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민음사 탐구 시리즈 4
임소연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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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남성만의 산유물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분야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와 언어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 과학의 표준을 벗어나는 여성의 몸은 오래도록 신비와 무지의 대상이었다. 아이를 품은 성스러운 어머니상을 걷어내고 나면 입덧, 섭식장애, 냉동 난자, 성형 수술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이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임소연님은 지금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과학학자로 이 책을 통해 난자 냉동 기술, 차별적 언어를 구사하는 인공지능 챗봇, 여성형 비서로봇들로 시끄러운 과학 기술의 현장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난자와 정자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생물학은 생물과 인체에 대한 과학이기에 성차별적 인식을 크게 받으면서 성차별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 책에서는18세기 중반에 나온 골격학을 들고 있다. 영국 해부학자 존 바클리는 해부학 책에 여성과 타조의 골격, 남성과 말의 골격을 나란히 그려 넣었다. 타조와 나란히 비교된 여성의 골격은 작은 두개골과 넓은 골반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는데, 이는 낮은 지능과 출산 기능이 부과된 당대의 여성 이미지를 신체의 특징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19세기 다윈 진화론과 20세기 이후의 유전학, 신경 과학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밝히는 일에 골몰했다고 한다. 이렇게 과학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성차별과 편견을 드러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학이 여성 과학자를 폄하한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과학계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벨물리상의 후보에서 제외될 뻔 했으며, 남성 동료와 등등한 공동 연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게 과학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과학자로도, 과학의 연구 대상으로도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은 영원히 과학을 적대시하며 살아야 할까?


비판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과학의 범위를 실험실 밖으로 넓히는 이 책은 최신 과학 기술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과학과 아직 어색하여 거리를 두는 독자들을 과학 안으로 초대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수학과 과학에 약하다는 편견으로 자신도 모르게 과학과의 거리를 두었던 여성, 과학에 특별히 관심도 없었거나, 혹은 과학 자체를 싫어하던 문과생들도, 우리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하여 궁금했던 이들도,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과학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우리 삶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콩팥이나 폐보다 뇌의 성차에 관심이 많았다. 뇌의 성차에 관한 과학지식은 곧잘 남자와 여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지식으로 간주되고, 사회적 성 역할과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왔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유럽과 북미, 호주의 여성 과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이 결성한 뉴로젠더링 네트워크는 과학 연구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게 수행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을 공유한다. 뉴로젠더링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신경 과학은 뇌의 차이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이분법적으로 단수노하된 성 인식에 부합하는 과학 지식의 재생산을 그만두고, 뇌의 성차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세밀한 서사를 만들고자 한다.


뉴로젠더링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은 남녀의 뇌를 가리켜 '모자이크 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모자이크는 흔히 여성과 남성의 특성으로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한데 뒤섞인 상태가 인간의 뇌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조엘의 연구팀은 성별로 나뉜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 기준을 두고 탐색하는 획기적인 연구 방법을 고한하여 성차 연구의 한계를 돌파했다. 조엘은 뇌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개별 뇌의 차이를 규명하는 자신의 연구가 성별 집단의 차이만 드러내는 기존의 연구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조엘은 젠더라는 사회적 편견을 '신화'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젠더에서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신화의 영역에 있는 젠더가 보다 조엘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져만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과 과학을 함께 보는 종합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여성을 아기를 생산해내는 어머니의 몸이라는 관점에서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겨두어 임신에 따른 몸의 변화를 모성으로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임신에 관한 많은 증상이 그렇듯이 입덧의 원인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 입덧이 유산과 조산, 저체중아 출산의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신 결과에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입덧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태아를 중심으로 임신을 이해하는 관점을 반영한다. 하지만 사실 입덧 현상은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몸에서 자라는 또 다른 존재인 태반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 임신 과학의 중심은 바로 이 태반에 있지만 태반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실 태반의 중요성은 과학계에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간의 태반 연구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수행되었을 뿐 태반 자체를 하나의 장기로 충분히 이론화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임신 기간 동안 태반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임신 중인 여성이 단순히 연구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연구의 참여자로서 과학자와 함께 태반 연구를 이끌어 갈 필요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해 더이상은 임신이 신비로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성과 과학을 함께 보는 종합적인 시선을 제안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과학에 접근하거나 과학에서 여성 쪽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만나게 되는 논쟁점을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토대로 하나하나 집어 설명한다.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성염색체와 뇌에서 시작해 태반, 장과 같은 여성 장기를 들여다 보고, 난자 냉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아버지의 정자도 면밀히 살핀다. 차별하는 인공지능과 여성을 모방한 비서 로봇의 문제를 아주 자세히 설명함으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진화론, 물리학과 페미니즘을 함게 연구하는 이점도 이야기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과학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지를 하나하나 깨닫게 되며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에도 많은 부분에 차별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과학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흔히 과학자는 과학을 잘하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으로 가득한 물리학, 공학 분야의 성비 불균형은 '과학은 남자가 잘한다'라는 고정 관념이 마치 사실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 현상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학생들은 여학생에 비해 진입장벽없이 설사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무조건 과학계로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계의 능력주의 신화는 그렇기에 깨뜨려야 한다고 말이다. 과학이 진정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단 한명의 천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알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성도 과학도 더이상 신비롭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태껏 과학계에 존재하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과 함께 과학을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안하는 과학 탐구의 출발 시점은 기존의 '순진무구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는 난자 냉동에 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쌍꺼풀 수술이 될 수도 있고, 화장품 광고만을 띄우는 SNS일수도 있다. 과학 지식은 지식을 만드는 사람과는 무관한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결과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연과 사물의 세계는 나의 몸, 나의 삶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저자의 말처럼 여성과 과학은 더이상 신비롭지 않기를 바래본다. 우리 아이들이 자란 세상에서는 신비롭지 않은 여성과 과학이 실상화 되어 더이상 성별로 고민하는 일은 없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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