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의 근본문제들 - 마르틴 하이데거 전집 제24권 마르틴 하이데거 전집 24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 문예출판사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하이데거의 현상학의 근본문제를 일독하였다. 이 책은 하이데거 전기사상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에서 원래 저술하려고 하였으나 다 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강의록이었으나 결국은 미완성된 상태로 출간된 책이다. 특히나 이 책은 강의록의 형태라서 존재와 시간에 비해 하이데거의 생각의 중심과 펼쳐짐을 파악하기 쉬운 부분이 있고 첫 부분에서 현상학에 대한 간단한 요약과 그 뒤를 이은 일종의 존재론의 철학사를 통해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펼쳐나갔던 논리의 핵심을 다소 쉽게 복습할 수 있다는 점은 강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사실상 이 책의 첫째 부분에서는 일종의 존재론의 철학사를 기술해 나간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존재의 개념이 훗설의 현상학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철학의 전통으로부터 중세시대의 스콜라 철학을 거쳐 칸트에 이르기까지 논의되어온 부족한(은폐되어온) 존재개념을 자신의 현존재 분석에 의한 기초존재론으로 탈은폐시키면서 완성하고자 함을 보이기 위해 이 책의 거의 절반에 걸쳐 아주 자세히 분석하면서 사실상 자신의 존재론을 펼쳐나간다. 결국 책을 곰곰히 읽다보면 알게 되는 것은 하이데거가 현상학적 방법으로 파악해낸 자신의 존재론의 토대 위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존재론들이 현상학적 존재론에 비해 모자란 점들을 파헤쳐나가는 작업에 가깝다는 것이다. 마치 각 시대별 존재론의 부족한 양상을 각 존재론에 내재한 논리나 구조의 부족이나 결함으로 인해 하이데거 자신의 존재론이 완성되어져 온 것처럼 이야기 하나 사실은 현상학적 작업의 결과 나온 존재론의 틀속에서 각 시대별 존재론을 비교분석하여 해체해 나가는 정교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라는 사람은 뭔가 솔직한 편은 아닌듯한 인상이 강하게 받았다.

두번째 부분이 사실상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존재와 시간에서 멈춘 다음 부분인 시간과 존재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사실상 하이데거는 훗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사람자체에 맞추고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에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밝혀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훗설은 현상학적 환원이후 밝혀지는 것이 현상학적 실체” – 소위 의식내부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반면 하이데거는 단순히 의식내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존재로 실재 자체이며 의식과 실재는 애시당초 하나로 묶여있는 것 하이데거가 정의하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점에서는 훗설은 데카르트-칸트계열을 따른다고 볼 수 있고 하이데거는 셸링-헤겔 계열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소위 정신적인 것이 곧 물질적인 것이다라고 하는 테제는 독일 낭만주의를 관통하는 부분이며 사실상 독특한 부분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생각은 셸링의 정신과 자연의 상호교통과 치환가능성과도 다르고 헤겔의 의식이 변증법적 운동에 의하여 대상(물질)을 관통하여 그 본질을 꿰뚫고 귀환하여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생각과도 다르다. 칸트나 훗설의 의식철학처럼 물자체나 대상자체에 궁극적으로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보다는 더 나아가고 헤겔처럼 물자체나 대상자체와 합일하여 그 본질을 획득하여 귀환한다는 생각까지는 동의하지 않는 그 중간 어디에 머물러 있다. 하이데거의 지평개념등을 고려해보면 현상학적 환원과정이 변증법적으로 수행되어 가면서 존재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바탕이다고 생각이 든다.  의식의 지향이 그 시발점이 되지만 이미 주어진 세계와 이미 하나의 짝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그것이 사실상 존재를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는 의식-실재의 커플링이 기본전제가 되어있는 것이 제일 특징이다. 마치 빛의 파동-입자의 이중성격이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과 같은 묘한 부분이 있어서 아주 매력적이고 쉽게 반박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현상학적 근본개념을 읽으면서 든 가장 큰 기쁨은 이 사람의 책은 철학이 드디어 논리와 말의 잔치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삶의 지침을 주는 그런 철학의 발걸음을 뗀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하이데거가 진행한 현존재 분석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어떻게 세상에 나와있고 반응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정말 제대로 살고는 있는가?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내용을 철학이라는 학문안에서 철학적 용어로 우리를 설득하는 사람이 하이데거이다. 그런데 이 두 책을 곰곰히 읽어보면 과연 하이데거의 논의가 엄밀한 철학적 논증을 거쳤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나의 평가는 하이데거가 시도한 것은 철학이었고 또한 자신도 자신의 책이 철학책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철학적 인간학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현존재는 결국 인간을 말한다. 