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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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독을 바랍니다.”  라는 겸손한 말은 이 책이 가진 교훈과 가치에 비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토를 여행하며 독자에게 보내는 엽서 형식의 내용은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선현의 엽서를 직접 받은것과 같은 느낌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당신은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사멸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의 심금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이켜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새로이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라고 하였습니다. ‘과거’를 읽기보다 ‘현재’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귀환입니다.
나는 비 내리는 백마강을 오르내리며 당신이 가지고 오라던 상상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남아 있는 유적들 조립하여 과거를 복원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그 과거의 모습으로부터 현재를 직시하고 다시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시야를 열어가는 상상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적 사실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부터의 교훈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 공부다. 지금의 역사 교육은 시험을 위해, 또는 지적 유희를 위해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해 없이 암기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를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 ‘예비’ 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은 나의 기본을, 주춧돌을 쌓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현시점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사회는 비록 합격자와 불합격자로 구분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 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외면에 치중하기 보다는 내면에 소리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어인.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표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마음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다.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강물도 철산리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암울한 강물의 시절도 그 고난의 장을 마감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바다가 됩니다. 달려야 할 목표가 없다기보다 달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은 부질없었던 강물의 시절을 뉘우치는 각성의 자리이면서 이제는 드넓은 바다를 향하여 시야를 열어나가는 조망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은 강물의 본성이 아나라고 생각됩니다.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하여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를 회복하고 청천하늘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방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목표로서의 평화입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마지막 엽서를 앞에 놓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엽서 대신 파란 색종이 한 장을 띄우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곳에 서서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받은 색종이에 담긴 바다의 이야기를 읽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의 국토와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왔던 나의 작은 발길도 생각하면 바다로 향하는 강물의 여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한 문장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비록 출간된지 10년도 넘은 책이지만, 이 문장은 정말 내게 보내는 저자의 편지같이 느껴졌다. 언제나 나를 응원하시는 부모님의 마음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내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수 있는 용기를 얻은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이 리뷰를 쓰는 당시의 나의 느낌을 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제나 배움의 자세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아직 강물이고, 바다를 찾아 떠나는 과정의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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