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켜요
명수정 지음 / 달그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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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싱지로 감싸인 책표지를 열면 마치 지구를 감싸고 있는 듯한 생명력 있는 붉은 심장이 떠오른다. 명수정 작가님은 순직한 소방관들의
헌신과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그림책으로 내셨다고 하는데 읽다보면 가슴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명수정 작가의 그림책은 단순히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언어의 은유와 이미지의 상징이 만나 만들어낸 하나의 시적 텍스트와 같다. 첫 문장 “내가 켜면 아빠는 꺼요.”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발화된 언어지만, 동시에 소방관의 현실을 꿰뚫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켜다’와 ‘끄다’라는 단어의 반복은 불길과 생명을 동시에 가리키며,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매번 불을 꺼내는 아버지의 존재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책의 언어는 간결하다. 그러나 그 간결함 속에서 나타나는 상징성은 짧고 단정한 문장 속에서 서정과 사회성이 맞물리고, 은유와 현실이 동시에 호흡한다.

“내가 켜면 아빠는 꺼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은유적인 표현에 아이의 시선에서 마주한 아빠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이 선명하게 연상된다.

언젠가 방영했던 모 프로그램에서 화재현장을 다룬 다큐를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충격적이었고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불을 다루는 위험한 직종의 소방관들의 방호복이 불에 취약하다는 것,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모하게 몸을 던져야만 하는 현실, 정부의 미비한 대책까지 듣고 나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뒤로한 채 타인의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 그 강인한 집념과 용기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저 존경스럽고 눈부시다.

“누군가 뜨거움을 켜면, 아빠는 무서움을 꺼요. 뛰어들어요.“ 라는 부분에서 아빠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함께 헌신적인 소방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듯한 ”아빠는 세상을 켜요.” 라는 문구와 함께 펼쳐진 그림은 세상을 밝히고, 생명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 줄의 문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듯한 지구 같은 이미지는 소방관들이 보여준 참 용기와 함께 그들의 희생을 형상화하여 더욱 고결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명수정 작가의 그림책은 비극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절제된 언어로 숭고한 삶의 형상을 빚어냄으로써, 추모와 존경을 넘어 독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내가 소방관이었다면 그 뜨겁고 무시무시한 불 속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었을까?
그 용기와 사명감은 말로 다 헤아리기 어렵다. 하루 빨리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되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영웅들이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소방관 가족이 곁에 있는 한 친구를 떠올리니 그분이 참 자랑스럽고, 우리 곁에서 묵묵히 사명을 다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덮으며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빠’, ‘엄마’, ‘딸’, ‘아들’이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오래도록 남는다.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안녕을 빈다. 더는 ‘인재(人災)’라 불리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가 세상을 켜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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