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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언어학 강의 ㅣ 철학의 정원 5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지음, 김현권 옮김 / 그린비 / 2022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받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문학이나 예술 비평 그리고 철학의 경우는 다루어지는 언어가 무척이나 추상적이며 지적이거나 아름답거나 심지어는 구성되는 단어나
문구가 살아있거나 실재하는 실체처럼 느끼거나 심지어 확신을 가지기도 하는 상황을 자신도 모르게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특히 철학의 경우 언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며 이런 언어로 집을 지은 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로인한 한계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묻고 답하는 시간들을 가지는 것 같다. 철학적 관점에서 언어에
접근한 사람 중 제일 영향력이 큰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라고 본다면 언어 그 자체의 관점에서 접근한 사람 중에는 페르디낭 소쉬르이 그 선구자이자
아직도 영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강의를 제자들이 취합하여 만든 일종의 강의노트가 “일반언어학 강의”이다. 이
책은 언어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구조주의를 태동시킨 책이기도 하다. 소쉬르의 용어 중 제일
중요한 용어는 아마 랑그, 빠롤, 시니피앙, 시니피에 정도일 것이다. 놀랍게도 나 역시 이 용어를 40년도 더 전에 고교 1학년 국어 참고서에서 접해 본 적이 있다.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경험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용어를 확립한 저자의 책을
읽게 되어 감개 역시 무량하였다.
소쉬르의 언어이론의 토대는 일단 언어의 자의성이다. 모든 단어나 문법구조
등은 자의적이고 각각이 기호적인 것이라 단독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문장구조안의 배치나 차이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철저히 자의적인 부분이 사회에서 상호소통을 통해 사회성을 획득해야만 언어가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자의성과 사회성이 결합되어야만 최소한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되고 통용이 된다는 것이 그 기본원리이다.
단어가 기호로 존재하는 것을 시니피앙(기표)이라고 하고 그 대응하는 의미를 시니피에(기의)라고 하는데 이 결합자체가 철저히 자의적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과를 한글로 사과, 애플, 링고 등등 어느 것이로나
결합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사과(기표)라는
단어로 그 의미(시니피에)를 표현한다는 의미가 된다. 소쉬르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같은 역사적 시기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변화나 규칙들(공시언어학)과 과거로부터 지금 이 시기까지 지나오면서 발생, 변화하는 언어적 변화등(통시언어학)을
구분하면서 이러한 통시적, 공시적 언어영역들 역시 자의성을 그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성을 통해 확립되어
가는 과정들을 논리적으로 전개해간다. 공시 언어학에서는 통합관계와 연합관계를 통해서 통시언어학에서는
음성진화와 유추 등을 통해서 그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통합관계는 단어의 형성에서도 사용되고 문장에서도
이용된다.
“나는 너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라는
문장속에 “나는” “너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형태로 나열되면서 발화와
의미를 획득한다. 심지어 “나는”은 “나””는”으로 각각의 발음을 가능한 최소단위로 또 나누어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통합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단어를 구성하지도 문장을 구성하지도 못하게 된다. 여기서 이 문장을 듣거나
볼 때 우리는 “가르침”이라는 단어를 목도하면서 “배움” “교육” 등의 단어와의
연관성이나 교체가능성을 검토하게 되는데(물론 이런 의미적인 것 말고 어근이 같은 단어 등도 고려대상이
된다) 이를 연합관계라고 한다. 소위 문법으로 이야기하는
형태론과 통사론은 통합관계를 다루게 되고 어휘론은 연합관계를 다루게 되는데 사실상 이 두 가지는 같이 가기 때문에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음성변화는 음성교체, 모음교체 등을 통해 진행되며 유추는 일종의
모방으로 음성교체, 모음교체 등으로 변화한 다른 단어들을 보고 그 규칙성에 맞추어서 유추해서 바꾸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언어의 특징과 규칙을 과학적 탐구의 결과들로 정립해 나간 저서로 읽다가 보면 정교한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느낌마저 주는 역저임에 틀림없다. 예시로 든 것들이 대부분 프랑스어라 이 부분은 좀 어려웠는데 라틴어나
독일어 예시들은 그래도 이해하기가 나은 정도이다. 하지만 대부분 예시를 꼼꼼히 읽어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번역이 되어있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언어의 인종적
차이나 어족과 민족적 차이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는 부분도 펼쳐 나감으로써 언어는 언어일뿐 인종적, 지리적, 민족적 우월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읽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단어들은 자의적으로 구성된 기호이지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문장 역시 통합적 관계에서 순서의 배치를 통해 의미를 생성하고, 이렇게
생성된 문장 역시 핵심단어들이 연합적 관계에 의해 대치되거나 변화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언어적 행위 자체가 상당히 불완전한 토대위에 서있음을 알게 되고 이런 언어적 행위를 통해 우리가 과연 영원불멸의
진리를 설파할 수 있는 건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공부해보면 결국 통합관계와 연합관계가 제일 중요한 테마인데 이건 한 단어, 한 문장안에서 각각의 음소나 단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그로 인해 언어적 기능을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에 각 개별 요소들이 의미와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계들의 형식 – 구조-가 중요함을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소쉬르가 프랑스
구조주의의 선구자가 되고 레비스트로스가 문화인류학에서 그 방법론을 가져옴으로써 구조주의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소쉬르는 중요한 이론가이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언어적 전통과 관습 그리고 그 변화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에 확립되어
있는 촘촘한 언어 내부의 관계들을 분석하고 종합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정의를 한다는 점에서 그 당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었고, 오늘날 이런 학문의 방법은 거의 대부분의 인문,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의
기본이 되어있는 것 같다. 물론 구조만 분석되었다고 우리가 그 구조의 개체들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응용할
수는 없지만 구조분석이 되지 않으면 대단히 허약한 기반아래에 놓이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는 기표와 기의의 형태로 마치 일대일 대응이 가능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라캉을 통해서도 배우고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도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는
기표와 기의가 대응한다고 가정하고 진행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고 특정 상황이나 추상적 논의들로 들어갈 때 이 대응관계가 의문시되면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도 전기 철학에서는 소쉬르에 가까웠다면 후기철학에서는 언어게임으로 전화하여
상황과 맥락 그리고 언어사용행위의 결과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설파한다. 지금 읽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서 이 부분을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음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효용과 그 한계가 무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분간 공부를 좀더 해보아야 겠다. 인지과학적 관점이긴
하지만 언어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책 “진화하는 언어” 를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