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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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은 프랜차이즈라기 보다는 간판만 공유하는 개별 동네 식당인거 같어.”


언젠가, 누군가 그랬습니다. 분식집 답게 여러 종류의 김밥들이 메뉴의 상단에 포진하되 밥류와 면류가 고르게 포진하며 누구라도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최대한 담고 있는 만물상 같은 개별 동네 식당. 그래서 직장이 있는 동네의 김밥천국 떡볶이 맛이랑 집 근처에 있는 김밥천국 떡볶이 맛이 다른 거였나 싶습니다. 간판만 공유하고 메뉴나 레시피는 그야말로 주인장 맘대로.


익숙한 듯 한 작가의 이름이라 소개글을 열어봤는데,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전혜진 작가. 스릴러, 호러 장르를 쓰는 작가라는 소개글에 순간 책의 제목이 ‘김밥, 천국 가는 날 (Kimbap, the day heading for heaven)’ 로 오독 할 뻔했습니다. 김밥에 들어있는 시금치 같은 초록의 책 표지는 열 가지 김밥천국의 메뉴들이 노오란 단무지 색으로 구분된 연작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인천 소재의 김밥천국에 머무르고 얽혀드는 이들의 이야기, 혹은 어쩌면 우리 누군가의 이야기들이 살갑게 들어차있습니다.


  “나는 그곳을 배경으로 어느 도시에나 있을 수 있는 인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천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 김밥천국이라는 이름과, 저 신포동 쫄면에서 시작해서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p.350, ‘작가의 말’ 中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걸 단어들을 보듬어 문장을 짓고, 문장들을 기워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세워가는 작가들이 대단하다 싶다가도, 하염없이 그 속내를 내보이는 부분에서는 묘한 동지의식 같은 마음이 생기고는 합니다. 이 책은 즐비한 메뉴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에 들려주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시작했습니다.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덕분에 열 가지 메뉴들을 맛보는 내내 작가의 그 허기진 마음과 따뜻하게 내민 손과 그저 물끄러미 바라봐주는 눈길이 느껴져서 좋았고 흐뭇했고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영주는 반쯤 먹었지만 아직도 따끈따끈한 오므라이스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할아버지가 상상해본 적 없을 미래를, 한 숟갈 더 입에 넣었다.”

  -p.110, <오므라이스> 中


  “수연은 문득 황상식의 장례식 육개장을 생각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마땅할 저 인연처럼, 결대로 찢어진 질긴 고기와 토란대, 숙주, 고사리 같은 섬유질이 질긴 채소들이 푹 물러 어러져 오래오래 끓여졌을, 고추의 매운맛과 파의 칼칼한 맛이 더해졌을 그 맛을.”

  -p.280, <육개장> 中


언젠가 부터 먹방이 유행했고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요리경연 프로그램도 그렇고, 어린 시절 엄마의 손맛과 마음이 깃든 소울푸드와 새벽 출근길 한입 베어무는 삼각김밥까지. 우리네 인생은 음식 이야기를 빼놓고는 풀어내기가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살아내는 공간의 이야기까지 버무린 <김밥천국 가는 날>은, 어느 사람이 고파서 허기진 날에 가끔은 땡기는 메뉴를 펼쳐 읽어보면 괜찮을 혼밥 같은 책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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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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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과 만든 전설적인 밴드 ‘산울림’으로 시작된 싱어송라이터이자, 오랜 라디오 디제이, 그리고 대단히 인상적인 역할로 출몰하는 배우, 김창완은 그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인장을 남기는 그야말로 만능 앤터테이너, 그 자체라 할만 합니다.


이 책 <이제야 보이네>는 1995년에 출간되었던 <집에 가는 길>을 30년 만에 재출간하는 것으로 추가로 새로운 글과 시 몇 편을 더했습니다. 30년이 지났지만 작가 말대로 여전히 싱싱한 풋사과 향도 나고 작가 개인의 이야기지만 함께 시간을 통과했던 독자들에게도 공유할만한 흔적이 된다 싶습니다.


  “저는 삶이 답을 구하는 기회가 아니라 질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p.7, ‘개정판 프롤로그’ 中


신기하게도 책을 읽어내노라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디제이 김창완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잔잔히 때로는 신나게 흥얼거리는 노래하는 김창완이 들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말하듯 노래하고 생각하듯 말하는 작가 특유의 톤이 문장으로도 살아나게 하는 그의 글들은, 그래서 읽으면 내내 글맛이 납니다.


