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 세계-유한성-고독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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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현상학의 근본문제들˝도 북펀드해주면 좋겠어요.. 이기상 교수님 번역이었으니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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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적 성찰 한길그레이트북스 147
에드문트 후설.오이겐 핑크 지음, 이종훈 옮김 / 한길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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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훗설의데카르트적 성찰을 일독하였다. 어떻게 보면 관념론적 인식론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현상학을 집대성한 책이라 오히려 흥미롭게 공부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지금 파악하고 있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은 정말 내가 그냥 이렇게 파악하고 있는 것 그대로인가?
아니면 더 본질적본래적 의미가 있는 건가?
세상은 그냥 단순한 물체들의 나열로 나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봄직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관념론적 인식론의 테두리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칸트와 헤겔을 넘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합의를 이루어 나가고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건가를현상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훗설이 내세우는 기본 가설은 우리가 바깥의 대상을 인지하는 것은 항상 목적을 가지고 지향하는 의식이다라는 것이다 . 훗설의 현상학은 기본적으로 의식철학이고 주관적 관념론의 세계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바깥세상의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구축하고 그 대상들을 엮어 어떻게 세계를 구성해내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단지 독단적 관념론이나 유심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사이에상호주관성이 생성되기에 최소한 객관성과 합의들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철학의 핵심은의 의식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파악하는 현실적 파악은자연적 태도애서 생성된 것이라본래적의미가 은폐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회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나도 모르게 하고있는 "자연적 태도" 아래에 하고 있는 인식작용을 정지하고 본질을 직관해 들어가야한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작용의 정지를 소위판단중지에포케라고 하고 일체의 현실적 판단을 중지하면 오롯이 남는 "순수자아"에 의한 "본질직관"을 통해 대상을 파악해 그 진정한 의미와 해석을 진행하는 것을현상학적 환원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나 자신과 타인, 사회, 그리고 세계를 새로이 구성해 나가면 이제야 은폐된 것들이 밝혀 드러나서 진정한 존재를 알게되고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 훗설 현상학의 얼개이다.

판단중지부분은 현상학적 방법론이라고 하는데 훗설의 본질직관이나 순수자아등의 극히 관념론적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철학자들이라도 이 현상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여서 이후 하이데거, 메를로 퐁티, 사르트르, 가다머, 레비나스, 오이겐 핑크의 철학들이 피어나는 시발점이 된다.

"
판단중지"를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거칠게 말하면선입견을 중지한다라고 할 수는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선입견은 뭔가잘못 알려진 인상이라는 뉘앙스가 강한 반면, 훗설이 이야기하는 판단중지의 대상은지금 세상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런 의미로 파악되는 모든 것이라 상당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훗설은 나 자신에 대한 파악에서부터 타인, 사회, 세계에 대한 파악은 현상학적 판단중지와 환원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그 실체가 드러난다고 본다. 그래서 자연과학적 파악으로 알려진 인간, 대상물체 그리고 자연은 인간 각자가 이러한 판단중지와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새로이 파악되어 그 은폐가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자연과학적 파악, 사회과학적 파악 등 일반 세속학문들도 각각 진리를 담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부분뿐이라 이러한 현상학적 작업을 통해 그 전체의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훗설의 주장이다. 실증주의적 자연과학이나 기타 학문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되 그 전체의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상학적 판단중지와 환원작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다른 관념론이나 유물론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점과 다른 점이다.

이 저술의 마지막 부분은 훗설의 제자인 오이겐 핑크의 논문으로 되어있는데 이 부분은 훗설이 인정해서 수록한 것이라 원저서로 인정될 수밖에 없으나 오이겐 핑크가 훗설의 현상학을 자기나름대로 해석하고 확장한 부분도 있어서 앞부분 훗설이 저술한 것과는 사뭇 문체도 다르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도 다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영향도 강하게 놓여있고 형이상학적 체계정립을 하고자 하는 열망도 보이는 듯하다.

