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걸작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3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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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금박 틀 안의 그 저주스러운 존재를  향해 손가락을 뻗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손가락을 뻗어 그 반짝이는 유리의 차갑고 딱딱한 표면을 건드렸던 때부터.”

  - p.17 <외부자> 中


이 무슨 극도로 감각적이면서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불가해한 문장들의 향연이란 말인가? 다시 마주한 러브크래프트의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살풍경들은 빛의 반사해서 독자의 수정체를 통과해서 망막에 상이 맺히고, 그 내용의 언어적 의미가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프로젝션되어 3D를 넘어 4D의 영상과 감각으로 재편집되는 데에 까지 이르러서야 제대로 러브크래프트를 읽어낸다고 해야 한다는, 감히 신념이라 부를만한 꿈틀거리는 에너지의 변환을 경험하는 체험적 독서다 싶습니다.


이 책의 첫 작품인 <외부자>는 어떤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 듯 무언가를 찾아 기어오르는 그 상황과 나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임에도 그 여운은 꽤나 깊고 다 읽고 나서도 명확하게 가늠할 수 없는 대상이 무작정 이야기를 마칠 수만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얼얼함, 제가 남겨진 느낌은 이 정도로 표현될 만 했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공간-나의 반복된 꿈에서 그처럼 끔찍하게 예시된 공간-의 소름 끼치는 비밀을 조금이나마 어느 정도 알게 되자 우리는 절벽으로부터 그 어떤 빛도 파고들 수 없는 암흑 동굴의 끝없는 바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걸어온 얼마 안 되는 거리 너머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지옥 세계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p.46 <벽 속의 쥐들> 中


  “내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일은, 인간이 머릿속의 모든 내용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한대의 검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지라는 평화로운 섬에 살고 있고, 멀리 여행하지 못할 운명이다. 다양한 과학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분절된 지식이 한데 묶이면서 현실에 관한 너무도 두려운 전망과 현실 속에 있는 우리의 끔찍한 위치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계시로 인해 미치거나, 혹은 그 치명적인 빛을 피해 평화와 안전을 찾아 새로운 암흑시대로 도망칠 것이다.”

 - p.50~51 <크툴루의 부름> 中


<벽 속의 쥐들>과 <크툴루의 부름>에서 만난 이 문장들이 어쩌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느낌 혹은 갈피를 잡는 단서가 될 만 하다 싶었습니다.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 굉장히 익숙한 문장들의 조합으로 보여주는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감각적 구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코즈믹 호러의 절단면이 되어줄 듯 합니다. 다른 말로는 ‘러브크래프티안 호러’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 접착식 밴드를 대일밴드, 액상 소화제를 활명수, 접착식 메모지를 포스트잇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이 분야의 시초 혹은 대명사의 고유명사가 일반명사화된 것과 같은 이치가 되겠습니다.  


이렇듯, 전혀 무해한 듯한 단어와 문장이 독자를 이끌어 무지의 심연이나 바닥 모를 동굴의 저 끝단까지 도착시키는, 아름답기까지 한 두려움의 증폭, 그 향연 말입니다. 그야말로 입은 벌리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지옥, 바로 그곳이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다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들, 개인적으로 만났던,은 큰 틀에서 성경의 계시록이나 예언서들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100여 년 전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그 당시는 그 당시의 눈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방식의 시선으로 그 작품들이 펼쳐보이는 이야기를 이해할 공간적 틈을 부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틈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 어찌해야할지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버린 그 무기력함이 끼얹어진 채로 독자는 그저 그가 펼쳐보이는 그 이야기 속을 그저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이미 예정된 일을 예언하는 선지자 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외치고 또 경고하는 그 이야기 속으로 그렇게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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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들이 희었을 때 - 새로운 시대의 탄생, 르코르뷔지에가 바라본 뉴욕의 도시
르 코르뷔지에 지음, 이관석 옮김 / 동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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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이성과 시가 공존하며, 지혜와 기획이 연합하는 분야다.”

- p.17

 

르코르뷔지에의 문장에 담긴 생각들을 읽노라면, 건축가 혹은 건축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이 책 <대성당들이 희었을 때>는 스위스 태생, 프랑스 건축가의 시선으로 1930년대 뉴욕을 바라본 일종의 기행문이라 여기고 그 여행길을 따라 가노라니 건축 비판은 기본이고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문화와 경제 등 사회전반을 그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 건축가, 아니 그의 인생 이면에 대한 호기심이 읽은 페이지가 쌓일수록 깊어져만 갔습니다.