책은 앞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총 4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작가의 인생에서 마주했던 아픔과 상처를 통해 내면과 외면에 남겨진 이야기를,

2부는 잃어버리거나 사라지고서야 발견하게 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3부와 4부는 작가 특유의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충고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도대체 어머니의 인생 굴곡과 내 삶의 일부를 이루는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은 어디서 어떻게 접혀지고 어디서 부딪치고 어떤 식으로 우리 가족의 과거와 미래를 결정짓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p.34


아버지의 죽음과 이에 대한 어머니 일기와 자신의 마음의 지도를 다소곳이 그려내는 말투는 예의 김창완이지만 그래서 김창완이기도 하다 싶습니다. 누구라도 마지했고 마지할 누군가 소중한 이의 상실 혹은 부재가 주는 그 마음을 위로하기 보다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법을 들려주는 그의 말과 태도가 지금을 지나는 저의 개인적인 이유로 더욱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노래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어머니의 노래는 거친 세상을 건너와 강가에 묶여있는 빈 배다. 그 배가 왜 거기 와 서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배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많은 세파로부터 안전하게 모셔온 남루하지만 고마운 배다.”

  -p.124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노래는 가끔 듣기도 했고 스마트폰 어딘가에 녹음파일로 저장도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래는 잘 기억 나지 않습니다만 하나의 기억나는 순간이 있는데, 초등학교 오륙학년 쯤에 아픈 저의 머리 맡에서 기도하시며 읊조리던 찬송가 소리였습니다. 지금에서는 어떤 곡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항상 돌아보고 떠올려보면  마음 한켠 뻐근하게 뭉클한 순간으로 내내 남아있습니다. 남루하지만 고마운 배..


  “감사는 만물에 보내는 나의 갈채입니다.”

  -p.322, ‘에필로그’ 中


그래서 김창완이라는 이름은 따스함입니다. 젊은 시절 불렀던 산울림의 노래는 당시는 파격적이고 발랄했지만 지금에서 들어보면 내내 베어있는 기운은 따스함이다 싶습니다. 오랜 시간 아침 라디오 디제이를 하며 청취자들과 소통하던 그 따스한 목소리가 그랬고, 이 책에서도도 삶을 관조하되 내버려두지 않고 다가가 보듬어주는 태도가 말과 글 사이를 부드럽게 오가는 듯 느껴집니다. 추가된 걸로 보이는 시들은 특히 그의 감성이 내내 아른 거려서 좋았습니다. 이웃집 아저씨 같기만 하던 김창완, 그가 이제야 조금 보이는 듯 합니다.



#이제야보이네 #김창완 #다산북스

#30주년개정증보판 #전방위예술가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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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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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소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제길, 그게 무슨 소리요, 여긴 모데란인데!

당장 정신 차리시오! 심장을 고르거나 썩 꺼지시오.

마음에 드는 심장을 선택하거나 자동 보도에 오르란 말이오. 한심한 작자 같으니!”

  -p.583, <마음을 앓는 이와 창고지기> 中


1925년 생인 작가 데이비드 R. 번치의 탄생 100주년을 비로소 국내에 소개된 그의 57편에 달하는 중단편들을 엮어낸 책 <모데란>은, 그래서 기이하지만 대단하고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긴 여운을 어김없이 남기고야 마는 작품들입니다.


마지막에 배치된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시집에서 발췌된 <마음을 앓는 이와 창고지기>에 이르면, 50여편의 이야기들은 모데란이라는 거대한 대지 위에 쓰여진 서사시가 되고 마지막 시는 마침내 이르른 계시록이 됩니다.


  “뼈르 작업할 때는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울리는 듯한 특별하고 특별한 고통이 따랐다. 마치 드릴로 1만 2천 개의 치아에 동시에 구멍을 뚫으며, 모든 드릴이 신경을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위이이아아아오오오…… 위이이아아아오오오…(후략)”

  -p.78~79, <그날 나비는 독수리만큼 컸다네> 中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보여주는 끝모를 만화경 혹은 지옥도와도 같은 문장들은 오감의 끝까지 자극해내며 드라마트루기 형식을 뛰어넘는, 4D영화를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피부를 덮은 모든 솜털들이 흔들리는! 과연 SF 매니아들의 컬트적 전설이라 불리우는 이유를 모를 수가 없는 작품들이 오롯이 들어차 있는 선홍빛 진국입니다.


