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사랑하는 그 꽃들을 아깝다는 듯 담장 속에 숨겨 두는 그 사람들의 심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떤 열렬한 사랑은 그 주위에 굳건한 요새의 성벽들을 쌓아 두려 한다. 그 순간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쳐 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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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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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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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응시하며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는 내 적이다. 그에게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우리 가족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서류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짜증나는 서류. 서류만 깔끔히 정리되면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내 적이고, 빌리의 적이다. 이제 우리는 적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적들을 이해하는 건 선택이 아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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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므로) 어디에서고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상황을 가만 보면, 어떤 일에 대처하는 혹은 맞닥뜨리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자세와 태도가 되풀이되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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