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옛 것을 돌아보면서 오늘을 새롭게 한다고 했던가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작품들은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p6 이 시간에도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이야기, 급진적인 문명의 발달로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한 페혜라고 한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발견 되는 잔인한 범죄 사실들을 볼 수 있다. 옛날에 범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에 뿌리 깊이 각인 된 죄성들의 발현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다만 법은 그것을 통제하고 절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처벌이라는 방법으로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재밌는 사실은 오늘 날의 사건들이 서구의 명화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화를 그린 화가의 작품 속에도 숨겨진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인간은 악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되려 우리는 생각해 보이야 한다고 끊임없이 호소하고 질문한다. 나는 오늘날 어떻게 법을 수호하며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명화에 얽힌 이야기도 재밌는데, 법적 공방을 듣게 되면 여느 막장 드라마보다 재밌다. 아니 이미 그 시절에도 막장은 존재했다. 예를들면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의 그림으로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라는 그림이 있다. 이미 여기저기서 봐서 눈에 익은 작품이다. 왼편에는 세 형제들이 손을 들고 아버지께 맹세를 하고 있다. 오른 편에는 여인들이 절망하며 울고 있다. 폭행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다. 술자리에만 가면 흔히 듣는 다는 17:1의 전설은 남성들의 싸움에 대한 미화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과연 싸움이 미화 할 만한 것인가. 결국 폭력은 미화 될 수 없다. 전쟁의 비극의 끝은 결국 호타리우스 가문의 형제 하나의 생존으로 막을 내린다. 폭력은 미화될 수도 상처없이 끝낼 수도 없다. 세상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이 보인다. 예술에 대한 식견, 세상을 읽는 눈, 법적 지식에 자신만의 철학이 버무려지니 안 읽을 이유가 없다.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정보중심적이지도 않고 섹시하다. 적정온도를 지킨 매력적인 명화 스캔들과 여러가지 명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다. 때때로 현재와 과거를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기분이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된 듯 여기저기 시간여행을 하는 짜릿함이 있다. 그림 속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듯 듣다보면 나도 어느새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