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10
루 월리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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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늘 하던 어린이 성극의 단골 주제였던 "동방박사"와 "빈방있어요?" 의 사실적인 묘사는 천일야화 속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설레이는 이야깃 속으로의 초대였다. 동방박사가 타고 온 하얀 낙타와, 그들이 이방사람임에도 어떻게 별의 초청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기예수님을 찾아 경배하기로 마음 먹고 긴 여정을 떠나오게 되었는지 서로의 대화 속에 푹 빠져서 어느새 2000년 전의 베들레헴의 동굴이자 마굿간의 그 곳에 나 또한 머물게 되었다. 인도인과 그리스인 그리고 이집트인은 인종은 달랐으나 아기 예수를 보기를 원했고, 유대의 왕의로 오실이이기에 그들은 처음 왕의 문지기에게 찾아가 묻게 된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으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지 처음에는 알 지 못하였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당연히 왕궁을 찾게 된다.

동방박사의 이야기와 함께 유다 지파의 자손 중 여호수아를 도왔다고 알려진 허의 집안의 아들이야기로 큰 축을 이어나간다. 이 인물은 허구 속 인물이지만,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그 시대를 구석구석에서 겪고 유대인으로서 안티오크라는 곳에서의 생활과 로마 속의 이야기,그리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군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로마인이 우리를 그렇게 깔볼 만한 근거가 있는지 더 확실히 알고싶어요. 제가 어떤 면에서 그보다 못할까요? 저희는 하등한 민족인가요? 제 아무리 황제의 면전이라 하더라도 왜 노예처럼 비굴한 기분을 느껴야 할까요?"p152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으나 부유한 유대집안의 아들로 어려움 없이 지내던 유다는 어릴적 로마인 친구 메살라의 변화에 혼돈스러워 어머니에게 질문하였다. 여기서 지혜로운 그의 어머니는 말씀으로 선대 조상들의 믿음과 비젼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유대인의 교육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뒤지지 않는다. 특히 토라에 대한 가르침으로 자라난 유다는 여러 역경과 시험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후에 발타사르와의 만남에서 믿음이 자라나고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사명과 메시아의 구원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는 집안의 배경으로 고등교육도 맣이 받았고, 갤러선에서의 극적인 귀환이후 5년간의 로마시민권자로 아리우스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로마인의로서의 권력의 힘과 재산, 전투력 지휘법 등에 대해 배우게 되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않았다.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님께 했던 질문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인들처럼 하면 안돼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였던 듯하다. 물론 그 이면에 그가 뿌리를 잊지 않았던 데에는 어머니 와 동생에 대한 마음과 메살라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요즘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가장 큰 가치인 사랑과 용서는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 이후이니 구약의 가르침으로 자라난 그에게 복수는 필수적이었던 듯 하다.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목말라하던 유다에게 우물가에서 물을 주시는 것으로 스치기는 하지만 공생애의 삶을 사시기 전까지는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마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 시대의 안티오크의 삶과 그곳의 신들에 대한 묘사 속에서, 2000년 전의 배경의 그 곳과 현재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오늘을 위해 나는 주거나 받는

오늘을 위해 나는 마시며 산다네

오늘을 위해 나는 청하거나 빌린다네.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그 누가 알리?


다프네 숲에서 길을 잃은 유다는 그곳에서 다프네를 숭배하는 이들의 목표가 무질서한 사랑임을 발견하고 숲이라는 거대한 신전에 이끌리어 관능주의에 탐닉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더 거룩한 의미의 사랑을 원치 않음을 발견한다. 요즘 사랑이 쾌락적이며, 계산적이고 손익손해를 따져가서 밀당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 때도 그러한 사랑의 형태는 존재해 왔다. 다만 로마인들은 그들의 욕구를 각종 신들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은둔을 위한 철학을 찾았고, 위안을 위한 종교의식을 하며 포장하였다. 화려하고 지혜로운 그리스식의 여러 신들과 지혜의 철학위에 로마인들은 폭력성을 더하였고, 그들의 경주마문화와 검투사와 전쟁을 즐겨하였다. 그들에게 유능함이란 다른 이들을 풍자를 통한 비하와 멸시로 자신의 뛰어남을 들어내는 것이었다. 유다의 어린 시절의 메살라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아폴론을 닮은 그는 경주마차를 몰며 인기가 넘쳐나고, 불의로 탈취한 벤허의 자산으로 부자가 되어있었다. 로마인들의 압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독립을 꿈꾸고, 강력한 리더쉽을 기다리게 되지만,


