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고백들 에세이&
이혜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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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가 직업인 나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요리교실을 1년 정도 꾸준히 다녔지만, 그때 깨달은 건 난 먹는 건 참 잘 한다는 사실 뿐......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요리는 못하지만, 요리 에세이는 참 매혹적이란 걸 이혜미 시인의 '식탁 위의 고백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속에는 참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나도 만들어 본 라따뚜이, 최근에 처음 먹어 본 양파 수프, 소라를 닮은 콘길리에 파스타,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은 스모크 크림 스튜 등등. 그 음식들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추억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시인의 이야기 속에 빠져 들어 함께 음식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요리가 힘든 나이지만, 책을 덮으며, 재료를 사서 다듬고, 오랜 시간 끓여서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어졌다. 지금 누군가와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은 당신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p.27

슬픔에 빠져 주위가 암담할 때 당근을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주로부터 지구로 파견 나온 스파이가 된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 세계의 비애 속에서 주홍 단검을 손에 쥐고 드리워진 우울을 가르며 가야지. 당근이 깊이를 알 수 없이 두려운 땅 속에서도 은밀하게 자신의 빛을 지키는 것처럼.


P.98

양파의 매운기를 빼는 방법은 물 혹은 불이다. 찬물에 담그거나, 불 위에서 볶거나. 슬픈 날 목욕이나 수영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감정은 의외로 수용성이어서 물에 잘 씻긴다.

P.135

물론 무지개에 속도가 있다는 건 이 방이 지구와 함께 천천히 우주의 궤도를 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행성과 시간이 만나 춤추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은 시계를 만들고 프리즘을 만들고 저녁에게로 달아나는 노을을 바라봅니다.

P.131

바삭하게 구워 한 김 식힌 웰링턴을 자르면 드디어 붉고 둥근 단면이 드러난다.

예쁘게 익었네, 당신의 기뻐하는 얼굴을 훔쳐보며 생각한다.

숨은 아이를 찾은 술래처럼 웃는구나.

P.143

방부제를 넣지 않은 소스들이 그렇듯 페스토도 한순간이다. 가급적 만든 당이레 다 쓰거나 길어봤자 일주일. 가끔은 상해버려서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하는 것들이 있다. 뒤도 안 돌아보지. 딱 한 시절 아름답기로 했던 사람처럼. 그래. 사시사철 영원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 마음이겠니.

P.219

요리는 접시에 쓴 시, 시는 종이에 담아낸 요리 같습니다.

P.220

좋아해요, 말하고 싶은 순간마다 요리를 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많이 생각합니다, 선언하는 마음으로 접시를 놓았습니다.

 

       #에세이앤 #에세이앤시리즈 #식탁위의고백들 #이혜미 #창비 #에세이


*에세이&시리즈 멤버로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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