이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세상의 대상들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판단중지 후 순수자아의 본질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순간 언어를 잃을 수밖에 없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현상학은 종교적 체험과 유사한 길을 간다.
종교적 체험은 그 깨달음 자체를 표현할 길 없다라고 하고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표현할 때 비유를 들어서 진행한다.
현상학적 본질직관 이후 환원을 진행하면 다시 보통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때는 본질직관에 의해 깨달은 것에 가장 가까운 유비적 언어로 다시 풀어놓게 되는데 (이걸 2차 세계화라고 한다) 같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더라도 사실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하는 단어와 언어가 된다고 핑크는 설명한다.
그래서 핑크는 현상학적 환원 작업을 해본 사람만이 현상학적 환원된 언어의 의미를 다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판단중지와 환원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책만 읽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상당히 종교적 체험과 경전의 해석과 비슷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하여튼 이렇게 사람이 현상학적 환원으로 자신과 자신주위의 대상,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데 제일 큰 문제는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타인의 존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훗설의 이야기는 타인 역시 판단중지와 현상학적 환원을 하는 별도의 독립적 개체로 인정해야 하고 이러한 타인을감정이입의 방법으로 내가 타인을 구성해 낸다라고 본다.
그 타인도 동일한 방법으로 나를 구성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부분은상호주관적 선험성이 성립이 되므로 사람들이 모두 함께 같은 현상학적 환원 작업 하에 객관적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훗설에 있어서선험적이라는 것은 경험이전의 것이라는 의미보다는본래적인” “은폐되어 있는 본질적인이런 의미에 가깝다).

유아론적 독단론에 빠지지않는 방법이기도 하고 훗설이 추구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훗설이 이야기하는객관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학적으로나 통상적으로나 의미하는 개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판단하고는 상관없이 성립되거나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훗설에 있어서 객관이란 개인이 현상학적 환원으로 획득한 진리 값들이 사회적으로 상호주관적 선험성으로 받아들여질 때 성립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적 데이터 값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객관이나 상호주관적 선험성의 의미의 객관이나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적인 객관을 한번 생각해보면 기능주의적 학문성향으로 진행하면 현실과 괴리되고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객관적 진리값이 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런 경우는 오늘날 말하는 집단지성이니 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훗설이 이야기하는 상호주관적 선험성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소위세상에 노출되어 둘러싸여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세상은 일반적으로 자라오면서 자연스럽게 훈육이나 교육 등으로 일정한 기준에 의해 이러한 것이 세상이고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하는가 하는 것 등이 이미 인지 되어있는 상태이다. 이런 건주어진 세상이고자연적으로 알게 된 세상이다.

이렇게 주어진 세상만으로는 은폐된 것이 너무 많고,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부분이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오히려 세상과 괴리가 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성립된 학문들이 규정하는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심지어는 예술의 영역이든세상의 얼개와 이치들도 개별 개인이 일단 이러한 이미 성립된 논리들을 모두 중지하고, 원래 이런 논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자신의 순수자아의 본질직관으로 다시 파악해 보고 그 파악된 상태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을 재구성하여 나에게 진정한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세상을 드러내어 내가 진정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것이 훗설이 설파하는 내용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훗설에 대한 개론서와 훗설의 주 저술 중에서 철학적 논의를 제일 논리정연하게 진행한데카르트적 성찰을 공부해보니 현상학이 오늘날 철학과 사람들의 생각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은폐된 세상의 의미파악과 그 의미의 재구성하는 방법이순수자아의 본질직관이라는 방법이라는 사실 일반적으로 확인하기 힘든 방법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훗설식으로 이야기한다면 훗설의 선험적 주관성이 상호주관적 선험성속에 객관을 획득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 ...)

점차 고도로 전문화되어서 일견 진리라고 주장되어지지만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옳음을 확인하기 힘들어진 전문적인 여러 분야들의 총합으로 구성되어진 세상을 그냥 진리라고 믿기 힘든 사람들에게 다시금 세상을 새로운 기준으로 의미구성하고 재해석함으로써 나에게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세상이 되게 하는 그러한 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문적인 학문들로 무장해서 각 분야에 있어서는 그 분야의 전문학문의 결과만이 무조건적 진리값이라 주장되어지고 받아들여져서 유럽문명이 위기에 빠졌다고 파악하는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을 다음 책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다.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선험적 주관성과 상호주관적 선험성으로생활세계를 구성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훗설의 대표 주저술중 하나라 기대가 된다.  

