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생활 입문 가톨릭 클래식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지음,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신심생활에 필요한 글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필로테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필로테아는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애초에는 한 사람을 위해 쓴 글이었으나 결국 여러 사람들을 위해 출간하기로 한 만큼, 누구든지 깊은 신심 생활을 지향하는 이들을 적합한 이름으로 호칭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신심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해두고 이 입문서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했습니다.

제1부 신심 생활에 대한 동경

제2부 기도와 성사

제3부 수덕

제4부 일상적 유혹

제5부 영혼의 쇄신

제2부 기도와 성사에서 제12장 영적은둔을 작성하였습니다.

제12장 영적 은둔

친애하는 필로테아 님, 앞에서 내가 언급한 바를 그대가 충실히 지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그대의 영적 진보에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르쳐 준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하여 일과 중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그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성찰하십시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늘 당신을 바라보고 계시며 언제나 그대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를 바라보고 계신데 어찌하여 저는 항상 주님을 우러러보지 않는지 모르겠나이다. 주님께서는 늘 저를 생각해 주시는데 저는 왜 주님 생각을 조금밖에 하지 않는지 모르겠나이다."

"오! 내 영혼아, 너는 어디 있느냐? 네가 진정 쉴 곳은 하느님 곁인데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느냐?"

새들은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사슴은 나무 그늘 아래서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골고타나 주님의 상처에서, 또는 틈나는 대로 주님의 곁에서 바쁜 세상사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그곳을 세상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주님을 향해 "주님께서는 나의 파난처, 나의 산성이시여, 비를 막는 지붕이시고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십니다."(시편 91,2.9 ; 61,4 ; 62,3 참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차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필로테아 님, 그대 몸은 세상사에 매여 있지만, 그대 마음은 종종 피난처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을지라도 그대의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시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많습니다.

"오! 주님, 저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나이다."

"저는 언제나 저의 하느님을 뵈옵나이다."

"저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고 있나이다."

거룩한 은둔을 방해하는 세상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는 부모님의 방해로 기도할 곳이나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카타리나의 마음 안에 작은 성당을 지어 주시어 아무리 바쁜 일과 중에라도 거룩한 은둔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성녀는 어느 누가 괴롭히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비밀스러운 작은 성당에 숨어 하늘에 계시는 배필이신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그녀의 영적 딸에게 마음속에 작은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수행하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대도 때때로 주위 사람들과 떨어져 하느님과 만나 마음의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대 마음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다윗은 "저는 광야의 펠리칸과 같아지고, 페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되었습니다."(시편 102,7-8)하고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매우 뜻깊은 말이며, 묵상을 위한 다윗 임금의 은둔의 습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구세주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골고탕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시며 돌아가신 구세주께서는, 굶주린 자기 새끼에게 자기 피를 먹이는 광야의 펠리칸과 같으시고,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적막한 곳에서 슬피 우는 부엉이와 같으시며, 또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무리를 떠나 하늘로 날아가는 한 마리으 외로운 새와 같으십니다. 우리와 이와 같은 피난처를 지으면 번잡한 세상사 가운데서도 그곳에 숨을 수 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 아리안의 백작인 복자 엘제아르는 그의 부인 델핀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리운 아내여, 나는 잘 지내고 있소. 만약 나를 만나고 싶으면 창에 찔린 주님의 옆구리로 오시오. 나는 그곳에 있소. 다른 곳에서 나를 찾으면 헛수고일 뿐이오." 그가 표현한 예수님의 옆구리는 그의 피난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좋은 신앙서적인 신심생활입문 책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