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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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양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있습니다. 이는 소싯적 한 사건에 기인하는데 여전히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몇 해전 부터 반려묘를 둔 집사님들의 우후죽순식 등장이 솔직히 그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고양이하면 떠오르는 작품들하면, 영화로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외계생물체로 등장하는 <캡틴마블>,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하드캐리하며 등장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그리고 최근 아카데미 장편애니상을 수상한 <플로우>가 있습니다. 문학작품으로는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리고 언제봐도 좋은 마음이 되게 하는 미키 마이런의 <도서관 고양이 듀이> 등이 있습니다. 



여기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한 나의 이야기 <고양이와 나>가 있습니다. 퀴어 커플인 내가 새해 맞이 보신각 종이 울리던 그 때 고양이의 외양을 하고 있는 어쩌면 신이 두사람 앞에 나타나는 사건을 마주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그들은 이 상황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혹은 큰 동요됨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이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천연덕스런 문장 덕분인지 읽고 있는 제 자신도 한번 ‘헐’하고 대뇌인 다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말없이 우리 둘에게 종이를 하나씩 내밀었다. 나는 종이를 받아서 읽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p.16, <고양이와 나> 中


타노스가 스톤들을 모아서 건틀렛을 장착하고 손가락을 튕겨서 절반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순간 눈 앞에서 고양이로 변해버리는 것을 경험한다? 이게 만약 영상화되어 구체적인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아마 황당무계한 일본 영화의 느낌이지 않았을까,  2차원 종이 위에 글자와 여백으로 마주하니 신기하리 만큼 담담했습니다. 아니 재미났습니다. 어차피 내가 당한 상황이 아니어서 있을까요?


  “그러다 갑자기 고양이가 됐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테고, 고양이가 되고 보니 마음에 드는 점도 꽤 있다.”

  -p.176, <고양이가 된 나의 입장> 中


고양이로 사는 것, 그런 대상을 이해하는 것,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내는 것… 사랑해내는 것의 거창하지 않지만 은근히 알아내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이야기로 풀어낸 편지 같은 책이다 싶습니다. 당신에게 고양이 같은 대상은 무엇인가, 어떤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나, 어떤 고양이가 되고 싶은가…?


  “이 원고는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썼던 모든 책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짝사랑하는 저의 마음이 담긴 글입니다.”

  -p.247, 작가의 말 <이름 없는 출판사에 드리는 글> 中


수많은 조건과 그와 엮여있는 관계와 또 그만큼의 경우의 수에 경우의 수를 곱한 확률로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를 내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이야기, 너무 착하고 고운 이들의 햇살 아래 기지개 켜는 고양이 같은 마음에 한없이 조화롭고 좋은 사람으로 살고프게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고양이와나 #이종산 #이종산소설 #래빗홀 #인프루엔셜

#래빗홀클럽 #3월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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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대 - 청계천 판자촌에서 강남 복부인까지
유승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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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나고 자란 고향에서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을 서울메트로의 영향권에서 살아내었고 살아남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처음 이곳 서울의 풍경으로 아직 제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바로 지하철의 환승 장면이었습니다.

열차 내 안내방송에 따라 환승역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00미터 육상선수의 긴장감 마저 서려있는 채비를 합니다. 옷 매무새를 매만지고 가방을 고쳐매고 하나 둘 출발선, 아니 출입구 쪽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정차와 동시 문이 열리면 전속력으로 달려나갑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제겐 거의 초현실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을 지나고나니 어느새 제 자신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되어 환승의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기라도 하려는 듯, 최적의 코스와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그 환승의 대환장쇼에 당당히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이 서울, 바로 서울이었던 것입니다.

