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봄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5
다니엘 살나브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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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벛꽃이 흐날리고 노오란 개나리들이 활짝 피었다. 미세먼지로 흐릿한 날씨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드믈게 푸른 하늘도 얼굴을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 겨울과 봄 그 사이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꽃피고 새싹이 돋는 설렘의 계절이 아닌 여전히 추운 봄에 갇힌 사람들의 시간이 있다.



삶의 순간의 기록이다. 춥고 시린봄의 햇살이 방문하기 전 을씨년 스러운 틈새의 기록이다. 11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 속 순간에 머문다. 당연한 일상의 한 조각에 서린 찬 바람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함께가 아닌 홀로의 기억 탓일까. 함께 여도 고독에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져 가슴이 뻐근해진다.
삶 속에서 누구나 느꼈을 고독과 환멸, 쓸쓸함에 대하여 지나치지 않은 문체로 담담하게 적어내린다. 때로는 그 담담함이 애통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편지에서 서운함이 읽히고, 오래된 연인의 갈림과 이별의 끝이 그랬다. 일상처럼 다가오는 삶의 순간들, 모든 것을 다 기억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바람결에 흘러 보내듯 읽어내리는 행위만으로 내 안의 오래 머문 찬 바람이 씻기는 듯 하다.

<밑줄 긋기>

그런데 그녀는 우리의 안부는 묻지 않고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P16

짐을 잔뜩 실은 배 한 척이 적막한 황야의 끝에 붙은 외딴 바위 밑둥에 작은 파도로 생기를 불어넣고 지나가는 것처럼 그들은 작은 파도로 그녀를 감동시키려고 방문했다. 그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환대했다. P22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아무것도 제자리에 있지 않지만, 세상 소음의 거친 충격 너머, 그 소리들의 난폭한 경쟁 너머에서 어떤 질서, 어떤 규칙성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도시의 은근한 소음은 높 낮이,길이,세기가 변화무쌍한 소음이 겹겹이 모여 이뤄지고, P66

그리고 그와 시계 사이에 이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가 끼어 있는 바람에 그 덩어리의 이상한 궤변과 변덕에 휘둘리는 한에는 그에게 구원이란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이 세계와 그 사이에 이 성가신 몸뚱어리가 버티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그를 덮고 있는 거대한 나무로 인해 쏟아지는 햇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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