 

여기서 나는 데카르트적 마천루의 진정한 화려함을 환기시키고 싶다. 각 사무실에서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더 많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기운을 북돋우고 격려하는 빛나는 광경을. 공간! 그것은 인간의 열망에 대한 반응, 폐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위한 이완이며, 높은 곳에서 저 멀리 무한하고 광활한 것을 바라보는 자아의 분출이다.”

- p.103

 

또 어느 문장들에선 건축물을 통해 인간 오장육부를 들어내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철학적 사색을 시적인 감각으로 문장화해내기도 합니다. 정말로 전방위적으로 두꺼운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하는 르코르뷔지에.

그를 처음 안 것은 일본 도쿄로 출장을 갔다가 들렀던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였습니다. 미술관의 컬렉션도 흥미로웠지만, 건물의 담백하고 효율적인 디자인에 마음이 갔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의 설계를 담당한 이가 다름 아닌 르코르뷔지에 였습니다. 그래서 도쿄를 들르게 되면 거의 매번 이곳을 들러서 전시 뿐아니라 건물의 안팍을 둘러보는 재미를 누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도 그 덕분에 찾아간 경우였습니다.

게다가 뉴욕은 마천루의 도시, 서 있는 도시인 맨해튼이라는 또 다른 재앙, 그 환상적인 재앙 때문에 매혹적이다.”

- p.152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가진 랜드마크는 대부분 고층빌딩일겁니다. 우리나라는 예전의 63빌딩이더니 이제는 잠실롯데타워가, 타이베이는 101타워,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두바이는 부르즈 할리파 등.

물론 당연히 눈에 띄고 그렇게 올리는 시대별 인간의 세워올린 과학기술을 대변하는 그 마천루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도 공존하는 것을 개인적으로도 늘 느껴왔던 바, 이 책에서 르코르뷔지에도 간파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환상적인 재앙을 마주한 감동 또한 놓치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는 그렇게 양면이 있습니다.

 

판결이 났다. 건설적인 제안을 하여 도시 지역 재건, 농촌 활성화라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축하자.”

- p.302

 

우리나라에서도 현재진행형인 도시의 팽창과 지역의 소멸은, 100여 년 전의 도시들에서도 이슈였다니 참 이상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르코르뷔지에의 문제 제기와 해법 제안은 영원히 해결불가의 난제인건가 싶어집니다. 여전히 도시라는 비효율과 낭비의 공간을 여전히 누군가는 뼈 빠지게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엄청난 낭비의 도시에 제안된 빛나는 도시개념은 아직도 미완인 채로 우리 도시인들은 24시간도 부족한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살아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르코르뷔지에의 생각들의 파편들을 만나고 나니 그 많은 필요와 사정과 요소들을 판단하고 제어해서 재조합하는 건축이 어쩌면 이렇게나 오지라퍼인 그에게 제일 적합한 수단이자 자리였겠구나 하는 자체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시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앞으로 변모해갈지 우려와 기대로 바라볼 발판 정도를 마련했다 싶은 생각이 드는 독특한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대성당들이희었을때 #르코르뷔지에 #이관석옮김 #동녘

#건축 #도시건축 #도쿄국립서양미술관 #슈트트가르트바이센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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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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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을 틀어쥔 채 삶으로 답을 찾고자 한 사람이 있다. <참 좋았더라>를 쓰는 동안 내 앞에 놓인 생의 질문은 이것이다. ‘한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경지이자 한계에 이르는가?’

- p.299, ‘작가의 말

 

최근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수상하면서 이런 저런 예전의 인터뷰들이 올라와서 읽어보던 중, 가장 선명하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책을 쓰는 것은 어떤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단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중섭 화가의 뜨거웠던 삶, 그중에서도 예술혼으로 불타올랐던 통영에서의 시간과 관계들을 따라간 이 소설 <참 좋았더라>는 김탁환 작가의 특유의 잘 매만져진 문장들을 통해 더 없이 풍성하고, 그야말로 참 좋았습니다!’

 

스케치북은 이중섭의 분신이다. 잘 때도 머리맡에 뒀다가, 꿈에 매력적인 장면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급히 당겨 펼쳤다.”

