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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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의 삶이 먼지와 부정으로 가득차 어느 순간엔 정말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 숲으로가 '왜? 왜? 왜?' 소리를 질러본다. 외침은 이내 사라지고 궁금증만 어지럽게 남을 뿐이지만.
묵은 체증을 씻어내고자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듯 갑자기 난 걷는다. 양쪽 발을 번갈으며 땅에 내딛었다 떼는 단순한 과정의 반복.
몸은 이내 안다.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바람의 '결'이 있음을.
행글라이더처럼 양 쪽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바람결에 몸을 실으면 걷기는 리드미컬한 명상이 된다.
운동해본지 오래인 부실한 몸은 금새 가쁜 숨을 뱉어낸다. 그리고나서도 보행을 계속하면 단단히 붙었던 살들이 쫙 찢어지듯 피냄새가 울컥 올라온다.
신고 있는 신발이 신통찮으면 살갗이 까지거나 샌달의 경우엔 줄에 까진 속살이 닿을 때마다 '으' 쓰라린 비명! 육체의 고통과 달리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청정하다.
이제 막 물청소를 끝낸 촉촉한 길처럼. 

 

내 몸은 브르통 <걷기 예찬>의 소제목처럼 '물, 불, 공기, 땅, 그 원소들의 세계'인 자연에 다 녹아들어있다. 무엇이 되어도 좋겠거니. 아무 것도 아니어도 상관없으리. 서걱거리는 나뭇잎이 되거나 색종이 같은 가을하늘에 깃들거나. 그저 내 맘은 발레리나처럼 사뿐거린다.
혼자걷기의 고독이 주는 '진정한 나됨' 은 나를 충만케 한다.

브르통은 말했다. 우리는 끝없이 걷기만 할 뿐 어디에도 이르지 못할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고 죽음을 향해서 느릿느릿 다가가고 있음을 잊어버리기 위해 걸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걸어본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보행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 걷다보면 한계를 딛고 넘어서서 전적으로 자유로이 풍경의 일부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체험한 완전한 인식의 '자유'는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사진으로 남는다. 뒷날 된통 고된 시간을 치뤄야 할 때 그 사진을 꺼내보며 숨고르기를 위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소진될 때까지 걷고난 뒤 딱딱한 나무 의자에 등붙이고 누워서 펼쳐든 '걷기예찬'은 박하사탕처럼 개운하기만 하다. 귀찮기만한 고민거리들은 둘둘말아 잠시 던져버리자.  
 걷기;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
우리는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을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또는 여가활동, 자기확인, 고요함, 침묵, 자연과의 접촉 등을 시도하기 위해 걷는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목적 없이 그냥 걸을 때도 위의 것들은 말없이 걷는 보행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걷기'는 '집'의 반대말 : 걷기는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의 반대다.
걷기가 어서 다음 기착지에 다다르기를 바라거나 그만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권태로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보행자는 자연 속에 몸을 푹 담그고 거칠거나 혹은 편안한 길, 해질녘이나 비가 내리는 질척한 길을 걷는다.
오들오들 떨거나 반대로 너무 더워 땀을 줄줄 흘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보행자의 몸의 감각은 자연을 향해 활짝 열린다.
그 끝에 오는 검소한 식사와 한잔의 물, 그리고 누추한 곳에서의 휴식.
저들에 비하면 아주 피라미처럼 걸었을 뿐인 나는 얼음물 한 잔을 벌컥 거리고 난 뒤 하얀 면으로 된 침대시트에 몸을 내동댕이치고픈 어느 고달푼 보행자의 열망을 생생히 느낀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
자연의 다양한 소리는 내 안에 가득한 침묵 한가운데로 흐르지만 침묵의 배열과 질서를 어지럽히진 않는다.
오히려 그 소리들은 침묵의 존재를 드러내주고 어떤 장소의 청각적 질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준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내게 맑은 산바람으로 가득찬 거대한 '숲'같은 책이다.
책 속에서 나는 익명의 누군가가 되어 길을 떠났다. 책속으로 두 발과 몸전체를 쑥 들이민 것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구조도 아니건만 나는 끊임없이 길에서 호흡하며 책 속 길들을 따라 보행의 과정을 겪었다.
숲과 산을 지나고 나무 아래 혹은 헛간 건초더미에서 아쉬운대로 잠드는 불안한 잠.
몸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나면 시간에 있어서 만큼은 부자가 될 수 있다. 여름 날 청량한 물놀이처럼 나는 시간 속에서 마음껏 유영하고 탐험한다.
앞 선 무수한 보행자들이 들었을 굴곡진 흙의 노래를 듣는다. 도마뱀이나 고슴도치를 보기도 하고 자동차에 깔려 죽은 납작해진 짐승들의 시체를 본다.
산책이 자잘하고 세부적인 것들의 변화로 날마다 새로울 수 있듯이 <걷기 예찬>은 계절이나 공간, 혹은 독자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내'가 처한 심리상태에 따라 읽을 때마다 낯설고 새로운 '걷기'책이 될 수 있다.
난 각각 다른 장소, 다른 시간과 상황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 볼 것을 메모해 둔다.
책장을 덮고 야트막한 언덕을 둘러싼 숲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생수병 하나를 챙겨든채.
 오감을 활짝 열어 공기를 들이키고, 아주 느리게 걷는다. 가끔은 오던 길을 일부러 다시 가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슬 맞은 새벽 풀잎처럼 가을에 흠뻑 몸을 담구게 된다.  '걷기 예찬' 의 수많은 보행자들처럼.
들숨과 날숨이 점점 거세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신께 감사한다. 올해도 이 계절을 향유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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