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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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진이라고는 달랑 한장.

그것도 어린 소녀 시절의 사진이라 내게는 그녀의 삶의 주름보다 소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캐나다 출신 작가의 디킨슨 에세이가 반가웠다. 조금이나마 나를 에밀리에게 가깝게 소개해 줄 듯 했다.



책을 다 읽고 그녀의 시를 소리 내어 읽고 보니.

그녀의 단어들이 내 피부 위를 뛰놀고 있다.

짜릿한 전율이 인다.

가까워짐의 신호다.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감히 말한다.



도미니크 포르티에의 상상을 더한

에밀리의 삶에 초대받았다.

그곳은 종이로 만든 마을,



디킨스가 꿈꾸었던 바로 그곳,

(린든: 지도에 이름은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다.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도를 표절하지 못하도록 만든 지명이다.)



이름은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그곳,

종이로 만든 마을



"그리고 방 여기저기에 책더미가 쌓여 있다.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나라가 있다. 하늘의 별, 나무, 새, 거미, 버섯.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실과 허구의 나라들이 들어 있다. 책 속에 또 책이 있다. 거울의 방 처럼. 서로를 비추는 거울 속에서 방안에 있는 사람은 조금싹 작아지고 저 끝에 있는 거울에서는 개미만큼 작게 보인다.

책 한권에는 백권의 책이 들어 있다. 책은 항상 열려 있는, 절대 닫히는 법이 없는 문이다. 에밀리는 십만개의 바람이 들어오는 방에서 살았다. 그래서 항상 담요가 필요했다.p53

분명 도미니크는 자료만으로 자신만의 종이 마을을 만들고 그곳에서 에밀리 디킨슨을 만난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 이리도 생생하게 디킨슨의 삶을 그려 낼 수 있을까. 마치 19세기 에밀리의 삶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저자는 에밀리가 생각하는 시에 대해 시인의 화려한 언어 속이 아니라 그녀가 보고 있던 푸르스름한 새알 세개와 같은 얇은 알 껍질 속에, 태어날 존재의 아주 작은 심장 속에 숨어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녀의 시어들을 이리도 잘 해석할 수 있을까. (아직 에밀리의 시를 전부 다 알지 못하기에 어쩌면 이러한 시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19세기에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빤하고 뻔한 하루 일과들을 견디는 일이다. 그녀는 과감하게 그러한 삶을 거부하고 독신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그 방 안에서 누구보다 열렬하게 (시를) 사랑하고, 하늘, 나무, 귀뚜라미 울음소리 등 놓치기 쉬운 것들과 함께 했다.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종이위에 머물렀다. 이름도 대상도 없는 절박함으로 부터의 구원으로 그녀는 쓰면서 자유해졌다.

우물, 심연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으며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서 글을 썼다.

세상과 이상 사이에서 발을 걸치고서.

세상이 기대하는 어떤 극적인 사건이나 질병은 없었다. 그저 그녀는 시를 택했다. 조금씩 자신의 세계로 침잠 했다.



저자 도미니크는 에밀리를 추적하기 위해 애머스트로 향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시로 지어진 집을 읽고 종이로 만든 곳 린든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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