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 인물이 아님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박주영 판사님의 <어떤 양형이유>가 가슴 깊이박혀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비극을 1열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판사라면, 그 비극 속에서 열연하며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벌을 달라 호소하는 배우는 바로 검사라는 직업 일 것이다.소설 속에서 검사를 칼잡이 망나니로 표현한다. 죄를 지은 인간의 삶을 생명을 한 순간에 날릴칼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악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생존자이자범법자인 칼잡이 검사가 주인공이다. 모두 그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권순조 검사는 피해 생존자에서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소설이니 가능한 일이고, 실제라면..그는 마지막까지 어린 소년에게 지울 수 없는 두려움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거악을 처단하고자 차악을 택했다. 그러나 악은 악일 뿐이다. 회색 지대에 깊이 몸을 담그면 물이 든다. 투명한 물에 잉크를 빠뜨리면 그 물은 더 이상 맑지 않다. 맑고 투명한 정의, 완벽한 선은 유토피아적인 상상이다. 그것을 꿈꿀만큼 순진하다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의, 느리더라도 고지식하더라도 지켜져야 하는 최소 방어선은 있어야 한다. 흔들릴 수 있고, 나의 이익을 먼저 고려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그들의 선택의 결과에 따라 그들의 다음 스텝은 달라진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선택했고 방향성에 맞게 나아간다. 그들의 무대도 변한다. 조승우 배우님이 검사로 나왔던 드라마<비밀의 숲>이 떠오른다. 특히 호걸의 모습에서 유재만 배우가 맡았던 (이창준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초심을 잃고 거악에 맞서다 거악을 쫒아 스스로 괴물에 잠식된 모습이 비슷했다.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죄 앞에서 순결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고 실행을 했는가의 차이일 뿐. 이럴때 필요한 말이 최소한의 선의가 아닐까.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선택해야 할 마지막 마지노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