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2014년 5월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클림트 작품전을 관리하기 전에 배경을 알기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과 네이버 지식케스트를 통해 작가의 생애와 가치관, 작품해석등은 작품 관람에 분명한 도움이 되었다. 여러 각도로 작품을 감사할 수 있었으며, 이는 예술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던 지푸라기와 같은 나의 건조한 마음이 따뜻한 봄비를 만난것 같았다. 작품 대신 생에와 예술의 의의에 초점을 맞춰 리뷰를 작성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예술가로 그의 작품 ‘키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철저히 숨긴 베일에 싸인 화가였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성(性)에 대한 표현은 그의 생에에는 보수적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빈 미술가협회로부터 벗어나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빈 분리파’를 결성한다. 예술 그 자체의 자유를 주장했던 그는 시간이 지난후 자신이 만들었던 ‘빈 분리파’ 마저 탈퇴한다. 시대의 이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표현을 제한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나체와 성에 대해서도 대담하게 표현한 작품은 보수파로부터 비난받았지만, 시간이 흘러 그의 예술의 진가를 발견하고, 한때 외설로 여겨지는 것들은 대중에게 예술로 인정 받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헌한 작품에 솔직한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 그는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었을까



예술은 모두의 것이다.


예술은 작가만의 것도 아니고, 평론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다. 예술 작품은 작품에 감동하고 계속해서 작품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대중이 관심으로 예술 작품을 접할때, 에술 작품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어려운 평가와 해석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슴으로 작품을 접할때 예술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예술은 아는만큼 보인다 vs 보게 할 수 있는 눈을 잃게 한다.


작가의 의도와 시대배경을 사전에 공부하는 것과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예술을 접하는 것중 어느것이 바람직한 방법일까? 전자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예술을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있지만, 사고의 틀이 책에 한정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후자는 있는 그대로 예술을 바라볼 수 있지만, 작가가 강조한 특정 관점을 반영되지 않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예술 감상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여행의 경우 책을 통해 미리 알고 가는 것과 백지상태에서 마주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예술을,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완벽한 답은 없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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