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바지
마거릿 버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과학의 역사는 다분히 남성적이다. 이렇게 내가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책에 있다. 마치 난 그 동안 거대하고 위험한 음모에 관한 모든 진실이 담겨진 금서를 우연히 발견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어 거칠게 책장을 넘겼던 것이다. 그 동안 내가 여성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일반적 믿음과, 수학적 능력에 우리들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통념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리적인 반박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동안 과학의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뛰어난 여성과학자들도 과학이라는 고매한 학문의 여성혐오증적 발작증세로 인하여 과학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보아, 과학사 속에 감추어진 금기의 진실을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을 것이다.

남성주의적 과학역사의 허구성은 생각보다 비밀스럽지도 그다지 교묘하지도 않다. 그러나 상당히 노골적이고 또한 놀랍도록 체계적이며,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난 인내력을 보여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은 히파티야와 마리아 빙켈만, 그리고 에밀리 뒤 사틀레 등등의 위대해져야 마땅했던 과학자들을 성(性)적 이분법으로 과학사에서의 그들의 역사적 업적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였으며, 생물학에서 여성과학자들이 이룩해낸 수많은 업적들 또한 업신여기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만든 유리천장이 결국은 유리이므로 깨어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들이 유리천장을 깨뜨릴 때에는 신념을 가지고 헬렌의 말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과학을 만들기 위해 아프락사스가 될 것이다.

비상하려는 충동을 느낄 때에는 절대로 포복하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 헬렌 켈러 -

과학문화를 변화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두 성의 공동의 연대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방적인 남성의 ‘지배’에서 여성의 ‘참여를 인정’하고, 진실로 ‘생산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기막힌 만남이었다고 여겨지는 브라헤와 케플러의 그것보다 더, 어쩌면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양산해 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두 성(性) 공동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한 가지 길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동안 과학을 주도해왔던 다른 성은 수리물리학적인 방법론에 치우친 경향이 있으므로, 이제 또 하나의 성이 할 일은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우주의 원리와 진리에 관해 되도록 많은 프리즘으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마도 과학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이 연대한다면, 보다 더 그것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남성 중심 지배주의적 과학이 미처 관심을 두지 않았던 - 그것이 설사 의식적이고 조작적이었더라도 - 다른 방면에서의 인류의 문제에 대해 해로운 인식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에 무책임하지 않은 학문으로서의 과학을 위해 이 기막힌 연대는 사회 전반의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기여를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여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들을 과감히 부수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우리 두 성(性)은 ‘진리의 횃불을 함께 들어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 과거의 소극적인 권유도, 제안도, 충고가 아니라 인류의 존망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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