- p.85

 

유강렬, 유택렬, 김용주, 전혁림, 김봉룡,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구상, 류완영, 최희순, 최영림, 박생광, 김환기.

그 당시의 기러기 아빠 신세이기도 했던 고달픈 삶과 주눅이 든 열정은 그나마 지인들의 지원과 그들과의 교유로 활기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도 분신 같은 스케치북을 언급하는 짧은 그 문장에서, 그렇게 온통 그림 생각뿐인 뜨거운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950년대 초의 부산, 진해, 마산, 통영을 오가며 마주치고 만나고 교유했던 예술인들로 그 당시의 분위기가 책의 페이지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습니다.

 

오늘 삼십육 점째를 그리문 되갓구나.”

점심 준비하까예.”

먼저 들라우 내래 다 그리구 먹갓어. 뺑끼 가게부터 댕게오라. 화이트 두 통.”

- p.125

 

물안개는 통영의 또 다른 매력이다. 안개가 밀려들면 강구안과 피랑은 물론이고 앞바다에 층층이 놓인 섬들까지 순식간에 사라진다. 미륵산 꼭대기에 올라서도 보이는 것이 없다.”

- p.183

 

김탁환 작가의 전작들에서 종종 마주했던 기억에서처럼, 이번 소설에서도 그 당시의 순간들을 눈과 코와 귀와 손길로 직접 체험한 듯 옮겨왔습니다. 풍경보다 더 큰 삽으로 떠다 놓은 듯, 전국 각지 방언들을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땅의 계절과 공기와 풍경들을 옮겨놓은 작가의 노고어린 단단한 문장들 앞에 서면 어느 순간 평면의 책에서 튀어나와 읽는 이의 눈과 귀를 쓰윽 훑어내고 지나가며 머릿속에 그 인물들과 그 풍경들을 그려낼 수 있게 해줍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네 사람은 행복하다. 섬에서 뻗은 나무가 바다를 건너와 과수원에 닿는다. 시공(時空)을 특정하면, 오직 그때 그곳에서만 행복하겠으나, 원근법을 무시하고 계절 감각마저 없다면, 영원에 이른다. 꿈이 아니라면! 꿈이더라도 깨지 않는다면!”

- p.258~259

 

책의 중간 중간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그의 시간의 대부분을 쏟은 열매들 일진데, 그림들이 그려지는 이야기나 그림 속 풍경을 화가의 삶과 생각으로 이야기에 스며들게 풀어놓아 몇 번이고 책장을 들추이며 보다가 읽다가를 번복하게 하여 감동스런 마음에 책읽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있곤 했습니다. 한동안 책을 덮고 창 밖에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고, 또 가까운 강변을 나가 걷게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힘은, 서사가 주는 감정은 여러 갈래로 다른 마음 속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은 어떻게 나를 이끌고 어디로 나를 이끌어갈까?’

<참 좋았더라>를 읽으며 내내 마음에 물음표를 그리며 떠다니던 생각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렇게 문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이래저래 흘러서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어서 감사하면서도, 또 어떻게 남은 생은 살아질까 그래서 그 나중에 홀로 세상 떠날 때 참 좋았더라하며 훌쩍 날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그렇게 되뇌이며 또 생각하며 다시 돌아 책표지의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혹여 내 남은 생에서 혹여 만날 일상을 무너뜨릴 상황에서도 태연히 그렇게 꽃잎을 날리고 꽃향기를 묻어내는 희망을 향해 발을 내딛고 또 살아내게 하시길 하나님께 기도해봅니다.

 

이런저런 순간을 시로 적어두고 싶노라고. 아무것도 잃지않고, 아무것도 잊지 않고.”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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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사설 :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 에이플랫 장르소설 앤솔러지
김봉석 외 지음 / 에이플랫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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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이니 호러무비는 여름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기억을 떠올려봐도, 무서운 이야기의 계절은 밤이 길어지는 늦가을과 겨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외가댁에서 듣고야마는 귀신 이야기는 매번 들어도 그 소름끼치는 포인트는 이야기가 끝나고 현실과 대면할 때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구름에 달빛이 가리워지는 그 순간, 저녁에 많이 마신 식혜 때문에 모두 잠든 밤에 마당을 가로질러 홀로 화장실에 가야하는 그 순간, 푸세식 화장실의 그 아득하니 깊지만 무언가가 어른거리는 것만 같은 그 순간... 무서운 이야기는 그렇게 이야기의 잔상이 머리에 남아있는 채 현실에 발을 디딘 나 자신을 의식할 때였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 지어낸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내 이야기면 어쩌지 하는 그 순간 말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있다면 이미 늦었다. 이제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 p.55 <무시소리 이야기>