  “그런데도 항상 누군가-어떤 세력이-현실을 구슬려서, 증명되었고 증명될 것들을 추측해야 하는 꿈과 같은 것으로 바꾸려 들지. 가장 명확한 진실에 꽃 한 송이를, 십자가를, 광휘를 두른 별을 올린 다음,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요. “

  -p.371, <경고> 中


번치의 소설들은, 그저 자극적인 표현으로 치가 떨리고 질리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숨은 의도로 혹은 대놓고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생각을 강요(!)합니다. 우리가 쌓아올린 역사와 그 폭력의 결과의 흥건한 자국들이, 누구의 죄과인지 어떻게 벌을 받을지 생각해보라고, 아니 벌 받아야 싸다고 대놓고 공격해버립니다. 평화를 가장한 폭력과 전쟁이 만연한, 누가보더라도 거짓인 지금도 세계 도처에 파다한 그 현장들을 예견하듯 고발합니다.


그리고 다시, 성경의 마지막에 위치한 계시록처럼, 번치의 마지막 생각에 도달한 말은 “심장! 심장!! 심장을!!!” 그렇게 외치듯 예언합니다.


#데이비드R번치 #모데란 # 조호근옮김

#현대문학 #폴라북스 #미래의문학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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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얼굴 - 얼굴로 본 인간 진화의 기원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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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인간 얼굴의 형성이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속성인 고도로 발달된 사회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인간과 인간의 친척뻘인 유인원의 얼굴이 되었다는 점은 이들을 다른 모든 고등동물과 분리시킨다.”

  -p.16, ‘서문’ 中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애덤 윌킨스의 2017년 작으로, 2018년에 국내 소개된 본이 새로이 개정되어 나왔습니다. 작가 소개대로, 이 책에서 애덤 윌킨스는 인간 얼굴을 통해 진화를, 혹은 진화를 통해 인간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서문에 언급된 대로, 인간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 관계를 통한 상호작용과 언어 사용에 기인하며 이런 인간의 얼굴은 진화의 산물임을, 얼굴의 발달과정, 유전적 기반, 얼굴의 역사와 두뇌와 연결짓기 등의 방식으로 나아가며, 인류 얼굴의 탐색을 선보입니다.


  “얼굴은 어떻게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아득히 먼 과거와 인간의 종에 대한 질문, 즉 (창조론자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인류의 진화에 대한 질문이다.”

  -p.26, ‘1장. 인간의 얼굴은 진화의 산물이다’ 中


기독교 문화권, 이런 표현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에서 여전히 갑론을박의 여지가 늘상 도사리고 있는, 창조론 vs. 진화론의 이슈를 이 책의 저자도 자유롭지는 못한 듯, 책의 곳곳에서 진화론 설파자는 기어코 창조론자의 양해(?)를 구하는, 드러내놓고는 아니지만, 제스처를 취해 보입니다. 아는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태신앙으로 호흡처럼 창조론자, 이것을 이론이라 칭하는 것도 여전히 어색한, 입니다. 그러기에 이 책을 대하는 내내 마음 한켠에 단검을 품고, 언제라도 이상한(?) 소리를 해대면 덤빌 기세로 책을 읽었습니다.


  “엄격한 사회 구조를 가진 이런 초기 문명들이 아무리 계급적이고 억압적이었다고 해도 초기 문명들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사회적 역할에 의해서만 정의되지 않고 개인마다 나름의 개성을 가진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타인의 얼굴에서 개인차를 깨닫는 능력은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감각의 부산물이자 기여자였을 수 있다.”

  -p.452~453, ‘9장. 얼굴 의식하기와 얼굴의 미래’ 中


진화론에 기인한 인류 얼굴의 변화를 논하며 저자는 말미에 미래의 얼굴을 추측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릴 적 어린이 월간지 류에 공상과학 부분의 기사(?)에서 봤던 미래의 인류의 얼굴 그림을 떠올립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얼굴은, 상대적으로 작아진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더 커져버린 머리, 특히 뇌를 포함하는 머리 상부,로 변화한다는 상상이었습니다. 엄청난 과학발달과 상대적으로 육체적 운동은 줄어들고 뇌의 사용은 더욱 늘어난 미래는 용불용설에 근거한 결과물로 그런 미래 인류의 얼굴로 탄생했다는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 관계와 언어를 딛고 시간에 올라탄 인류는, 그 얼굴들은 그렇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으며 변해갈 것이라 말합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대화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얼굴은 인간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데 언제까지나 필수적이고 안정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p.527, ‘이 책을 마치며’ 中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얼굴들을 무심히 스쳐 지나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얼굴의 가치, 언어를 넘어서는 그 언어적 얼굴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남겨질지 질문하게 하는 책, 그런 쉽지만은 않지만 여러모로 묵직한 생각의 제안을 던지는 책이었습니다.



