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9월
평점 :
“먼저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틀어쥔 채 삶으로 답을 찾고자 한 사람이 있다. <참 좋았더라>를 쓰는 동안 내 앞에 놓인 생의 질문은 이것이다. ‘한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경지이자 한계에 이르는가?’
- p.299, ‘작가의 말’ 中
최근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수상하면서 이런 저런 예전의 인터뷰들이 올라와서 읽어보던 중, 가장 선명하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책을 쓰는 것은 어떤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단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중섭 화가의 뜨거웠던 삶, 그중에서도 예술혼으로 불타올랐던 통영에서의 시간과 관계들을 따라간 이 소설 <참 좋았더라>는 김탁환 작가의 특유의 잘 매만져진 문장들을 통해 더 없이 풍성하고, 그야말로 ‘참 좋았습니다!’
“스케치북은 이중섭의 분신이다. 잘 때도 머리맡에 뒀다가, 꿈에 매력적인 장면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급히 당겨 펼쳤다.”
- p.85
유강렬, 유택렬, 김용주, 전혁림, 김봉룡,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구상, 류완영, 최희순, 최영림, 박생광, 김환기.
그 당시의 기러기 아빠 신세이기도 했던 고달픈 삶과 주눅이 든 열정은 그나마 지인들의 지원과 그들과의 교유로 활기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도 분신 같은 스케치북을 언급하는 짧은 그 문장에서, 그렇게 온통 그림 생각뿐인 뜨거운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950년대 초의 부산, 진해, 마산, 통영을 오가며 마주치고 만나고 교유했던 예술인들로 그 당시의 분위기가 책의 페이지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습니다.
“오늘 삼십육 점째를 그리문 되갓구나.”
“점심 준비하까예.”
“먼저 들라우 내래 다 그리구 먹갓어. 뺑끼 가게부터 댕게오라. 화이트 두 통.”
- p.125
“물안개는 통영의 또 다른 매력이다. 안개가 밀려들면 강구안과 피랑은 물론이고 앞바다에 층층이 놓인 섬들까지 순식간에 사라진다. 미륵산 꼭대기에 올라서도 보이는 것이 없다.”
- p.183
김탁환 작가의 전작들에서 종종 마주했던 기억에서처럼, 이번 소설에서도 그 당시의 순간들을 눈과 코와 귀와 손길로 직접 체험한 듯 옮겨왔습니다. 풍경보다 더 큰 삽으로 떠다 놓은 듯, 전국 각지 방언들을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땅의 계절과 공기와 풍경들을 옮겨놓은 작가의 노고어린 단단한 문장들 앞에 서면 어느 순간 평면의 책에서 튀어나와 읽는 이의 눈과 귀를 쓰윽 훑어내고 지나가며 머릿속에 그 인물들과 그 풍경들을 그려낼 수 있게 해줍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네 사람은 행복하다. 섬에서 뻗은 나무가 바다를 건너와 과수원에 닿는다. 시공(時空)을 특정하면, 오직 그때 그곳에서만 행복하겠으나, 원근법을 무시하고 계절 감각마저 없다면, 영원에 이른다. 꿈이 아니라면! 꿈이더라도 깨지 않는다면!”
- p.258~259
책의 중간 중간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그의 시간의 대부분을 쏟은 열매들 일진데, 그림들이 그려지는 이야기나 그림 속 풍경을 화가의 삶과 생각으로 이야기에 스며들게 풀어놓아 몇 번이고 책장을 들추이며 보다가 읽다가를 번복하게 하여 감동스런 마음에 책읽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있곤 했습니다. 한동안 책을 덮고 창 밖에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고, 또 가까운 강변을 나가 걷게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힘은, 서사가 주는 감정은 여러 갈래로 다른 마음 속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은 어떻게 나를 이끌고 어디로 나를 이끌어갈까?’
<참 좋았더라>를 읽으며 내내 마음에 물음표를 그리며 떠다니던 생각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렇게 문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이래저래 흘러서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어서 감사하면서도, 또 어떻게 남은 생은 살아질까 그래서 그 나중에 홀로 세상 떠날 때 ‘참 좋았더라’ 하며 훌쩍 날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그렇게 되뇌이며 또 생각하며 다시 돌아 책표지의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혹여 내 남은 생에서 혹여 만날 일상을 무너뜨릴 상황에서도 태연히 그렇게 꽃잎을 날리고 꽃향기를 묻어내는 희망을 향해 발을 내딛고 또 살아내게 하시길 하나님께 기도해봅니다.
“이런저런 순간을 시로 적어두고 싶노라고. 아무것도 잃지않고, 아무것도 잊지 않고.”
- p.269
#참좋았더라 #김탁환 #김탁환장편소설
#이중섭 #이중섭의화양연화 #화양연화 #미드나잇인통영
#도서제공 #남해의봄날 #그믐 #서평단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