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제목은 고양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실 에세이의 주제는 '아버지'다.

하루키는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 때론 희미해진 추억을 쫓아 이야기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책에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바닷가에 유기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연속된다. 짧은 에세이나 시, 소설을 써 본사람이면 알겠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렇기에 하루키도 겨우 지금에서야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루키는 성년이 된 후로 아버지와 이상하게 서먹해 20년 넘게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작가로 살아가며 펴낸 책에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책 표시에 적혀있는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이란 말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책은 손 안에 들어오는 미니북이다. 고양이와 관련된 아버지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다보면 한 30분도 안되어 '작가 후기'를 읽을 수 있을만큼의 작고 짧은 에세이다.그럼에도 '고양이', '아버지'에 대한 글로 챕터의 구분 없이 즉 끊김없이 하나의 글로 쭉 읽힐 만큼 글이 주는 몰입도는 최고다. 하루키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괜스레 우리의 아버지가 떠오르는건 또 나만 느끼는 감상은 아닐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아버지의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었나 잠시 생각하니.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관심에 비해 난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것 같아 괜히 머쓱해진다.

하루키는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의 추억은 픽션을 통해 다시 창조하지 않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간에 왜곡되 달리 기억하고 있는것 같다'며 아버지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에 대한 결말을 마무리 하진 않는다. 그 왜곡된 기억조차 아버지로 인한 추억이니 말이다.

책을 읽었을때는 몰랐는데 책에는 끝까지 하루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큰아버지나 사촌의 이름이 풀로 나오는 것과 대비해 정확한 이름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하루키가 글의 끝부분에서 썼던 것처럼 '보통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를 읽는 독자에게도 반영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그랬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키의 아버지, 하루키의 어머니가 아닌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만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떠올리며 행적을 미화하거나 존경, 사랑의 의미를 담기보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려했던 하루키이 시선이 담겨있는 책이다.

2

나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 경험보다 정말 평범한 장면이 매번 떠오른다. 넓은 공터에서 동생과 색깔만 다른 조끼 패팅을 나눠입고 아버지를 따라 연을 날리던 기억. 이상하게 매번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잔상이다. 동생과 몇 미터 떨어져 각자의 연을 날리며 아버지는 수시로 동생과 나를 왔다갔다 하며 연을 날리는 나름의 '비법'과 '요령'을 전수하며 하늘 높이 나는 연을 봤던 추억. 사진으로 남겨있어 더 기억이 나는가 싶었는데 그냥 정말 평범하지만 공터에 있던 가족 모두 연을 날리며 그 시간을 즐겼기에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평범한 아버지의 이야기 <고양이를 버리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오히려 맘에 위안을 주는 날이다. 오랜만에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서 좋았고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었다. 책 중간에 그려진 그림은 또 얼마나 정감있고 감성적인지. 서재 한 편에 온기가 있는 책을 한권 더 채워넣을 수 있어 좋다.

무라카미하루키, 김영사, 고양이를버리다, 서평,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