하이데거가 추구한 것은 현존재를 분석하여 현존재가 구성하는 존재론을 파악한 뒤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일반존재론을 도출해 나가거나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현상학의 근본문제는 현존재의 존재론을 전개하지만 현존재의 일반성을 여전히 도출해내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끝이 난다. 현존재의 일반성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단계로 설정한 것이 시간성인데 하이데거는 이 시간성을 유일한 가능조건으로 설정해버림으로써 반론가능한 논리가 되어버린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영역에 시간을 순차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미래의 뭔가를 꿈꾸면서 과거부터 해오면서 축적된 것을 가지고 현재를 미래-과거가 함께 투영되어 살아간다. 이 경우 인간에게는 지금 이 시점에 과거-현재-미래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런 시간의 양상이 인가에게 나타남을 철학의 분야에서 이야기한 철학자가 없다. 그 점에서 하이데거는 탁월하다. 이렇게 현존재(인간)에게 나타나는 시간의 양상을 시간성이라고 한다. 분명 이 부분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 시간성이 유일한 존재의 가능조건이 된다면 현존재가 시간성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현존재의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시간성을 살아내는 사람은 일단 기본적인 인간의 생리학적 기능이 정상이어야 하고, 진정한 시간성을 살아나가려면 본래적 자신을 파악하고 살아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본래적 자아란 일상성에 묻히지 않고 시간성을 항상 몸속에 체득하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진정한 자신에 투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만일 선천적 중증 정신지체 장애환자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기본적인 뇌기능이 이러한 시간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불가능할 것이다.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사람들의 경우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성의 영향을 받고는 있으나 활용도 못하고 묻혀있는 상황이고 심지어는 평생동안 그럴 수도 있다. 시간성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유일조건이 되는 순간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 전자의 예의 경우 일단 실재적으로는 존재하나 하이데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론의 존재는 실증적인 분야의 존재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모순되게 된다. 전자와 후자의 예 모두의 경우 하이데거식의 논의가 일방적으로 흐르면 나찌즘적인 양상으로 갈 수 있다. 시간성이 작동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이란 나찌즘적으로 보면 사람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경우 그 존재가 인정되지 못하면 말살하고자하는 의도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 된다. 하이데거가 나찌즘과 연관된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언급들을 보면 이런 위험성이 내재되어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시도했던 자신만의 존재론이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상학적 존재론을 결코 넘어설 수 없었던 이유와 그 한계를 현상학적 근본문제를 읽으면서 알개되었다. 하이데거는 지나치게 신비화 되어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뜯어서 읽어보면 그 한계와 단점은 드러난다. 하이데거가 시간성을 현존재 가능조건의 유일조건으로 내건 것은 아마도 일반 존재론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시도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간성을 이렇게 해서 일반 존재론의 기능조건으로 확장하는 것이 포기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첫째는 현존재 유일 가능조건이 만족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것으로 생각이 들고 둘째는 현존재 존재론 자체가 현상학적 방법의 선상에서 전개된 것인 데 이런 존재론의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 현상학적 방법론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로 현존재를 제외한 나머지 존재들까지 확장된 일반존재론으로 넘어갈 수 없음을 알게 되어서가 아닐까 한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론은 철학적 인간론으로서 받아들이며 실제 살아가는데 응용하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그러나 철학으로서 받아들이면 위에서 이야기한 문제들이 야기되는 부분들이 있고 그 부작용도 실제 역사상에서 확인된 바가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딱 존재와 시간을 읽되 그 책에서 하이데거가 끊임없이 드러내는 야심 현존재 분석을 통한 현존재 존재론의 파악과 일반 존재론의 완성-에 대해선 어느정도 무시하고 현존재 분석에서 드러나는 사람이 세상을 파악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방법과 그 특징 그리고 지나친 일상성에서 탈출하여 본래적 자신을 찾아나가는 방법으로서의 기투를 파악하고 이러한 기투는 과거-현재-미래가 역동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 정도를 알게된다면 복잡다단한 세상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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