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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ㅣ 가랑비메이커 단상집 1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0년 9월
평점 :
저자/작품 소개
저자 가랑비메이커는 그럴듯한 이야기보다 삶으로 읽히길 바라며, 모두가 사랑할 만한 것들을 사랑한다면, 자신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낮고 고요한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에 이끌려 작은 연못에서도 커다란 파도에 부딪히는 사람, 그리하여 세밀하고도 격정적인 내면과 시대적 흐름을 쓰고 마는 사람이다. 프리라이터이자 출판사 문장과장면들의 디렉터로서 단상집 시리즈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고백집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를 기획, 집필했다. 가족 에세이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를 기획, 공동집필 했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은 지금, 여기 순간을 스치는 감정과 깊은 사유를 담담히 풀어낸 단상집이다. 저자 가랑비메이커의 첫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2015년 출간 직후 5년간 독립출판계의 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그간 더욱 깊어진 새로운 문장을 그러모아 2020년 개정증보판으로 정식 출간되었다.
인상 깊은 부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깊은 곳에서 빛을 내는 문장이 있다. 어느 곳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다가도 별안간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내가 당신의 그런 문장이었으면.”
_p.178
어떠한 작품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내 마음 하나 놓을 수 있는 문장이라도 움켜쥐어야 비로소 안도하곤 했다. 문장을 수집하겠다던 나의 첫 다짐이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해 주는, 내 상황과 감정을 알아봐 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 그렇게 충만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곱씹고 되뇌었던 문장들이 결국 내가 되곤 했으니까.
이 책에는 그런 문장들이 가득했다. 언젠가 또 다른 삶의 경험으로 다시금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까지도. 그저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으로 오롯이 와닿을 순간을 위해 남겨 두고 싶다. 저자의 긴 계절을 닮은 문장들이 곳곳에 스밀 어느 날,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내게 글이라는 건 가슴속에 만들어 놓은 작은방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_p.218
유난히 생각이 많았고 그만큼 그늘도 많았던 저자는 그 모두를 일기장에 쏟아두었다고 했다. 허공에 흩어져 버릴 소리보단 언제라도 페이지 한편을 지키고 있을 몇 문장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여전히 가장 사적인 일기장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 나로서는 저자의 일기 같은 글이 몹시 부러웠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력이 그랬고, 어느 단상을 붙잡아 자신에게 투영하는 모습이 그랬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내가 되는 것. 이것이 저자로부터 건네받은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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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건, 언제나 지금, 여기를 스치며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간다.
🎬 오래 붙잡고 싶은 단상
늦은 밤 혹은 짙은 새벽
그 어떤 방해도 없는 곳으로
고요하게 남겨두고 싶은 시간이 있다.
p.24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이들과 부지런히 관계하며 산다고 하여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이 세계 가운데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이들로부터 거부당한다 하여도 그것이 온 세상으로부터 내팽개쳐진 것은 아니다.
p.43
침묵.
그 안에서 끊임없이 길을 찾았지만
다가오는 것은 벽뿐이었다고.
소리치고 싶은 날이 있다.
p.60
잠시 눈 깜빡해본 사람들이 평생 어둠 속을 더듬더듬거리는 사람의 심경을 어떻게 알겠어요.
모르지. 모를 거야. 그 기약 없는 적막에는 인내심조차 무용하다는 걸.
p.89
* 위 서평은 출판사 문장과장면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