을 빌려 근대 소설의 고루한 문법과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독자의 강박을 사정 없이 깨부순다. 말장난과 저속한 포르노그래피, 지적인 철학적 인용을 무차별적으로 뒤섞으며 현대 문학은 결국 기존 정보의 패러디이자 재구성에 불과하다는 냉소를 던진다. 그러나 형식의 난해함 속에서도 작품 전체를 감싸는 정서는 제목 그대로 지독하게 우아하고 감상적이다. 무언가 소중한 가치가 상실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쓸쓸함과 무모한 집착을 독특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리고 독특한 유머 코드. 이 책의 백미다. 이 소설은 개연성과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중시하는 정통 소설파 독자에게는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불친절한 공 같겠지만, 플롯의 결말보다는 읽는 과정의 파격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문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문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PS. 약 nn여년 전, 이미 읽은 책인데, 요즘 문득 생각나 다시 사 봤다. 사실 그 때는 첫 장을 펼치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대충 모자이크로 훑고 덮었던 것 같다. 플롯도 없고, 맥락도 없이 불친절함을 넘어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가까웠던 책.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퉁쳤던 책. 그런데 세월이 흘러 수많은 파격과 다양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지금, 그리고 인생의 여러 상실과 쓸쓸함을 통과해 온 지금 다시 읽으니 감회가 완전히 새롭다ㅋ 예전엔 그저 난해한 말장난으로만 보였던 문장들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것들을 향한 우아하고 애틋한 서정시로 읽힌다. 이 소설 속 괴짜들은 세상 모두가 "야구가 뭔데? 먹는 거야?" 하고 비웃고 무관심할 때, 사전 속 사어가 되어버린 '야구'라는 유령을 붙잡고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쳐 맹훈련을 한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뻘짓이고 미친 짓인데, 그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몰두가 주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풍파를 겪다 보면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남들 눈치 보느라 가성비 없는 열정은 스스로 접어두게 되잖나. "내가 지금 이걸 해서 무슨 쓸모가 있나" 하면서. 그런데 이 소설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노인과 철학에 빠진 투수의 입을 빌려 툭 던진다.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네 영혼을 불타게 했던 그 아름다운 야구(낭만, 꿈, 사랑, 혹은 청춘)를 벌써 잊어버린 거야?" 하고. nn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친 내 마음 한구석에도, 세상은 잊었을지언정 나만은 결코 놓고 싶지 않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무언가'가 여전히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문득 다시 생각난 게 아닐까. 내가 마지막까지 쥐고 가고 싶은 나만의 '야구'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