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전 동물 이야기가 좋습니다. 내가 상상한 뱅골 호랑이와 함께한 소년의 이야기가 사실이길 바랍니다.
호랑이를 나를 해치는 적이 아닌 위기를 극복하는 동반자로 여기는 파이의 지혜는 제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말한 부모가 죽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두번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책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책의 소년은 동물들을 만들어내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이라는 최고의 순간을 선물했으니까요.




#인도 소년의 모험기
인도의 한 가족은 오래동안 운영하던 동물원을 정산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선택한다. 그들은 동물들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생각으로 긴 항해를 시작된다. 순탄하던 항해는 폭풍우를 만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태풍으로 소년은 가족을 모두 잃고 구명정에 홀로 남게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년, 호랑이, 하이애나, 오랑우탄, 얼룩말 이렇게 다섯이 구명정에 남는다. 과연 소년은 호랑이와 함께 있는 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책은 깊이를 남긴다.
책은 주체적인 행동이다. 다방면으로 날아가버리는 사고를 순간에 통제하고, 책을 수평적, 수직적으로 읽어나간다. 산만한 사고와 도망치고 싶다는 유혹을 버티고 집중을 해야하는 과정임으로 사람들은 쉽게 정신적 피곤함을 느낀다. 하지만, 책에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책은 독자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독서는 이런 상상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또한, 독서는 사색을 돕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잠시 멈추고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만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독서를 했을때의 그 여운과 기억은 더욱 오래 지속될 것이다.
난 독서가 좋다.


#영화는 도움을 준다.
책을 읽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읽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독서란 전혀 즐겁지 않은 행동이다. 반면 영화는 시각, 청각을 이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비록 상상력을 완벽하게 구연하기는 힘들어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에는 좋은 책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특히 감동 대작의 경우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돕는 것은 책보다는 영화의 공로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영화는 대중의 이해와 접근을 돕는다.


#영화 파이이이기, 책 파이이야기
영화 평론가들은 ‘이보다 더 원작을 제대로 옮겨놓을 수는 없다’ 고 영화에 대한 높은 평점을 준다. 현란한 3D 기술과 아름다운 영상, 음향미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주인공의 깊은 감정표현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토리와 표현은 너무 좋았다. 어떤 부분은 내가 상상했던것 그 이상으로 표현하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감독의 능력의 대단함에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영화가 전부를 대체할 수 있는 책만의 장점이 있었다. 책을 보는 동안 내게 있었던 상상의 즐거움이다. 또한, 영화에서는 심도깊게 다루지 않았던 초반부 파이의 심정이다. 생각지 못했던 도입부에서 느낀 감정은 영화만 봤더라면 놓쳤을법한 나만의 감동포인트였다. 그리고, 좋았던 부분을 글로 남기고, 나의 즐거운 기억을 오래동안 간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의 질문이 있다. 그리고 나의 질문이 있다.
“어떤 이야기가 더 좋나요? 호랑이가 나오는 첫번째, 가족이 죽는 두번째”
“어떤 이야기가 더 좋나요? 상상력이 있는 책, 도움이 있는 영화”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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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中
울타리 동물들이 과연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가? 달리 생각하면 그들은 야생에서 생존의 위협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채 울타리안에서 생활하면 된다. 생명의 위협, 굶주림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으며, 청결함을 유지하는 일은 기생충 문제도 해결한다.
동물에게 자유가 있는데 그것을 인간이 구속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은 야생의 본능을 잃은 결과 생존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상반되는 가치를 가졌다.

종교의 다양성이 나쁜 것인가?
흰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받아드리는 것이 문제가 될것이 있는가? 하나만 고집하는 자세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반과 다르다는 의미의 이반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때로의 아이들처럼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때로는 오히려 이런 자세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종교와 깨달음에 관심이 많은 20대, 향음에 적극적인 60대, 모두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적합함과 부적합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반’ 의 의미와 필요성을 다시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조난객의 하루 일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에서의 규칙성을 가지는 것.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을 가지는 것.

자랑은 아니지만 난 그 순간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으로보면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숨지으며 생명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간 싸우다가 희망을 놓아버린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뺴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생에 대한 허기로 뭉쳐진 아둔함ㅇ레 불과할지도 모른다.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삼임 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밤이 지나갔다. 느릿느릿. 아주 천천히
(시간의 잔잔함을 아주 잘 설명해준 것)

내가 생존의 위험을 느낀다면 분노와 동정심은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일차적인 부분이 충족되지 않은다면 다른 사람, 사물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익숙해진다.
“가장 끔찍한 일은, 이제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그릴 수 있지만 모습은 점점 멀어져요/ 잘 보려고 하면 곧 희미해져버룡. 목소리도 마찬가지고, 거리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모든 게 되살아나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지요. 자기 어머니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에요.

사람들은 조바심에 시달려 이주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못 얻을 거라는 불안감이 야금야금 파고들어서. 일 년 걸려 쌓은 것이 남의 손에 하루 만에 무너지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장래가 꽉 막힌 것 같아서. 본인은 괜찮지만 자녀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 때문에. 행복과 번영을 다른 곳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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