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사랑학 수업 -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하버드 사랑학 수업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
The case for Falling in Love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강의의 교수, 마리 루티가 지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 :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연애 조언을 해준다.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행동을 하라는 제시보다는, 나다운 내가 될 수 있도록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이 함께 담겨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랑과 연애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자존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의 첫 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타인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나를 희생하기보다는 ‘나’다운 내가 될 수 있고, 그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과의 연애를 지속하라 한다. 나를 사랑할 사람을 내가 어떤 모습이던간에 나를 사랑한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자연스레 성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꺼내진다. ‘여자는 조용하고 고집에 세서는 안 된다’라는 사회 통념으로 여겨졌던 것도 깨어지고 있다. (당연히 애초부터 성립되는 전제와 조건이 아니다.) 여하튼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강압적이고 성차별적인 인식으로 누군가의 성격을 고정할 수 없다. 성별에 대한 ‘타고난 차이’가 갖고 오는 오해와 편견을 더 이상 갖고 있으면 안 된다.


헬렌 피셔가 쓴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에서는 여성의 ‘수줍음’은 자연적 본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조차 성역할에 대해 세뇌당해 나오는 편견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성별을 유추해보고 방의 색과 가구를 여자아이면 분홍색, 남자아이면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꾸미지 않는가.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예로는, 딸이 성공한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부모는 있어도 아들이 레이스 달린 커튼을 좋아한다고 하면 분명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나 타인이 있을 것이다.
이런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언급하는 건, 이런 원인과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토대로 서로를 예민하게 생각하고 탓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를 풀어야 하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정해져버린 성역할 혹은 “‘남자’는 이러이러한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는 이러이러한 남자를 좋아한다”라는 연애 조언은 가끔 어처구니 없을 때도 많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도 많은 예시가 스쳐 지나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은 이런 환상과 판타지에 자기 자신을 맞추며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 (애초부터 환상이 아닐 수도 있다.)
동화나 영화 속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현실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신데렐라나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해서웨이를 보라. 아무리 타의적인 힘으로 인해 겉모습이 바뀌어도, 겉모습이 바뀌기 전부터 좋아하던 사람은 모습이 바뀌어도 좋아한다. 이 두 캐릭터는 겉모습이 바뀌기 전에도 본인만의 신념과 개성이 있었고 자신의 본래 내면이 겉모습이 바뀌었더라도 그 내면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모습만 꾸며는, 인형 역할에 만족하는 사랑을 찾는 사람을 절대 만나서는 안되고 그런 사랑은 위험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이어 밀당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밋밋한 태도를 바꿔보려 기존에 주던 사랑을 주지 않고 질투나 다른 요인으로 사랑을 억지로 받으려고 하다면, 그건 자신을 위한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저자는 밀당은 전략이 아니며,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하지 못 할때 하는 행동으로 간주한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밀당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쉽게도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랑인 것이다.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밀당이라는 행동을 하지 말자.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면 당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들게 하지 않는다.

"연인의 숨은 면면을 빛내주는 이상이야 말로 사랑을 오래 지속시켜준다."

이에 이어 밀당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밋밋한 태도를 바꿔보려 기존에 주던 사랑을 주지 않고 질투나 다른 요인으로 사랑을 억지로 받으려고 하다면, 그건 자신을 위한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밀당은 전략이 아니며,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하지 못할때 하는 행동으로 간주한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밀당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쉽게도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랑인 것이다.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밀당이라는 행동을 하지 말자.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면 당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들게하지 않는다.

즐겁고 달콤하기만 했던 사랑 속에서도 아픔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마 작은 다툼들이 그 아픔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살아가지만, 가끔은 무의식에 의해서 행동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충동적인 무의식 때문에 연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다툰 상황에서 책임 회피라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의 패턴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다. 그래야 대처 방법도 생기고 어쩌면 다툼이 될 상황이 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다툼과 화해는 사랑하며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보다 좋은 순환 단계를 거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하며, 다만 상처는 주지 않는 쪽으로의 갈등은 충분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아픔을 넘어서 이별이라는 큰 슬픔이 찾아올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하면 사랑의 실패라 생각하고, 인생까지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한 사랑이 때로는 가장 의미 있는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이별이 사랑과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에서 ‘행복’이라는 감정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특별하지만 평생의 행복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랑의 결과가 당연히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 자체가 행복보다 더 큰 목표지만, 그렇다고 행복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인간은 수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는데 유난히 ‘행복’만을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행복에만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면 그 외의 다른 가치가 보이지 않기에 사랑이 끝나게 되면 실패로 여긴다. 하지만 고통도 배려로, 연민으로 극복하면 또 다른 길이 오기 때문에 행복과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절대 아니다. 고통을 너무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잠깐이라도 다른 감정으로 고통을 대체해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의 유산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사랑은 깊이 남게 되는 것, 틀림없는 사실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을 하더라도 다른 일로 인해서 뒤로 조금 밀려날 수는 있지만, 결코 없어질 수는 없고 통증으로 되새겨지기도 한다. 사랑이 또 그 사람이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우리의 정신은 원래 구멍이 뚫린 투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방성’은 우리에게 생기를 부여하고 세상의 에너지가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다. 그 에너지나 좋든 나쁘든 흡수된다. 그래서 외부의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개방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고통으로 끝나게 된다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개방성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별로 인해 모든 사람과 외부 환경을 거부하고, 경계하고 방어막을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외부의 것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기에 복원되는 에너지조차 들어올 틈이 없다.
이렇게 단적으로 고통으로 인해서 나 자신을 막아버리게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통도 허용을 해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 애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별을 겪은 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려면, 다시 나아가는 힘을 찾고 새로운 곳으로 발을 딛어야 한다. 물론 인내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연애와 사랑의 과정, 시작과 끝은 이렇듯 통제가 불가능하고, 사랑의 실패 혹은 행복이라는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100% 분석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유를 알려고 발버둥 치게 되면 그로 인해 더 지칠 것이 분명하다. 사랑은 사람이나 미래를 위한 약속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다. 영원한 사랑을 위한 약속을 하기보다는 영원히 마음을 열어 놓겠다고 약속하는 게 더 솔직하고 좋은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면 머물러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떠나라.

저자는 사랑에 규칙을 정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정해둔 이별 규칙이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면 그보다 더 안 좋은 사랑은 없을 것이다. 더 좋은 사랑을 찾아 그만두어도 좋을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찾아오길 바라며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