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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평점 :

요즘 들어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10년, 20년의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해서 유지하는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단순히 좋아서 하는 일이더라도 결코 힘든 일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그 좋음이 10년, 20년 이상으로 이상의 길게 유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다. 더군다나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요즘 같은 산업 혁명의 시대에서 한 커리어를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크게 있지 않았던 오래전의 시절부터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유튜버 밀라논나를 알게 되었을 때 그랬다. 처음 밀라논나 채널을 보았을 때는 시니어께서 유튜브를 한다는사실이 신기했다. 하지만 채널에 맨 처음 올라온 영상을 보고 범상치 않은 분이라 생각했다.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며, 수없이 많은 명품을 한국으로 런칭해 온 장본인이다. 그 젊은 시절을 다시 삶아보고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One Time is Enough.”
이 한마디의 대답으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감히 내 마음대로 상상해볼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닦아온 패션의 길에 스스로 자부심이 있고 열정적으로 커리어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패션 컨설턴트, 무대의상 디자이너, 백화점 패션 담당 바이어 등 패션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밀라논나, 장명숙디자이너님의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에서는 서른여 개의 화제로 그가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겪은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탈리아는 낯설고도 익숙한 나라다. 패션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야기가 되는 반면에, 비교적 먼 유럽에 위치해 있고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유로 가보지 않고서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곳이다. 저자도 40년 전에 이탈리아로 유학길을 오를 때 주변의 우려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지내보며 수많은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보낸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그 속에 애환도있었지만 굳이 편견으로 기피할 이탈리아는 절대 아니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인 마시모 안드레아 레제리도 이탈리아 사람인 본인도 몰랐던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니 이탈리아에 관심이있는 사람들, 또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펴보길 추천한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감동을 받았던 건, 그의 삶 자체에서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고겪은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재미나게 풀어내어 많은 패션계 유명 인사의 철학과 에피소드를 엿볼 수 있었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타인보다는 본인을 위한 삶을 살라는 하나의 주제로 뭉쳐졌다.
패션이라는 게 남을 위해 나를 더 과시하고 나의 지위를 대변하는 쪽으로 잘못 인식이 될 때가 많은데, 이런지점에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옷을 꾸며 입기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서 관리하고 꾸며보라는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성도 했다. 옷을 살 때나 소품을 살 때 나에게 어울릴까 하는 생각보다 남의 입장에서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 생각을 조금씩 고쳐서 나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또 나를 아껴줄 수 있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더불어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의이미지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 이유는 문화 자체가 디자이너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인데, 이 전까지 한국은 세계적으로 발을 내딛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정체성과 세계를 보는 안목과 패션에 대한 경험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해서 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이전보다 훨씬 열린 환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 더 많은 것을 쌓고 관심이 커지게 된다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디자이너가탄생할 것이다. 또 한국이 갖고 있는 값진 전통문화를 단순히 아끼기보다는 세계에서도 공감할 수 있게끔 다듬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패션계의 원조, 유명 디자이너의 머천다이저와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컨설턴트를 거쳐 이탈리아에 있는 가장 큰 백화점 그룹의 CEO로 커리어를 쌓은 ‘가에타노’의 이야기는 마음 아픈 동화 같아서 눈시울을 붉히게했다. 가정주부나 음식점의 주방장을 꿈꾸는 가에타노는 저자와 저자의 아들에게 식사 대접을 너무나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저자와 아들은 점심 식사를 한지 얼마 채 지나지 않은 3시의 시간이어서 쉽게 승낙하지못하였지만, 결국 가에타노의 집으로 함께 향했고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그 이후 가에타노의 아들과 저자의아들이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하다가 가에타로의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에타노는 어린 시절, 아버지는 맹장 수술 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지냈기 때문에 수녀님이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가에타노와 동생 둘이서 유년시절과 사춘기를 보냈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마음은 가에타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우러나온 바람이아닐까 싶다.
단순히 이탈리아에서 커리어를 보냈다는 이유로 그가 부러운 건 아니다. 커리어를 명확히 쌓고, 힘든 일이있었음에도 정말 척박한 땅을 헤쳐 나가며 살아온, 지금도 많은 사람의 멘토가 되며 젊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패션 업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가 대단하고 부럽다. 다른 누군가의 삶에도 귀감이 될 수 있는 떳떳한 인생을 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