훗설의 저작은 광범위하고 개념들도 점차 변해가는 부분이 있어서 혼동이 올 수 있어 주요부분에 대해 정리를 해둔다.

훗설에 있어서 본질

본질은 사물이나 경험의 불변의 구조를 의미하며(그것이 그러한 것이기 위한 핵심 조건) 존재론적인 실재가 아닌 점에서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과는 다르다. 훗설의 본질은 의식안에 주어지는 것으로 본질직관과 상상적 변형을 통해 파악되어지는 것이다.

판단중지(에포케)

: 평소에 가지고 있는 자연이나 세계에 대한 태도, 믿음(자연적 태도, 자연적 믿음)일시중지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가(세계내의 모든 사물이나 심지어는 자기자신) 의식안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나타나는가(현상)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향성

: 의식은 언제나 어떤 대상을 지향하고 모든 인식은의식-대상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면 대상의 존재자체보다 그 대상이 의식에 어떻게 나타나는지(현상)에 주목한다

선험적 자아(초월론적 자아)

: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구조자체를 선험적 자아라고 한다. 이것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아와는 다르다. 각 인간 개체내에 있는 본질적이고 순수한 의미구성을 일으키는 의식구조를 말하며 경험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구조를 의미한다. 모든 형태의 의미구성, 시간구성, 대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의식구조.

상상적 변형

: 특정 사물이나 경험을 상상적으로 다양하게 변형하여,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필수 구조(본질) “를 직관하는 의식과정. 개별성을 넘어서 보편적 성질을 파악하는 단계.

본질직관

: 다양한 변형을 거친 후, 의식은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를 '본질적으로' 파악(통찰)하게 된다. 직접적 통찰의 형태임.

상호주관성

: 타인의 존재는 나와 동일한 선험적 자아를 가진 존재로 감정이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 가능하고 각 개인들이 이런 작업들을 계속 수행하므로 각 개인의 주관성들은 상호주관성을 가지게 된다.

훗설의 객관

: 주관들의 공통구조속에 있는 세계가 객관세계이다. 객관성은 지각적, 의식적 상호주관성에 의해 확인된 의미 구조를 의미하며,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고, 동일한 본질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객관성의 확보는 본질직관과 상호주관성이 같이 일어나서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훗설의 현상학적 환원의 흐름

