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책] 땅속의 용이 울 때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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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중 두 번째 책으로 제목이 인상적이다.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옛 할머니들은 대부분 꼬부랑 할머니들이었다. 반면에 꼬부랑 할아버지는 드물었던 것 같다. 요즘엔 꼬부랑 할머니를 만나는 게 흔하지 않다. 꼬부랑 할머니를 보면 드는 생각은 젊은 시절 고단했을 삶이다. 그리고 불편함이다.

1부는 '흙 속에 숨은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지렁이를 뜻하는 거였는데 이 책을 통해 지렁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렁이가 있는 땅이 비옥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유익한 동물이란 건 처음 알았다. 지렁이의 실체를 알고 나니 지렁이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좋아졌다.

진화론 하면 떠오르는 찰스 다윈이 관심 있게 연구한 것이 바로 지렁이라고 한다. 무려 40년 동안 지렁이를 관찰했다는 다윈의 연구,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확률의 환경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지렁이라니 그의 연구에 대한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지렁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통해 그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고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다.

-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존재'라고 하지요. 생각을 할 줄 알아서 문화를 만든 면에서는 훌륭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온 자연을, 다른 생명체를 괴롭게 만들고 있어요. 그러니 하나님께선 지렁이에게 상을 주셨으면 주셨지, 인간에게 상을 줄 수가 없지요. p 27

뒤 이어 저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난 책도 영화도 안 봤지만 제목은 익숙하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야기도 나온다. 역시나 재미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행복이라는 것은 화자가 만든 것과 같은 조화예요.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항상 행복하지만, 화자는 시들어버릴지언정 살아있는 생명의 흙에서 나온 꽃과 같은 행복을 가지고 싶은 거죠. p 41

- 참 한국 사람들 대단하지요. 지렁이는 한자어 지룡(地龍)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그 하찮아 보이는 지렁이를, 햇빛 나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뿐인 그 약한 지렁이를 '저것은 지룡(地龍)이다, 땅속의 용(龍)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 그러니까 결국 지렁이를 알아준 사람은 한국인, 그중에서도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에요. 다윈보다도 먼저 말이죠. 땅속의 용인 지렁이가 환상 속의 용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울지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준 우리 선조들이에요. p 45 ~ 6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단행본으로 1963년 출간된 저자의 책이다. 회사 상사가 나보고 읽어보라고 빌려주었는데 거의 읽질 못해서 이 책을 계기로 구입했고 읽어야 될 책이다. 저자는 이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다시 깨우기 위한 이야기가 바로 '한국인 이야기'라고 밝힌다.

노부부의 실화가 담긴 '여는 말' 속 이야기는 슬픈 느낌을 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때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다시 한국인 이야기를 쓴다.

- 쫓겨 가던 뒷모습, 우리 역사 속에서 허둥지둥 가축처럼 쫓겨 간 한민족,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그때 내가 쓴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였던 거죠. p 60

3장 '다시 만난 한국인의 뒷모습'에서는 한국인 고유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에서 원한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 억울한 것도 풀고, 분한 것도 풀고, 그릇된 것도 우리는 풀어 버리려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풀이요, 분풀이요, 원풀이였어요. 서구와 일본의 문화가 긴장의 문화라면 한국의 문화는 해소의 문화인 셈이지요. p 90

한국인에 대한 예찬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민족성을 콕콕 집어내어 글로 써 내려가는 탁월함과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간 글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자의 책은 쉽게 읽혀진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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