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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부 키친, 오늘 하루 마음을 내어드립니다
이수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10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 하나, 손님은 하루에 한 팀뿐. 이토록 작은 레스토랑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된 책이다. 처음에는 이 작은 식당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라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기며 저자가 말하는 먹는다는 행위와 그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에 대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고 저녁 시간 내내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신라호텔 조리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저자 이수부는 사십대 후반에 창업해 '미니멀리스트 이수부 키친'을 운영하고 있는 가게 주인이다. 저녁이면 불을 켜고 준비한 식사로 손님을 대접하는 심야 식당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8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음식을 만들고 있다. 미국 유학을 하며 배운 '미니멀리즘'을 요리에 적용해 재료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까닭에 이수부 키친을 방문한 사람들 모두 속이 편하고 건강한 요리라며 엄지를 치켜 든다고 한다. 더욱 그가 재료를 대하는 태도는 고스란히 음식에도 깃들어 이수부 키친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주니 그 가게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1. 우리끼리 오붓하게 작은 불편은 감수한다.
이수부 키친은 혼자 운영을 하다보니 손님의 셀프 서비스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이런 방식의 셀프 서비스는 이수부 키친을 방문한 사람들을 주인으로 만든다는 점이 독특했다. 손님들이 직접 테이블 매트를 깔고 칼과 나이프를 세팅하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손님의 취향이 담긴 노래를 트는 순간 이수부 키친은 손님의 사적공간으로 바뀐다. 음식에 맞는 와인도 직접 가져올 수 있다고 하니 주인의 취향이 가득담긴 가게라기 보다는 언제든 손님에게 열려있는 마실과 같은 역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는 요소로 자리매김한 것 같았다.
2. 기억과 시간이 쌓이면서 둥글어지는 공간
이수부 키친의 또 다른 특징은 군더더기 없는 공간이다. '사람이 엮은 공간이 사람을 엮어주는 곳'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갖고 있는 키친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 편하게 쉬고 먹을 수 있는 둥글어진 공간이다. 단순히 주방가구와 인테리어를 줄이기보다 식사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큰 테이블을 가장 넓은 공간에 배치시킨 이수부 키친만의 공간. 또 손님들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메탈 느낌의 주방에는 일부 원목을 대 식탁과의 경계를 줄였다고 한다.
더욱 저자는 말한다. 이수부 키친은 공간을 손님에게 내어줄 뿐아니라 키친에 머무는 시간까지 내어준다고. '이수부 키친은 공간을 호스트에게 빌려주고 음식은 바탕에 깔리고 대화에서는 물러선다.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주인이 단촐하게 차린 음식이 즐거운 대화의 배경처럼 간간이 흘러 지나가듯이'(p.95)
이수부 키친 처럼 음식 뿐만 아니라 그 공간까지 기억에 남는 가게들이 내게 있었나 떠올리니 얼마전에 다녀온 안동의 396커피점이 떠올랐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둘뿐이었지만 통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과 고소한 향을 내며 얼음이 가득 든 커피저그로 떨어지는 드립커피가 기억나는 가게. 새로 마시는 커피 맛도 좋았지만 그 공간자체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오래 머물었던 곳이다.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던 직원분의 얼굴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맛과 공간, 그리고 사람의 심성까지 더해진 추억은 여타의 기억보다 더 오래남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꼭 이수부 키친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음식은 접시에 올려진 내 몸의 상태어이다.
책에는 이수부 키친에 담긴 공간과 태도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몸의 상태가 음식에도 깃들 이야기들이 와닿았다. 몸이 아프면 짠 맛을 원해 그 날 하는 요리가 조금 짜진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때문에 저자는 항상 같은 요리의 간을 위해 몸 상태를 관리한다고 한다. 특히나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면 메모를 통해 일과를 마무리하며 다음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 저자가 중요시 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날은 음식을 만지며 괴로워했다는 저자의 모습에서 그가 중요시하는 음식에 대한 원칙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담긴 저자의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이가'에 대한 책임의식은 마치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저자에게는 이수부 키친이라면 나에게는 하루의 일상이 될 수도, 일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작은 식탁이 될 수도, 대상은 다양하겠지만 나만의 절제된 통찰이 필요한 순간은 어느 순간에나 존재한다. 통창 너머로 비추는 이수부 키친의 온기처럼 나도 내가 머무는 공간에 나만의 온기를 담으며 살아야겠다. 끝으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매일 하는 먹는다는 행위와 그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에 대한 의미를 한 번쯤 돌아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