“만원 버스가 된 서울에 가까스로 올라탄 사람들은 손잡이 하나에 의지하여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서울 시대’의 긴 터널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중략) 그리하여 내 임무는 제도권 학자들이 관심 두지 않은 영역의 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여 기억시키는 것으로 삼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p.10~11, ‘프롤로그’ 中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힌 포부대로, 이 책 <서울시대>는 우리네 삶의 이곳저곳에서 들춰내고 기억해내면 낼 수 있는 보잘 것 없어보이는 서울의 대환장 시간을 촘촘히 훑어내는데 최선을 다해내고 있습니다. 책을 다읽고 만나게 되는 빽빽한 각주는 일간지의 기사들에서 발췌해서 기록한 성실한 발자국들과 손자국들을 넉넉히 알아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만큼 미덥고 그만큼 반갑고 또 그렇게 소중한 우리 시대의 기록을 알뜰히도 담아내고 있습니다.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1부 서울시대, 2부 서울살이, 3부 서울내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삼촌 이모 고모 형님들의 시간의 파단면을 의식주를 바탕으로 거기에 꼬리를 무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관계의 경로들 그리고 장려되고 제한되었던 만원 서울에서 생존하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영화가 한 편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찾아서 보곤 하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투더퓨처 2>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면 미래에서 가져온 스포츠경기 모음집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만약 서울 시대의 초창기의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2025년으로 와서 이 책을 몰래 가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시대와 역사의 굴곡들을 잘 헤쳐내며 썩 괜찮은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하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내적 폭소를 마구 터뜨렸습니다.

그러기에 이 책 <서울시대>는 대한민국의 시대상으로 확대해석하는 돋보기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당시 지방 소도시에 살았던 제게도 꽤나 유용한 기억저장소 역할을 해낼만 했습니다. 허세와 실속의 깍쟁이들이 ‘서울 사투리’를 구사하며 전국에서 모여든 시골쥐들의 대합실 같았던 과거의 서울이 어떻게 지금의 메가시티에 까지 이를 수 있었는지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는 썩 괜찮은 우리들의 일기장이기도 하겠습니다.

#서울시대 #청계천판자촌에서강남복부인까지 #유승훈 #생각의힘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 쿠키:
“새는 구멍 미리막아 가스중독 방지하자”
-p.73, 연탄가스위해방지전시회 포스터 문구

국민학고 1학년 때의 기억 중에 가장 슬픈 장면 하나.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난생 처음 나의 짝꿍이 되어 그 맛에 가깝지도 않던 등하굣길을 즐거이 했던 것 같은데, 어느날 그 짝꿍이 안보이고 한동안 빈자리로 있다가 다른 아이로 짝꿍이 바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그 여자애 부모님이 시내에서 식당을 하셨고, 식당에 딸린 뒷쪽 방에서 온가족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어느 밤 연탄가스가 그 방바닥의 틈으로 새어나와 온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었고 모두 다행히 잠에서 깼지만 그애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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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세계에서 - 내란 사태에 맞서고 사유하는 여성들
강유정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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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과 그 이후 한동안의 기간은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의 커다란 생채기로 남겨질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서로에게 제공해준 잊힐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도 분명해보이고요.


이 연대의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강력한 연대의 시간과 그 공간, 빛들을 체험해낸 아홉 명의 우리라고 묶일 너들의 마음과 기억들이 오롯이 각자의 방식으로 써내려간, 내란 사태에 맞서고 사유하는 광장의 여성들의 속살거림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을 완독할 즈음에는 모두가 함박웃음으로, 하지만 여전히 남겨진 숙제로 마음은 묵직하지만, 어깨를 걸고 봄이 내려앉은 광장을 떨치고 일어날거라, 신앙처럼 믿었건만 여전히 헌재의 입술은 달그락 거리기 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 <다시 만날 세계에서>은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를 기억하며 통과하며 꿈꾸는 시간여행자의 일기장이자 연설문이자 또한 코인노래방이다 싶습니다.



  “자유란 우리가 선택하는 참여를 통해 실현되는 삶의 각주이다. 삶은 선택된 참여의 지평들을 통해 한 줄 한 줄이 쓰여 이야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참여를 가리켜 문화라고 부른다. 고독하게 혼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여 관계 맺는 것, 그 선택을 바로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를 선택하고, 향유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이 자유이다.”

