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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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넘쳐나는 '긍정적'이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느낀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책이 피로회복에 확실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사실 수 년간 '긍정적'이란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찬사였습니다.  

긍정적이지 못한 모든 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부정적인 것은 나쁜 것이었죠.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현실을 치밀하게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비판적으로 막연히

'긍정'에 의지하는 건 결국 자기 최면이고  나아가 유사 종교 행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맹목적 긍정'과 '병적인 낙관'은 사회를 뒤덮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고

긍정 이데올로기는 사회 전반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각종 자기계발서의 범람과 여러 종류의 코칭 산업 그리고  동기유발 프로그램은

주로 기업의 고용주들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있지요.  

심지어는 대학 강단에서도 이런 종류의 강의가 등장했습니다.

 

얼마 전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에 보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나옵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나에게 모든 것은 온다...는 거죠.  

이는 원시 부족사회에서의 전통적인 공감주술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 정도면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최면이고 자기 기만입니다.

결국 긍정주의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긍정을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다 못해 주술로 인용하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문제가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긍정의 왜곡이죠.  

이런 부적절한 '긍정'의 사용은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지혜를 무시하게 됩니다.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마법은 '밀어붙임' 이기도 하거든요.  

마치 발걸음을 떼놓는 순간 없던 돌다리가 생길 것을 주문하는 것이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혹은 <시크릿>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휩쓰는 긍정의 열풍은

비판을 불허하고 불평을 잠재우는 이데올로기로 우뚝 섰습니다.

 

올바른 긍정적 의식을 넘어 무분별하게 퍼진 긍정주의.  그 폐해에 대해 신랄하게 파헤친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이 책은 자신이 유방암 환자로 겪은 경험으로 시작합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든 찬사를 받는 반면 병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병뿐 아니라

의지박약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모순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조금만 깊숙히 들여보면 긍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폭력과 위선과 기만을 저자는 눈치챘어요.

그리고 그녀는 충분히 조사하여 차근히 대항합니다.  

 

서점가를 휩쓰는 '긍정'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요즘 기독교의 '믿음'과 비슷해 보입니다.

저자는 대형화된 교회의 성장 메커니즘을 차근차근 살펴봅니다.

교회는 기업식으로 접근해 교회 마케팅을 했고 여기서 '긍정'의 힘은 놀랍게 발휘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속도위반 딱지를 해결해 주고, 식당에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 주고, 내가 책 계약을 딸 수 있도록  해 준다.(189쪽)

 

사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교인들도 저런 경우에 감사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좋은 것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거죠.

제가 알고 있는 성경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는 정직함과 헐벗은 자에게 자신의

단벌 겉옷을 벗어주는 자비를 말하고 있습니다만...

 

기업과 대형교회 사이의 유사성은 그들이 성장의 메커니즘을 공유한 데서 나타납니다.

교회는 기업을 닮아 '죄'와 '구원'의 메시지는 뒤로한 채 긍정 마케팅으로 솜사탕 복음을 전파합니다.

기업은 교회의 신비주의를 차용하여 CEO의 카리스마와 직관적 리더쉽에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며

직원에게는 어떤 역경도 긍정의 힘으로 헤쳐나갈것이라는 긍정메시지를 심어주고 있지요.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긍정'의 힘은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자기 최면의 역할을

하고 조직에 남은 직원에게는 동기유발의 아드레날린을 주입해주고 있거든요.

 

긍정적 사고는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긍정의 이면이다.   (28쪽)

 

결국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경쟁에 이긴 자는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로 찬사를 받지만

패배자는 그의 실패를 사회 시스템에 돌릴 여지 없이 실패한 당사자의 몫으로 돌립니다.

이렇듯 세속적 이익과 무분별한 긍정의 야합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어요.

마치 기도의 응답이 없음을 개인의 '믿음'이 없는 걸로 떠넘기는 것처럼요.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은 수많은 모순적인 증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이런 훈련에 '자기 최면', '마인드 컨트롤' '생각 조절' 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는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 기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거나 검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긍정적 사고와 실체적 용기 사이에는 아주 넓은 간격이 존재한다.   (25쪽)

 

저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흔해빠진 긍정의 환상과 주술에서 벗어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벽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긍정적 사고가 매우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각 개인이 처한

독특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겠지요.   긍정적 사고는 분명 개인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체의 범위에서 일반화 한다면 부작용이 클거라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발전은 의심과 회의를 통해 한 계단 올라간다는 진리를 간과해선 안되겠죠.

꿈은 이루어진다......꿈만 꾸고 그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며 속으로 되뇌이고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요즘 막장 긍정주의의 흐름입니다.   I can do it! 을 몇 번씩 외치면 된다는 거죠.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반성과 회의 그리고  좌절의 극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시크릿>의 추종자들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불안한 사람을 위한 진정제, 심리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을 위한 치료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긍정적 사고는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의무가 되었다. (140쪽)  

 

결국 왜곡된 긍정, 과잉의 긍정은 종교에 가까운 신념 체계가 되었습니다.

순수한 '긍정'의 모습은 이제 시장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소비재로 변모했구요.

이제 넘쳐나는 긍정의 결과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들이 슬슬 눈치챌 때가 된거죠.

 

저자의 결론은 비판하고 분석하고 사유하고 그리고 성찰하라 입니다.  

문제는 그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시스템을 고쳐가는 과정에서 해결됩니다.  

진정한 긍정은 문제의 원인을 따져보는데서 출발하는게 아닐까요?   하늘에 원망하지 않구요.

긍정적인 성격과는 좀 거리가 있는지라 이 책을 읽고나니 그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던

'긍정'의 압박에서 자유로와진 느낌이 듭니다.   주위에 넘쳐나는 긍정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옆에 있으면 덩달아 긍정적으로 되기보다는 더 회의적이 되는 소심한 A 형인 저로서는요...ㅋ

 

요즘 긍정심리학은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기혼에 신앙심이 깊은 종교적 원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하다는 증거를 제시해 보수주의자들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에 행복이란 것은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으로 측정되는 만큼 아무래도 유복한 사람들, 사회 규범에 순응하는 사람들, 신앙을 위해 판단을 삼간 사람들, 사회의 불의에 크게 개의치 않은 사람들이 그럼 심리상태에 근접하기 더 쉽다.(236쪽)

 

건전하고 상식적인 긍정주의는 삶에 활력을 주는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과잉으로 넘쳐나는 긍정의 남용과 오용입니다.

저자는 낙천주의와 희망이 동일한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건강한 낙관을 희망의 근거로 삼는 비약이, 그 심란한 간극이 결국엔 우리의 등 뒤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요즘의 긍정주의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분별한 긍정주의에 쉽게 현혹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긍정주의자들은 자칭 진보주의자라 말하고 있지만 결국 긍정주의는 보수주의자들이 기대기 좋은

쉽고 편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게 현실이지요.

긍정적 사고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부자들과 대형 교회같은 긍정사고 사업자들 뿐이죠.  

서점가를 휩쓴 '긍정' 시리즈에 제대로 한 방 먹인 책입니다.

 

요즘 어디든 넘쳐나는 '긍정'의 힘은 그 모든 포커스가 개인의 건강과 부를 통한 성공에 있습니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기서 그 수상쩍음을 감지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순교자의 신앙을 현세의 복으로 바꿔버린 기업적 교회들이 어딘지 미심쩍은 것처럼요. 

함께 하는 삶,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심이 극한까지 증폭되면서 차마 그 노골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 슬쩍 모습을 바꿔버린 것이 요즘의 긍정주의가 아닐까...라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부정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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