1)판단중지 -> 2) 지향성의 분석 : 현상에 주목 -> 3) 상상적 변형(변형적 변이) -> 4) 본질직관: 다양한 변형을 거친 후, 의식은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를 '본질적으로' 파악 -> 상호주관성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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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el 대논리학 1 : 객관적 논리학 1부 존재론 Hegel 대논리학 1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자유아카데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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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주저 대논리학 1,2,3권을 일단 완독하였다.
지난번 헤겔의 정신현상학 1,2나 칸트의 3대 비판서를 공부할 때도 비록 어렵기는 했지만 도전정신(?)이 더 강하게 불타올랐고 지적 만족감과 여러가지 통찰력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고전의 힘을 실감했었다. 한데 이 대논리학 1,2,3은 읽고 공부하는 동안 계속 양가감정에 휩싸이게 하였다. 과연 내가 헤겔의 이 지적철학교양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나? 소설이 아닐 수 있으니 좀더 읽고 고민해보자 라는 갈등속에서 계속 진전해 나가서 결국은 완독하게 되었다.
이 갈등의 이유는 헤겔철학의 특징에서 비롯되었으며 정신 현상학에 비해 훨씬 학문적 엄밀성을 가지고 진행해 나가는 대논리학은 헤겔의 숨겨진 대 전제들에 대한 동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들리게 되어있다. 특히나 대논리학의 1,2권은 객관적 논리학(존재론, 본질론)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객관, 존재, 본질 이런 단어들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니고 헤겔 특유의 의미인데 책의 처음에는 전모가 파악되지 않기에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헤겔철학은 철저한 인간중심적 관념론이고 칸트의 인식의 전환점위에 서있는 철학이다.
단지 칸트는 인간중심적 인식론의 입장에서 이성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인식범위를 한계 지우려 했다면 헤겔은 헤겔 특유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해서 이성이 객관의 실재성을 획득해 나가면서 이념화 되기 때문에 칸트가 그 한계라고 지워 놓은 물자체를 이념속에서 파악이 되어 나간다고 보기에 정당한 변증법적 방법론에 의한다면 이성의 한계는 없다고 추정되어진다. 이성의 한계가 없어지므로 형이상학의 세계가 다시 펼쳐지는 것이 가능 해진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이전에 프레데릭 바이저의 독일관념론에 대한 일련의 저작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아마 대논리학 읽다고 집어 던졌을 것 같다. 내용자체도 난해한 부분도 있고 전체적인 구조자체가 변증법적인 방법론이 적용되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변증법적 진전을 통해 대단원의 막까지 (절대이념)가는 구조이기에 한편으론 지겨운 부분도 있다.
대논리학은 객관적 논리학: 존재론 -> 본질론 -> 주관적 논리학: 개념론으로 변증법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구조이다. 책자체가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저술되어 있기에 첫 전제에 대한 동의가 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당연히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참으로 훌륭한 통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헤겔의 변증법이 빛나는 부분은 인간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 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부분을 설명해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헤겔의 첫 주 저작인 정신 현상학은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 배울 수 있는 통찰들도 풍부하고 동의 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이 책에서도 변증법적 방법론을 전체 형이상학의 원리로 추인하려는 시도도 엿보였지만 헤겔 자신의 말처럼 그 원리의 엄밀한 철학적인 증명을 뒤로 미루어 두었기에 본격적인 철학적 논쟁은 개시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대논리학 1,2,3는 전체 형이상학의 원리를 변증법적 방법론을 적용해서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기에 첫 챕터부터 치열한 사유와 동의가 필요 해진다. 또한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이 존재론부터 적용되기 시작하기때문에 변증법적인 운동이, 과연 인간이 사물을 파악할 때 어떻게 작용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나 생략된다(생략된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냥 자명하다고 본다는 쪽이 맞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사물과 사물사이에도 변증법적 운동의 원리가 적용되는데 이건 “부정”의 요소가 이미 사물에 내재해 있다고 보는 관점이 포함되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결정론적 해석으로 빠져들기 쉽상이다. 또한 그런 사물과 사물사이의 변증법적 운동의 결과물들이 목적론적으로 인간에게 적용되어지는 부분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을 각각 논하기에는 페이스북에서는 너무 과해서 대논리학에서 헤겔철학의 특징만 언급하기로 한다.
1)즉자:시원 -> 대자 -> 즉자대자(->즉자) -> 대자 -> 즉자대자(->즉자) -> …..-> 즉자대자:절대이념(즉자:시원) -> 대자 -> ……… -> ……
헤겔 변증법적 운동의 고리는 이렿게 구성된다. 실제로는 무한 루프이며 대논리학은 절대이념에서 그 서술을 마치지만 그 이후에도 절대이념의 내용의 변증법적 운동이 계속될 수밖에 없으므로 무한 루프라고 생각해야한다.
