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기에언제나 주먹을 꼭 쥐고 뛸 수만은 없다. 때론 걷다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최선보다는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해본다. - P15
조건을 따지다 보면 마음먹고 의자에 앉는 것조차 쉽지않다. 사실 ‘완벽한 글‘이란 ‘완벽한 사람‘만큼이나 허무맹랑한 말이란 걸 알고 있다. 좋아하고 욕심나는 만큼 조심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노트북도 열지 않고 걱정만 하는 것이무슨 소용일까. 0에는 무엇을 곱해도 0일 뿐인데. 이런 내가 글쓰기에 대한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실천한 루틴을 소개한다. 미국의 SF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자신이가장 글을 잘 쓸 수 있는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났고, 최초의 여성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해리엇 마티노는 자리에 앉은 첫 25분은 무조건 쓰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완벽할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일단 자신에게 맞는 루틴을 정하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한다는 것이그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 P28
* 적어도 3일에 한 번은 쓰기감을 놓치면 흐름을 잡기 쉽지 않다. * 보통 일은 집에서 하지만 글만큼은 밖에서 쓰기잡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기 위함이다. * 자리에 앉으면 딴짓하지 않고 최소 20분은 쓰기소셜미디어에 한 번 접속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특히쇼츠를 주의할 것. * 추후에 수정하더라도 오래 고민하지 말고 일단 쓰기가장 중요!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 자체적인 마감 기한을 실제보다 빠듯하게 잡기위대한 업적을 위해서는 계획과 적당히 빠듯한 시간이필요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쓰지 않기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 술 마시고 쓰지 않기다음 날 후회한다. - P29
요가매트 위에서 내 맘대로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 책장을 뒤엎고 나만의 분류법을 만들어 보는 시간. 섬유유연제 잔향을 맡으며 빨래를 차곡차곡 개는 시간. 방금 다 본 영화를 또다시 재생하는 시간. 눈대중으로 했지만 완벽하게 간이 맞는 볶음밥을 먹는 시간. 내가 지닌 가장 비밀스러운 생각들을 글로 써보는 시간. 내가 시처럼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으레 이런 것이다. 누구도 아닌 내가 애정하는 것으로 채우는 시간. 남들은 시간을 죽이는 일이라며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행복한순간.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요즘 즐거운 일이 없다는 내 말에 누군가는 행복에서 중요한 것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이야기를 해줬다. 한 번의 큰 행복보다 일상 사이사이를 채우는 소소하고 작은 행복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그러니 특별하지 않더라도 내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 무언가를찾으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사실 나는 그 무언가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서점에 가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골라 바로 읽어 보는 일. 땀 흘리고 운동한 뒤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며 영화를 보는 일. 좋아하는 바에서 ‘혼술‘을 하는 일. 일상에 불안이 엄습하는 날이면 이런 것들로 기분을 치환했다. 다만 이 정도의 감정도 행복이란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짜릿하고 벅차오르지 않아도 행복이었다. - P35
물건이 바로 앞에 있을 때는 초점을 맞추기 어렵듯, 나자신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명상이다. 나는 명상을 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에서 재생버튼을 누르지만, 일상에서는 정지 버튼이 눌린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춤을 선택하고 숨을 고른다. 끊임없이 내가 놓친 것과 붙잡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던 머리를 비운다. 그 안에서 배운다. 멈춘다는 건 뒤처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땀을 식히며 다시 뛸 기운을 모으는 일이다. - P80
침입한 방을 보고 느낀 게 한 가지 더 있다. 아주 빼곡하다는것이다. 은성의 8.5평짜리 집에는 여백이 없었다. LED등이달린 천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벽과 바닥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늘어지고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 그 방은 나에게거대한 미련 덩어리처럼 보였다. 미련이라는 감정이 기이한형태의 중력으로 작용하는 공간.
조예은의 《트로피컬 나이트》 중 <나쁜 꿈과 함께>에서몽마의 시점으로 바라본 누군가의 집은 이렇게 묘사된다. - P111
문장을 옮겨적는 것에서 끝난다면 필사 폴더에 머물겠지만 어떤 문장은 내 안에 흘러들어와 또 다른 문장을낳는다. "어디에도 가지 않으면서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생각할 것이다." 최진영 작가님의 《내가 되는 꿈》 속에서 이 문장을 만났고, 나는 곧 벌을 서는 기분으로 글을쓰기 시작했다. 감염병의 시대라는 핑계로 오래 방치한무기력을 들여다본다.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하든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던 시간을 반성한다. - P151
두 번의 부상과 여러 사건으로 인해 2022년은 살면서 가장 오래 집에서 시간을 보낸 해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몇 년 중 가장 적은 양의 책을 읽었다. 읽지 못한다는 건 내게 이런 뜻이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 나를 돌보지 못한다는 것. 잘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나는 언제나 내 컨디션을 독서량으로 어림짐작한다. 책에 대한 내 의존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P169
하버드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은 부정적인 감정과 소비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평화로운 풍경이 담긴 비디오를, 다른 그룹은슬픈 내용의 영화를 보여준다. 시청이 끝난 후 플라스틱 물통을 보여주고 그것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질문한다. 그 결과 평화로운 풍경을 본 사람들은 평균 2.5달러를, 슬픈 영화를 본 사람들은 평균 10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14슬픔은 상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큰 상실감을 느끼면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슬픈 감정을느끼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평소보다 물건을 더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돈을 쓰며 물질적인 것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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