이집트에서 온 동방의 박사 발타사르는 구원은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나 권력자를 바꾸어도 대체자가 나타날 것임에 대해 얘기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며 이땅의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한다. 유다는 이에대해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될 자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왕으로 태어난 자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며 그들은 각자 다른 자기만의 해석으로 예수님을 추종하게 되고 돕게 된다.

성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은 로마인들의 손을 거쳤으나 사실은 유대인들중에 대제사장들과 오랜 기간 구약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믿던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했을까. 궁극적으로의 그 일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이념대로 자신들을 통치해줄 메시아를 기다렸고, 함께 해방을 꿈꾸게 해줄 강력한 지휘관이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오는 하나님의 어린 양에 실망하였다. 미문에서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선포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말만 하고 조용히 물러나시는 선하신 그분의 발걸음에 자신들이 기다린 그들의 왕이 아니라고 선택하고 등을 돌려버린다. 물론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에 대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정치권의 뉴스를 보며 오늘도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함꼐 해결이라기 보다는 당의 이익에 맞추어서 발표되는 안건들과 대안들.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가 들어있다. 이것은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사람의 본성적인 면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벤허 유다의 가치변화를 주목하게 된다. 복수를 꿈꾸던 자가 복수가 아닌 사명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잠시 이집트의 여인에게 홀려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유복함도 내려놓고,예수님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시작은 그도 다른 이들처럼 정치적인 유대의 왕에게 힘을 보테는 사령관으로서의 역할 설정이었지만 말이다. 그의 모습은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에 대한 비젼을 받고 바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기 전의 모습과도 같다. (물론 완전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경주마차에서의 승리 이후 시모니데스와 유다와 발타사르는 각지 다른 해석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좆는다. 시모니데스는 예언의 말씀을 믿지만, 곧 오실 왕으로서 발타사르는 인류를 구원해주실 메시아로서,그 와중에 유다는 줄곧 질문을 던지면서도 언제든 예수님을 도와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한다.

모두들 예수님의 존재와 그의 표적과 이적에 놀라면서도 나사렛 사람이 미문에서 그냥 반대편 문르로 나갔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들을 돌린 이가 있는가 하면, 유다는 이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이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그의 사명은 정치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가 왜 계속 가난한 자들과 머무르고 힘 없는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친구가 되어주었는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 깨달음 덕에 예수님이 칼과 몽둥이에 끌려가실 때에도 십자가에 메달릴 때에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예언이 성취되어 부활 하려면 먼저 그의 죽으심이 있어야함을 알기에, 결국 그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후 로마의 이스라엘에 대한 핍박은 심해지고 유다는 카타콤(지하교하) 설립에 물자를 대며 자신의 사명을 다해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성경은 40여명의 저자가 꽤 오랜 시간을 같은 주제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적었다. 때로는 같은 사건이 반복되기도 하고 저자의 관점에 따라서 생략된 구절도 있지만 같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벤허는 철저하게 관찰자와 갈등하며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한 저자의 허구적 인물과 실제적 사건의 줄다리기 속에서 탄생했다. 미지의 이방세계의 매력과 현재와 과거의 인간 군상의 비슷함을 그려내며 과거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로 끄집어 낸 허의 아들 벤허 유다의 이야기는 오늘 날의 크리스챤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고,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매혹적인 역사 소설로 소개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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