2)”즉자”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소위 반성이 수행되지 않은 직접적인 것 그 자체이다. “대자”는 즉자 내부에 이미 놓여있는 “부정”적인 것이 펼쳐나오게 함으로써 생성되는 것으로 이 과정은 “반성”을 통해 진행된다. “즉자대자”는 처음 시작한 즉자의 직접성과 반성되어 변화한 대자가 합해지는 부분으로 “통일”을 통해 진행된다. 외형, 직접성(껍데기)은 즉자와 즉자대자가 같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내용상으로는 변화된 존재이고 그 내용은 풍부해지고 확장되어 있다.
3) 이런 변증법적 운동은 인간의 정신성장이나 사회의 성숙 등에는 나름 유용한 설명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에 이를 토대로 헤겔식 사회변혁이론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태동되었고 사회발전이론의 주요원리로 인용되어왔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도 사실 헤겔의 관념론적 색채를 씻어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만 질적 변화의 양적변환, 양적변화의 질적변환이라는 테제는 결국 헤겔의 이 대논리학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을 현실 물리세계의 원리로 적용하기 시작하면 파열음이 바로 들리기 시작한다. 헤겔 나름대로 그 시대의 물리, 화학, 수학의 지식으로 설명을 해 나가지만 변증법적 운동원리로 설명될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4)헤겔의 자연관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관과는 다르다. 엄격히 생각해보면 현상학적 자연관에 가까운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등가적으로 존재하고 상호변화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을 깔고 있다고 생각된다. 헤겔이 정의하는 변증법적 운동의 궁극적 중간 종착역인 “이념”의 정의를 보면 “순수개념과 실재성의 절대적 통일을 통한 존재의 형식에 깃들인 총체성 = 자연 = 적합한 개념, 객관적 진리, 진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념은 단순한 생각이나 사상이 아니다. 터프하게 말하면 한 존재의 생각(개념)과 물질성(실재성)이 종합적으로 합해져서 만들어지는 그 존재 전체이다. 이렇게 개념과 실재성이 통일되어 존재가 될 때 그 총체들이 자연이라는 말이다. 이런 이념으로서의 존재가 될 때 객관적 진리가 되고 진리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변증법적 운동과정을 통해 끝임없이 전진해서 한 대상에 대한 순수개념을 획득할 때 비로서 그 대상은 전체로서의 진리로 파악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조가 되면 변증법이라는 방법을 제외하면 현상학적 해석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현상학은 대상자체 - 물자체에 대해서는 불가지의 입장을 취한다. 그렇지만 헤겔은 이렇게 파악되는 대상자체는 물자체이다라고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터프하게 말하면 칸트와 현상학쪽은 이기이원론쪽이라면 헤겔은 이기일원론쪽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5)헤겔의 이념이란 결국 진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진리는 시원의 존재로부터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본질로, 개념으로, 판단으로, 추론으로 그리고 객관성을 획득한 후 생명으로 인식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념으로 변화, 확장하는 것이다. 인간 이성이 이렇게 객관적 진리 그 자체를 완전히 파악해 낼 수 있는 이념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므로 헤겔은 자신이 칸트의 뒤를 계승하며 칸트철학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헤겔의 결론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현재 도출되어진 결론이 이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이념이라고 하더라도 진리를 담보하는 절대이념의 단계라는 확신은 어디서 올 것인가?
여기에 대한 내용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나오지 않는다. 좋은 말로는 열린 결말이지만 순환적 논리 구조를 가지는 이론들이 가지는 맹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신현상학을 읽어 나가면서 보였던 애매한 점이나 사상의 맹아 같은 것이 대논리학을 공부하면서 많이 정리가 되었다. 헤겔철학은 여전히 아직도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대담론이자 환원주의적 이론들은 현실에 잘못 적용되면 도그마가 된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이념이 무섭다고 했다. 무서울 수 밖에… 이념은 헤겔식 정의에 따르면 진리 그 자체이니 이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진리에 반하는 사람이고 역사의 반동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전쟁은 영토나 생존 등이 원인이었다면 근현대의 전쟁은 거의 다 이념이 그 원인이다. 이념의 내용이 사상이 될 수 도 있고 종교가 될 수 도 있겠지만…
서양철학에서 자유와 이념이 차지하는 그 큰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칸트와 헤겔의 주저작을 읽은 시간이 소중히 여겨진다. 올 한해는 헤겔의 저작과 정신분석학계열의 책들을 읽어 나갔다. 앞으로는 훗설의 현상학부터 좀더 현대철학 쪽으로 올라올 생각이다.
헤겔의 대논리학 마지막 부분 몇 쪽을 갈무리본다. 결국 핵심은 여기에 담겨있으니 변증법적 방법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일독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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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그너 : 발퀴레 (4SACD Hybrid) 솔티 사후 25주기 바그너 작품집 1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작곡, 솔티 (Georg Solti) 지휘, / Decca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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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솔티 시디반 2종을 가지고 있는데 비교가 안될 정도의 음질향상을 보여줍니다.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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