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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지음, 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7년 11월
평점 :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마이클 샌델의 책이 작년 한 해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웃 블로그에서 마이클 샌델의 책과 함께 소개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는
샌델의 책을 읽고도 뭔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을 채워줄 것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Stumbling Toward Justice' 라는 제목이 주는 뉘앙스를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리 호이나키의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야 책의 제목이 전해주는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정의는 비틀거리면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며, 비틀거리면서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리 호이나키는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담담히 풀어 설명하지요.
그가 생의 분기점마다 겪고 느낀 일들을 세밀하게 산문체로 적어놓은 책입니다.
처음엔 읽기 쉬운듯 보였지만 저자가 선택한 인생의 갈림길마다 고뇌했던 내용들을 풀어놓고
결국 생의 행로를 바꾸도록 결단하게 한 의식과 사유의 흐름을 상세히 표현했기에
읽어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매끄럽지 않은 번역 탓인지 아님 너무 빼곡하게 활자가 가득한 책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대로 행하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이 옳은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며 되짚어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예요.
치열한 자기 점검은 무엇보다 유연한 사고를 필요로 하지요.
자신이 처한 좌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편견없이 수용하며
자신에게 정직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지성인, 혹은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리 호이나키는 누구보다도 실천적 지식인, 실천적 지성인의 삶을 구현한 사람입니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내어 실행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다닌
그의 생애는 비틀거린듯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도도히 흐르는 리 호이나키 개인의 진실을 향한 의지는 조금도 휘거나 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가 맨해튼의 빈민구역에서 사목 활동을 했으며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이반 일리치를 만나 평생의 벗으로 삼았습니다.
남미에서 주로 일하고 연구했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도중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조국에 실망하고 베네수엘라로 자발적 망명을 하지요.
후에 망명지에서 다시 미국의 대학 교단으로 돌아온 그는 정년보장 교수직을 앞두고
시골로 가서 농부가 됩니다. 그리고 한 때는 대학의 청소부가 되기도 하지요.
삶의 순간마다 혼란 속에서 비틀거리고, 실수를 하고, 도덕적 일탈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오디세우스적인 여행만이 뜻이 있으며,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의 갈증을 식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적지는 여행의 의미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실패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나의 주된 관심사는 하나의 근원적인 통찰을 예시하려는 것이다. 즉 ' 진보'에 대한 약속은 거짓이며 끔찍하고 잔인한 덫이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오직 한 가지 점 - 의문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 저자 서문에서 -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 웬델 베리, 시몬느 베이유 그리고 도로시 데이 등의 영향을 받은 그는
사람은 정신과 육체 모두를 써서 살아야 하되,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적 순간에 적합한 태도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학 강단에 있을 때나, 농부로 있을 때, 혹은 지역 사회에서
바닥의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때에도 그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역사의 순간 순간
자아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행하고 있습니다.
현대 산업사회가 가져온 풍요가 어떤 후유증을 가져왔는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기술 영농의 결과로 나타난 농산물의 잉여가
무엇을 담보로 행해졌는지,
소비사회가 조장하는 탐욕이 인간 관계를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현대 의료 시스템이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앗아가며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소외시키는지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하지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하거나 그들을 주류에 합류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기금을 모으거나 큰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불가피하게 고통을 주는 상처들을 폭로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심장을 돌에서 살로 바꾸어주는 래디컬한 수술을 받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기확대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뻔뻔스러운 사회사업 전문가주의로 떨어질 것이다.
(56쪽 - LA 카톨릭노동자센터의 제프 디트리치-)
리 호이나키는 월든 호숫가의 소로우나 기독교 아나키스트인 애먼 헤너시의 생애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세상은 이런 '거룩한 바보'들의 저항에 의해 그나마 숨쉴 수 있는 곳이라고요.
나는 가능한 한 깊이 아나키스트 전통 속으로 내 몸을 던져, 자유주의 경제학의 풍요에 대해 깊고 크게 울리는 소리로 '아니오'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당연히 '아니오'라고 해야 할 장소를 모조리 찾아내고, 외설적인 기관, 관행, 이미지에 대해 '아니오'라고 해야 한다....이것은 산업, 관료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비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수많은 희생자들의 고통을 나누면서 현대적 신화가 주는 안락, 특권, 안전을 거부하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335쪽)
국가적 차원, 사회적 차원의 정의가 아니라 개인 안에서의 정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사유하는 과정에서 돌로 변한 우리의 심장이 다시 살로 회복되는
길이 '정의'라고 말하는 책이었어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이끌고 가는 지금의 세상은 우리를 너무 무디게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패와 타락이 만연한 세상에도, 타인의 고통에도 별반 충격이 없는 우리의 심장은
언제 다시 섬세한 감각을 회복할런지 모르겠지만 리 호이나키의 이 책이 무디어진 우리의
의식과 감성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느꼈습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쏟아지는 빗줄기 속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의 김진숙씨가 떠오르네요.
우리는 무엇을 '정의'라고 부르는지....
머리 좋은 철학자들에게 신세지지 않아도 우리 마음 속의 '정의'는 어딘가에 밑그림이 있겠지요.
품위있게 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책이었어요.
정말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