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문명 건설 가이드’ 이 책 제목만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문명을 만들어야 하나?’, ‘앞으로 더 만들 문명이 있을까?’, ‘그런 새로운 문명을 내가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내 뇌를 뒤덮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잠시 덮어두는 것이 낫겠다. 당신이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예정이 있고, 혹은 시간 여행을 한 번이라도 생각을 했었고, 시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 가이드를 펼쳐보았으면 한다.

갑자기 왜 또 문명 건설 초보자에게 주는 팁이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시간 여행 중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명이 세워지지 않았을 태초의 시대에 떨어졌을 수도 있고, 기원후 1000년으로 당신이 찾아갔을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시간 여행에서 무엇이 필요할지는 미리 알아가는 게 좋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이렇게 기록물을 남겨왔고, 미리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아니 나쁘지 않은 것을 넘어 마치 신이 된듯한 기분일 것이다.


우선 당신이 시간 여행을 해서 지금 어딘가에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지금 당신은 시간 여행을 해서 어딘지 모를 곳에 있다. 우선 침착할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침착해보고 그곳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구인지 생각하고 이제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일단 생각을 할 수 있고 평소처럼 마주하던 손과 발이 있으니 인간의 형체는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겠지. 그러면 말을 하고, 그 말로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또 미래와 과거를 위해서 기록물로 남겨야 하는 언어와 적을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아니 우선 먹고살아야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먹어야 한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이 궁금하면 당장 이 가이드를 한 번 더 열어보고, 우선은 먹고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런 와중에 먹을 것도 가려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식물이 있고 심지어 물도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되기 때문에, 독이 있는 식물, 생물, 동물을 구분해서 먹어야 한다. 더불어 비교적 관리하기 쉽고 키우기 쉽고 몸에도 큰 영양소가 되는 몇 가지 식물도 소개해주니 당신에게 이 가이드는 더없이 필요할 것이다.

"잘 먹지 못하면,
제대로 생각할 수도, 제대로 사랑할 수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버지니아 울프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먹고 살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문명을 만들어나갈 힘이 생겼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과거로 돌아와 보았으니 내 힘과 다른 사람들과 생물들의 힘으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일단 나라면, 더 넓고 먼 땅으로 가서 새로운 누군가가 있는지 새로운 환경은 있는지 살펴볼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탈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또 만들어야 한다. 나침반을 보고 걸어가는 건 한계가 있고, 바다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답이 없다. 나는 수영을 못하기에 문명을 만들려다가 바다에 빠져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하여튼 자전거부터 자동차, 배까지 만들고 사람의 욕심을 끝도 없으니 하늘도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엔진과 프로펠러와 날개가 있다면 비교적 무거운 비행기라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의 ‘몸’으로 날기 위해서 몸에 깃털을 붙이고 높은 곳에서 몸을 던져 잠깐 동안이라도 하늘을 날고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당신과 나는 지금 이 가이드를 읽었으니, 맨몸에 깃털을 붙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비교적 얇지 않은 책에서 수많은 살아남기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문명 건설’에 대한 내용이 하나부터 열까지 줄줄이 소세지처럼 내용을 즐비하게 늘어져있지 않았다. 약간은 특이할 수 있는 컨셉을 갖고 지금까지의 문명 발전 과정들을 마치 예전부터 내려오는 구전동화처럼 이야기해주니 부담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물론 화학 공식이 나오는 부분은 조금 빨리 넘기기는 했다.) 한 번 더 꼼꼼히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쌓여온 기술과 살아남는 노하우들이 담겨있는 ‘사전’이라고 느꼈다.

이런 어마어마한 문명 건설을 하는 가이드를 썼는데도, 저자는 계속 감사 인사는 됐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걸.

당신, 혹은 내가 지금과 다른 세계에 떨어져 있거나,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면, 이 가이드가 없으면 안 될 것이다. 살아남는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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