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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ㅣ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설Y 첫번째 대본집, ‘나나’를 읽은 뒤로 흔치 않은 소재의 소설이 눈에 잘 들어오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또 무엇보다 앞으로 나올 소설들이 궁금해서 소설Y 클럽 1기에 신청했었고, 감사하게도 1기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받게 된, 창비 소설Y 1기의 첫번째 책이자 두번째 대본집인 ‘나인’.
작가의 이름과 한줄 소개만으로도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누구나 궁금해하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창비에서 보내주신 ‘나인’ 대본집과 함께 받은 천선란 작가님의 편지에는 고민과 다정함이 가득했습니다.
소설 ‘나인’을 다 읽고 편지를 한번 더 눈에 담으니 작가님 덕에 제 안에 이런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나인’을 읽으며 꽤나 많은 감정을 느꼈고, 책을 읽게 되는 분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서평을 써내려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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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속삭이는 잎
열일곱의 나인, 그리고 현재와 미래. 이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여느 친구사이가 그렇듯 어느새 친해진 사이다. 서로의 집에 들르기도 하고, 서로에게 만큼은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다. 나인은 종종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릴 때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비밀거리’라고 느껴지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를 다니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마주친적도 없는 또래의 애가 나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나,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고, 뭔가 좀 이상했다. 그 애와 말을 섞고 나서는 조금 이상한게 아니라 많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인도 느꼈다. 자신을 승택이라고 소개한 그 애는 나인더러 식물이라고 했다. 그동안 나인이 봤던 것들, 들었던 것들이 다 식물이 말을 한거라고 했다. 자신과 같이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도 나인에게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대뜸 낯선 또래가 나타나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인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내 같이 살아 온 지모에게 농담처럼 얘기하다 진실을 듣게 된다. 나인은 승택의 말대로 ‘인간’이 아니었고, 싹에서 ‘피어난’ 존재였다는 것을.
-소설 '나인' 중 나인의 말, “너는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먹으며, 언젠가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나인은 이 얘기를 자신이 내뱉을 때 까지만해도 몰랐겠지, 그 비밀의 무게를.
나인은 미래, 현재와 영화를 보기로 한 것도 잊은 채 승택이 말해 준 방법을 시도해보려 산에 올랐다. 그 방법은 식물과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었고,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식물 위에 몸을 맡기고 누워 있으면 땅이 파랗게 빛날 거라고 했다. 나인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승택이 말해준대로 있다가 그 파아란 불꽃을 봐버렸다. 그렇게 한 식물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고, 생각도 못했던 땅이 품고 있고 식물들이 봤던 일들을 알게 된다.
2부, 심장을 삼킨 나무
나인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던 식물은 나무가 된 금옥이었고, 실종 신고 이후 2년 째 소식이 없는 선배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실종 신고된 선배인 원우와 그 주변 인물을 파헤치며 시작된다. 나인이 식물과 대화를 할 줄 아는 것 뿐인데 어떻게 해결을 할지, 또 남들은 듣지 못하는 식물의 소리를 사실화 시키는 방법이 궁금해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렇게 나인은 진실을 파헤치면서 본인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싹에서 피어난 나인의 종족을 ‘누브’라고 칭하는데, 나인은 그 누브 중에서도 힘이 있는 존재였다. 그야말로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것과 대화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죽은 나무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런 존재가 있는 세대를 기근과 질병에서 벗어날 정도라고 하니 나인은 열일곱 평생을 영문도 모른채 힘을 간직하고 살았다. 평범한 학생이 자신의 출생과, 실종 된 선배의 큰 비밀을 알게 됨과 동시에 종족을 책임져야할 수도 있다니, 어지간한 사람이라고는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3부, 파도가 치는 숲
3부의 제목과 같이,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에 파도가 쳤다. 나무가 된 금옥이 낱낱히 알려준 그 날의 장면과 소리들, 지모가 들려준 얘기들, ‘누브’족이 살았던 행성의 이야기까지. 쉴새 없이 책장이 넘어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써내려가기 보다는, 직접 책장을 펼쳐 보며 1부와 2부에서 쌓아왔던 감정들을 3부에서 파도가 밀려오듯,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겼으면 좋겠다. 무더운 여름에서 입김이 나오는 겨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꼭 직접 읽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열일곱의 친구들이 보여준 이 관계성이 대단하다고 느낀 건 355쪽의 미래의 말이었다. 이런 우정이라면 그 무엇도 부러울게 없을 것같다. 미래의 말은 여기에 굳이 남기지 않겠다. 읽어본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길 바라며.
그렇게 ‘나인’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손가락 끝을 쳐다보게 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