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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에게 배움을 입을 기회가 있어서 병원을 찾아갔다가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선물 받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자의 필체는 악필이었고 당신께서도 아시는 듯 책의 속지에 사인을 남기시면서 "글씨를 못 써서..."라며 얼버무리셨다.
하지만 정작 책에는 악필과는 대조적으로, 공들여 빚은 미문들이 참으로 많았다. 쉽게 읽히는 대중적 필치이면서도 품위와 격이 살아있는 좋은 문장이었다. 저자가 본래는 다소 소녀 취향인 듯 하나 오랜 경험 속에서 균형이 생겨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독자 쪽이 센치하게 이끌려간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처럼 사랑의 경험, 특히 첫사랑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희열과 비감이 뒤섞인 센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그런 추억으로 잠시 빠지게 됐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치료한 환자 사례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영화나 책에서 간접 경험한 풍부한 예를 보태어 독자 스스로 자기 체험에 빠져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례의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걸 정신분석적 개념의 바탕 위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읽는 동안 책의 사례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 대해서도 문득문득 생각할 기회를 가졌는데 생각이 많아지면서도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통찰력 있는 해석은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정신분석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대를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자신을 한없이 평가절하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정신분석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저자의 따스하고도 친절한 문장 덕택에 미력하나마 정신분석의 핵심을 깨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 역시, 정신분석가에 대해 본의 아닌 조소를 보내고 정신분석의 효용에 대해서도 늘 의문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닫혔던 마음이 많이 녹아내렸다.
보통은 책에 밑줄을 잘 안 긋는데 이 책에는 많이 그었다. 그 중 하나만 발췌한다.
"사랑하는 이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재발견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사랑이 식고, 그 사랑이 떠나 버리는 것, 그래서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를 알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