*원제 <Making Faces: The Evolutionary Origins of Human Face>


#인간얼굴 #애덤윌킨스 #김수민옮김 #김준홍감수

#을유출판사 #진화론 #과학책 #유전자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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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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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사진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곤 이력을 읽어내려가는데, 우린 이미 구면이었습니다. ‘미술품 도난’, ‘모나리자 이야기’, ‘트로이 목마’ 등을 흡인력 있는 언변과 자료, 제스처로 눈과 귀를 사로잡던 TED의 강의들에서 이미 만난 사이였습니다.


미국 태생으로 여름방학엔 프랑스에서 문화와 예술을 누렸던 유년시절의 노아 차니는 유수의 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 건축사로 박사 학위를 땄고, 아니나 다를까 미술범죄 전문가였네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봤던 다큐멘터리 <이것은 강도다: 세계 최대 미술품 도난사건>의 몇 에피소드를 우연히 봤던터라, 그의 독특한 이력과 경력에 급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런던 내셔널갤러리 같은 곳에 강연하러 갈 때, 나를 그곳으로 부른 교수보다 나를그곳으로 데려다준 택시 운전기사가 내 글을 더 잘 알고 있으면 나는 성공했다고 느낀다. 예술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일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p.14, ‘들어가며’ 中


  “이 책에 인용문이나 참고 문헌이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의도적이었다. 미술을 알고 싶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기 때문에 주로 연구자와 학자들이 이용하는 인용문은 싣지 않고 간결하고 차분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p.337, ‘참고문헌’ 中


노아 차이는 이전 강의들에서 보여줬던 그의 태도 그대로 이 책의 출간하게된 이유를 명쾌하게,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드러내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 덕분에 이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들, 그러니까 미술역사, 미술사조, 미술기법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 특별히 조각에 대한 역사를 들려주더니, 자신의 특기(!)인 물건으로서의 미술작품에 대한 보관과 사건사고들을 흥미진진하게 친절하게 읽어(!)줍니다. 그가 언급했듯, 에릭 캔들 박사의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미술의 경제성과 그 미래적 전망에 이르는 너른 인사이트로 독자를 휘뚜루마뚜루 데리고 다니며 미술의 숲 둘레길을 거닐다, 어느 순간 오름같은 높이에서 조망해볼 수 있게도 해줍니다.


  “무엇에 빠져들어도 좋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찾고, 그렇게 여정을 떠나보자. 셋, 둘, 하나… 자, 이제 시작이다.”

  -p.334


국내나 해외 출장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는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그 지역 미술관들의 전시 프로그램들을 미리 챙겨두는 것은, 어느 때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름의 반대급부이자 반항심 같은 것의 발로였던 것 같습니다. 일만 하고 살 순 없다, 혹은 시키는 것만 하지말지어다! 같은 그런 소극적 이기주의자 되기의 한 방편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전시회도 실망해본 적은 감히 없었다 자부합니다. 왜냐하면 전시회에 가지않았으면 아예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였으니.


이 책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저자의 의도만큼이나 저 같은 ‘무턱대고 감상하기’론자에겐 더없이 소중한 뒷배 같은 책이다 싶었습니다. 책제목의 ‘도슨트’보다는 ‘걷기’에 더 방점이 찍혀지는, 발걸음을 가볍고도 즐겁게 해줄 이야기 보따리다 싶습니다. 여러 권의 미술관련 소책자들을 합체(!) 시켜놓은 책으로 여겨질만큼, 언제고 어디를 펴서라도 읽어보면 미술이라는 그야말로 입체적 대상의 다양한 면모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도록 손을 잡아이끄는, 은퇴하고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봉사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시는 어르신 같은 구석이 다분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아마도 은발의 굵은 웨이브의 단정한 미소와 눈웃음 너머로 또랑또랑 작품들을 들려주는 그런 분 말이지요.

다음 출장지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자, 그럼 어디로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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