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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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소리를 담은 소설

책은 눈으로 읽으며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눈으로 읽은 책의 소리가 귀로 들린다. 현의노래에는 가야금의 깊은 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로운 관점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삶에 대한 관점을 넓힐 수 있다. 소설, 수필, 산문, 에세이 등의 종류를 불문하고 책을 읽다 보면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악기인 ‘가야금’과 ‘소리’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빠져들었으며,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떠올렸다. 가야 고을의 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하는 미륵, 그 소리를 만드는 과정, 마침내 완성된 가야금 소리.  책을 읽으며 잠시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상상했다. 각 고을의 혼을 담은 영혼의 소리를. 마치 책의 시공간에 내가 함께 있는 것처럼 가슴이 울린다. 


작가 김훈

사람들은 김훈 작가의 문체는 힘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아직은 잘 못느끼겠다. 아직 독서의 깊이가 부족해서 그런지 힘이 있다 없다 등 문체의 특징까지는 인지하지 못하겠다.하지만, 그의 글은 참 인상깊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했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표현이 풍부하다. 적어도 왜 많은 사람들이 김훈, 김훈 하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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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문장들

너의 말이 아름답다.

너의 말이 불법보다 어렵구나, 


손가락이 줄을 튕길 때, 소리는 태어났다. 태어나서 흔들렸고 흔들리다가 사라졌다. 손가락이 줄을 버릴 때, 줄은 떨렸고 소리는 일어섰다. 떨리던 줄이 고요를 되찾은 후에도 서리는 허공에서 흔들리다가 잦아들었다. 소리가 태어나는 자리와 흔들리는 자리와 사라지는 자리가 어디인지, 니문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지만 그 흔들리는 동안만큼의 시간이 니문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소리는 귀로 들어왔고 입으로 들어왔고 콧구멍과 땀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우륵의 몸은 소리에 젖었고, 몸속에서 바람이 일고 숲이 흔들렸다. 우륵은 밤바다를 향해 아아아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니문이 대피리를 만들었다. 니문은 눈에 묻히는 시체들을 향해 대피를 불어주었다. 소리는 두어번 출렁이다가 길게 뻗으며 사라졌다. 눈 속에서 우륵은 니문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살아 있는 자의 몸속의 바람이 빈 공간을 지나며 세상의 바람과 부벼지는 소리였다. 소리는 산 자 쪽으로 다가왔다. 겨우내 눈이 내렸다.




순간은 영원하며 동시에 소멸한다.



소리가 울렸고, 울리는 소리가 우륵의 몸속으로 들어와 흔들렸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소리였다. 그리고 지나간 모든 소리의 그림자들을 모두 끌어안은 소리였다. 소리가 소리를 불러냈고, 불러낸 소리가 태어나면 앞선 소리는 죽었다. 죽는 소리와 나는 소리가 잇닿았고, 죽는 소리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소리가 솟아, 소리는 생멸을 부딪쳐가며 펼쳐졌고 또 흘러갔다. 소리들은 낯설었고, 낯설어서 반가웠으며, 친숙했다. 


니문아, 금과 피리는 어떻게 다르냐?

피리는 숨을 길게 내서 소리를 끌고 갈 수 있지만 금은 소리를 한번 튕기면 그만입니다. 또 피리는 숨의 크기로 소리의 크기를 바꿀 수 있지만, 금의 소리는 한번 울리면 크기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그것이 모두 몸의 일이다. 숨이 소리를 끌거나 밀고, 손가락이 소리를 튕기는 것이다.

하오면 소리는 몸속에 있는 것입니까?

소리는 몸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올 수가 없다.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빌려서 쓰고 곧 돌려주는 것이다. 소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가낟. 그 자리는 바로 적막이다. 그 짧은 동안 흔들리고 구르고 굽이 치는 것. 소리는 거스를 수 없다. 



독서를 멈추고 눈을 감고 가야금 소리를 들어보니, 평소에는 지루하게만 생각했던 그 소리는 새롭게 다가왔다. 


우륵은 금을 무릎에 안았다. 우륵이 오른손으로 맨 윗줄을 튕겼다. 소리는 아득히 깊었고, 더 깊고, 더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우륵의 왼손이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어올렸다. 소리는 흔들리면서 돌아섰고, 돌아서면서 휘어졌다. 우륵의 오른손이 다음 줄을 튕겼다. 소리는 넓고 둥글었다. 우륵의 왼손이 둥근 파문으로 벌어져가는 소리를 눌렀다, 소리는 잔무늬로 번지면서 내려앉았고, 내려앉는 소리의 끝이 감겼다. 다시 우륵이 세번째 줄을 튕겼다. 소리는 방울지면서 솟았다. 솟는 소리를 우륵의 왼손이 다시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더욱 눌렀다. 소리의 방울이 부서지면서 수만은 잔 방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 열 두줄은 우륵의 손바닥에 가득 찼다. 손바닥 안에서 열두 줄은 넉넉했다. 우륵의 손가락은 열두 줄을 바쁘게 넘나들었다. 손가락들은 바빴으나, 가벼워서 한가해보였다. 


니문이 사마귀를 들여다보며 금을 뜯었다. 사마귀가 앞다리를 들었다. 니문의 소리가 솟았다. 사마귀가 앞다리 한 쌍을 마주 비볐다. 니문의 소리가 잘게 부서졌다. 사마귀가 긴 몸통을 꺾으며 다가왔다. 니문의 소리는 꺾이면서 휘돌아싿. 사마귀는 니문 앞을 지나 봉분 뒤로 돌아갔다. 니문의 소리가 멎었다. 민촌에서 저녁을 짓는 연기가 올랐다. 산맥과 봉분과 민촌의 지붕 위에 가을빛이 가득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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