  -p.22, 강유정 <빛의 호위, 다정한 서술자들의 연대> 中



바람과 상황에 마구 흔들리지만 끝끝내 제 몸을 녹여 불꽃을 사그라뜨리지 못할 촛불의 연대가 박근혜 탄핵 국면의 광장의 연대였다면, 손발을 휘저으며 익숙한 노래와 노랫말에 의미라는 에너지를 담아 응원봉의 색색깔의 빛깔로 광장으로 흘러나온 지금의 연대는 그렇게 사그라들기는 커녕 자꾸만 밝아지는 착시마저 경험케 합니다. 쉼을 공유하고 휴가를 공유하며 먹거리를 공유하고 감성을 공유하며, 그럴 자유를 자유롭게 선택한 광장의 그녀들이라는 응원봉들!



  “끝도 없는 ‘이해할 수 없음’ 이후에 나를 찾아온 감정은 공포와 불안이었다. 20세기 말에 태어난 내가 ‘계엄’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한국사 교과서뿐이었다.(중략) 그것이 살아 돌아왔다. 이미 장례를 다 치르고 유골함에 꾹꾹 눌러 담은 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갔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우리 앞에 생생하게 얼굴을 들이밀 때 느껴지는 당혹감.”

  -p.80~81, 유선혜 <깨진 유리 틈새로 번지는 노래를 받아 적는다> 中



그래서 이 내란 사태가 생산한 분노와 증오와 반목과 분열의 광장의 우리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든 헌재는, 아니 분명히 헌재는 탄핵 인용 결정문을 읽어내릴 것인데, 그 이후의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저 기쁘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할 그 진공의 시간같은 광장의 우리들은, 그녀들은 어떻게 이 연대의 맞잡은 손과 드높인 응원봉을 어떻게 하게 될까 궁금합니다. 또 미래의 우리들은 과거로 되돌이켜볼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기억해내고 교훈이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질까…



  “그래서 기적은 특별하지 않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한 명 한 명의 ‘우리’일 따름이다.”

  -p.210, 전승민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中



그래, 그때도 우리는 여전히 한 명 한 명의 우리일테니! 그저 고마운 동지, 친구, 너일테니!



#다시만날세계 #내란사태에맞서고사유하는광장의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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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리베카 머카이 지음, 조은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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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가득 메운 것이 깃털들인 것은 조금 집중해서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깃털들 사이에 단발머리에 귀로 머릴 넘긴 여성의 옆모습과 초록의 블라우스까지, 의뭉스레 눈 감고 입을 앙다문 그녀는 그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목의 말을 마음에 머금고서.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어쩌면 그건 우리의 잘못일지 모른다. 모두 깃털 하나만큼의 무게만 감당하려다 일을 그르친 것이다.”

  -p.10


이번 소설로 처음 만나는 리베카 머카이는 익숙한 이야기를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내지만 탄탄한 구성과 인물과 사건의 얄미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특기를 가진 작가였습니다. 여러 작품들이 수상작과 베스트셀러로 거론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다 싶어지는 부분입니다.


과거 룸메이트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현재의 인물이 파헤친다는 구조적 특성 상,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요리조리 오가고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통에 흐름을 따라가는데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내 그 특유의 장광설로 풀어내거나 스크루볼 코미디스런 대화씬이 이어지며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일어서는 파도에 올라타고 결론에 이르는 서핑을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해주는 꽤 만족스런 마무리를 선사합니다.


  “열여덟 살에게는 한 달이 몇 년이다. 탈리아의 죽음과 푸자의 밤마실, 오클라오마시티 폭탄 테러, 토쿄 지하철 테러, O.J. 심슨 재판, 보스니아 내전, 반 아이들의 차 사고, 이 모든 것은 어느 분주한 봄날의 소동이었고 심리적으로 특별히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p.316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어. 남자애들다. 어딜 가든 한데 뭉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지.”

