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예요.

자본주의는 이제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고, 친숙합니다. 

이 친숙함이 자본주의에 의해 받는 치명적인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는 돈에 의한 자유, 다시 말해 소비의 자유일 뿐이지요.

그러니 돈이 없을 때에 박탈당한 자유는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돈'은 은근히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떨어지면 불편하고 당황스럽지요.

때론 돈이란 게 우리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로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즉, 돈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법이 가능할까요?

아마도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법정 스님이라면 가능할까요?

하지만 울트라 재벌이 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법정 스님처럼 자본주의의 물살을 거스르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건 우리의 본성을 제한하고 절제하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허영'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서  대책 없이 그리고 한없이 증식하는 이 허영 덩어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말처럼 허영은 끝없는 욕망으로 소비를 창출하여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암튼, 저자는 문학자 네 사람과 철학자 네 사람을 짝을 지어 우리의 무디어진 의식을 깨우고 있어요.

자본주의와 도시, 그리고 소비가 일상에서 우리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는가에 대해서요.

이상과 짐멜/보들레르와 벤야민/투르니에와 부르디외/유하와 보드리야르...저자의 메뉴판입니다.

이상과 보들레르 그리고 투르니에, 유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상처의 아픔을

짐멜과 벤야민, 부르디외 그리고 보드리야르를 통해 이론적으로 검증해 나갑니다.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인물은 '돈'이 주는 '위력'을 알아가지요.

아내가 매춘으로 번 돈을 받는 남편은 늘 골방에서 잡니다.   하지만 그가 아내에게 돈을 쥐어주던

어느 날 밤 그는 아내의 방에서 자게 되지요.   여기서 돈의 거래는 곧 심리의 거래인 것이예요. 

부도덕함을 상쇄하려는 아내가 내미는 돈,  어느 날 돈을 내밀고 아내에게 당당한 남편.

이상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돈이 결정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돈의 논리를 성찰한 작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것' 이 되고 말지요.   돈은 곧 신이고, 신앙입니다.

이렇듯 화폐경제는 개인과 개인의 인격적인 관계를 와해시키고 화폐를 통해서만 연결되도록 한

시스템입니다.   그런 이유로 짐멜은 화폐경제가 결국 개인주의를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짐멜은 또한 우리 자신의 내면 세계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에 따라 구성되어졌다고

말합니다.    산업자본주의가 가져온 '도시화'는 개인의 의식을 변모시키기도 하지요.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배경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에는 인간을 길들여서 그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77쪽)

 

우리의 노동은 소비를 위한 노동이 되었습니다.  

노동의 댓가로 소비를 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소비를 조장한다는 거죠.    끊임없는 소비가 있어야 새로운 상품을

만들 수 있고, 필요 이상의 소비가 있어야 계속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이죠.

결국 이 사회는 소비가 아니라 낭비를 조장하는 사회입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백화점은 소비 사회의 정점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낚아채는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상품은 필요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를 창출합니다.

유행과 트렌드는 자본주의가 만든 소비 시스템이죠.

산업 자본주의는 허영이라는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가거든요. 

화폐경제는 돈에게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고  사람들은 그 권력에 저항없이 복종합니다.

 

화폐의 가치를 절대시하는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본성에 저절로 맞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배워야만 하는 경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29쪽)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주의 발달의 핵심에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적인 소비사회의 논리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334쪽)

 

산업자본주의의 폐해와 상처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그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한

작가들과 철학가들의 노고를 알기 쉽게 잘 버무려 준 책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숙제로 남겨두었어요.   이 책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쓴 글이거든요.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욕망들은 그 힘이 너무도 강해서 하루아침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것들이 결코 아니라구요.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라 얘기합니다.   자신이 품은 상처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자각하면 실천도 그만큼

집요하고 치열할 것이라구요...

 

우리에게 친숙한 자본주의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마련한 저자의 글솜씨는 탁월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주고 있거든요.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아가듯...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면서 자본주의에 맞는 인간형으로  만들어집니다.    

묵자의 묵비사염이라는 말처럼요... 

자신에게 물든 그것이 무엇인지....이제는 허물을 벗고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 온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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