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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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은 책을 덮은 후에도 서늘한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환상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이 소설을 두고 “완벽한 작품”이라 극찬한 이유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실감할 수 있다. 최대한 스포 없이 이 책이 주는 독특한 문학적 울림과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이 소설은 고독의 극단에 몰린 한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포착한다. 박해를 피해 외딴 무인도로 도망친 주인공은 생존의 위협보다 더 무서운 지독한 외로움과 마주한다. 그러던 중 섬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휴양객들과 그중 한 여인인 ‘포스틴’을 보며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무척 입체적이다. 신분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필사적인 갈망이 주인공의 일기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눈앞에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주인공의 기괴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소외감과 지독히 닮아 있어 서글픈 공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집필된 시기가 1940년이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첨단 기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을 시대에, 오늘날의 가상현실(VR)이나 메타버스, AI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섬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반복적인 현상들과 과학자 모렐의 등장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타임루프물의 시초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작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미로 같은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영적이고 철학적인 거울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포스틴을 향한 주인공의 애절한 시선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포스틴은 실제로 소통이 불가능한, 어쩌면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해 멈추지 않는 마음을 보며,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과연 그 사람의 ‘진짜 실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완벽한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 <모렐의 발명>은 가벼운 SF 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영원에 대한 집착, 소멸에 대한 공포, 그리고 환상 속에서라도 구원받고 싶어 하는 나약함을 우아하고 차가운 필치로 그려낸 철학적 마스터피스다. 스포일러 없이 이 책을 펼친다면, 섬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짜릿한 지적 전율과 함께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PS. 이쯤에서 생각나는 소설 하나가 있는데, 허버트 조지 웰스<모로 박사의 섬>이다. 두 작품은 모두 ‘외딴섬’ 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괴한 실험이 벌어지고, 그것을 관찰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문학적 연결고리를 가진다. 가장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두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이름으로, 비오이 카사레스는 웰스의 ‘모로 박사(Dr. Moreau)’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를 담아 자신의 주인공 과학자 이름을 ‘모렐(Morel)’로 지었다고 한다. 발음과 스펠링 모두 의도적으로 닮아 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지적 도취를 위해 타인의 고통이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냉혹한 천재들이라는 점과 모두 과학자의 이기적인 발명(실험) 때문에 피조물들이 비극을 맞이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모로 박사의 섬>(1896)이 19세기 말 생물학의 발전에 따른 육체적·생물학적 공포(축축한 동물성)를 다루었다면, <모렐의 발명>(1940)은 20세기 중반 기술 발전에 따른 건조한 정신적·존재론적 고독(건조한 가상현실과 환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것이라 하겠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웰스가 다진 SF적 토대 위에 '사랑'과 '인식론'이라는 문학적 아름다움을 더해 <모렐의 발명>이라는 독창적인 걸작을 완성해 낸 것이다. 웰스의 거친 상상력이 카사레스에게 건너가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고 서글픈 로맨스로 재탄생 했는지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당긴다면 두 책 모두 추라이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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