  -p.469


리베카 머카이가 지금 펼쳐 보이는 과거를 향한 시선을 담은 이야기는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의 시대와 젠더, 그 시절의 고민과 치기가 담겨있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통해서 기억과 지각, 정의와 책임, 페미니즘과 젠더 역학, 과거의 무게 등의 복잡다단한 토론의 주제를 던져주는 구석이 다분합니다. 그래서 독자의 배경에 따라 이야기는 균열을 만들어내고 다르게 읽혀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결정하라고 강요하진 않지만 각자의 다른 스핀오프된 이야기를 기억하거나 재구성할 여지를 만들어줍니다.



#질문좀드리겠습니다 #리베카머카이 #장편소설 #조은아옮김 #황금가지

#IhaveSomeQuestionsforYou #RebeccaMakkai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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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길레프의 제국 - 발레 뤼스는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루퍼트 크리스천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에포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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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얼마 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프리 드 로잔’(로잔 콩쿠르)에서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그랑프리(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정말 여러 분야의 K-컬처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싶어지며 국뽕(!)이 차올랐습니다. 발레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또 그렇게나 손 닿지 않는 곳에 있기도 하다 싶었습니다.


  “1909년에 발레 뤼스를 만든 사람은 러시아의 임프레사리오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댜길레프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발레는 ‘러시아 발레’를 의미했다.”

  -p.11, ‘서문’ 中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가 열어젖힌 발레의 제국이 어떻게 그 전성기를 구가했고 현재에 이르는 패러다임을 확립해내었는지를, 이 책 <댜길레프의 제국>은, 책의 두께만큼의 성실한 조사와 재미있게 읽히게 써내려간 작가의 필력 덕분에 어렵지 않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뿌듯해지는 책이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는 뜻한 바를 어떻게 성취해야 하는지 알았고,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p.63


책의 초반에 펼쳐보이는 댜길레프의 영민한 경영자로서의 면모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다가 종국에는 깊게 끄덕이게 하는 성장 혹은 각성의 과정을 좇아갑니다. 무엇이 될 것이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의 인생 궤적으로 보여주는 댜길레프는 그렇게 뿌리로부터 다져진 토양 위에 러시아 발레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성장시켜내며 스스로가 되고자 했는 분명한 목표를 처절하고도 철저하게 이룩해냅니다. 이름하야, ‘댜길레프의 제국’...


물론, 그 과정에 굽이치는 역사의 격랑과 안무가, 무용수 등 여러 변수들이 좌절과 눈물을 안겨주기도 하였지만 끝끝내 극복해내고야 만, 우리의 댜길레프!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마지막 시기까지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장기적인 위험을 감수하며 계속해서 젊은 인재들에게 투자하고 음악과 디자인을 실험했으며 그러는 내내 교활함과 판단력을 버무려 카드를 섞고 패를 돌렸다.”

  -p.257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그렇게 승승장구할 것 같던 발레 뤼스도, 1929년 댜길레프의 돌연한 죽음과 함께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20세기에 남겨놓은 댜길레프와 그의 발레 뤼스의 족적은 이렇게 흘러흘러 수많은 발레트망을 만들어내었고, 그 중 하나인 저자의 손에 의해 다시 쓰여지기 까지 이른 것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발레와 사람과 시간의 이야기로 풀어내게 해준 댜길레프의 추진력을 빼어닮은 결과물로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애틋한 노력으로 쓰여진 ‘발레 전도서’는 책에 언급된 작품들을 유튜브로 검색해가며 하나씩 영상으로라도 만나보게 하는 호기심의 씨앗을 심어줬으니 그 결과는, 제게 한해서는 성공적이라 하겠습니다.


  “지난 25년간 나는 극장에서 새로운 “운동”을 찾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늘날 위험하게 보이는 나의 실험들이 내일이 되면 없어서는 안 될 것들로 여겨질 것임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p.311, 죽음을 불과 몇 주 앞두고 댜길레프가 <타임스>에 보낸 편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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