 

여섯 명의 작가들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담백한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이야기들의 면면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자꾸만 글자들이 단어들이 되고, 그렇게 모여진 문장들이 이야기로 변하는 그 순간들은, 끝나자마자 읽는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독자 스스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몰려드는 공포를 십분 이용해서 역으로 공격하는 타격감들이 쟁쟁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모아놓다니.

 

시스템이 아니라... 괴물이잖아....”

- p.239 <그렘린 시스템>

 

일상의 막연한 무언가가 섬뜩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는, 어릴 적 TV에서 즐겨봤었던 <환상특급>이라는 미국 시리즈물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몇몇 장면은 아직도 떠오르는 잘 만들어진 시리즈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환상특급>이 계속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공포는, 그렇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무렇지 않던 일상이 변모해서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해서,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사건사고의 이면에 어쩌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해서 대면하는 미지와 무지가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청자의 생각과 마음을 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 <요괴사설>은 반가운 유년의 무서운 이야기의 재현이면서 TV에서 방영되던 <환상특급>의 소설판이면서 또 영상물로 만들어서 그 상상력의 끝 모를 팽창으로 다시 마주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싶었습니다.

 

제 몸에서 저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거죠. 우린 그것들을 몸에 새김으로 더는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되었어요.”

- p.280 <문신>

 

무서운 이야기. 그 대면하기 싫은 상상력은 또 그렇게 무의식 속 공포에의 욕망을 부추기고 또 부추겨서 또 다른 이야기들로 각색되고 편집되어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의 누군가가 꼭 사람이라는 법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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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 -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400년 대만의 역사 드디어 시리즈 2
우이룽 지음,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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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 교사이지,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역사학자는 관심 있는 분야를 세밀하고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만, 역사 교사는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역사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 p.15 ‘머리말’中

이 책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역사학자의 집요하고 깊이 있는 특정 시기나 분야, 인물에 대해 톺아보는 역사서 라기 보다는, 현직 중학교 역사 교사가 독자들에게 교실에서 제자들에게 수업하듯 대만의 400년을 훑어내는 모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자의 선험적 데이터에 따라 지루하고 삭막한 국사 수업시간의 추억을 보유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비교적 흥미롭고 즐겁게 국사 수업을 경험한 저는 이 책의 이런 태도가 무척 흥미로웠고 읽어내는 내내 정말 교실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앉아서 완전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거의 단숨에 완독했습니다.

수업의 시작은 훨씬 옛날 옛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우족, 베이난족, 쩌우족의 신화를 통해 대만이 발딛고 있는 땅의 시작부터 들려주는데 이게 꽤 흥미진진합니다. 황당무계하지만 이게 또 데자뷰도 느껴지고 그 땅만이 지니는 고유성을 생각하게도 해주니 제법 괜찮은 시작인 셈입니다.

책은 시기별로 선사시대부터 반청항쟁기까지, 청나라 통치 시대, 일본 통치 시대, 중화민국 시대, 이렇게 4부로 구성되어있고, 이슈별로 장으로 묶어내고 있습니다.

“핑푸족은 청나라의 글과 법을 몰라 한족에게 완전히 놀아나고 있습니다. 한족의 관리, 투기꾼, 상인 들이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이런 악랄한 사기 행각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 p.119, 원주민 핑푸족에 대한 청의 약탈과 사기에 대한 조지 레슬리 맥케이 선교사의 분노

한반도의 상황과 다르지 않게, 대만의 역사도 주변 열강들이 넘보는 대상이었고, 당연하게도 청나라와 일본에 의한 통치시대를 거치게 됩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하고 무자비로 약탈하고 각자의 이익대로 나눠가진 열강들의 역사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바라보는 현재의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서있는 지평에 따라 또 다르게 보여지기도 합니다. 대만에 경우도 다르지 않고, 여전히 내부적으로 논쟁의 소지가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뉴라이트적 시각이 득세(?)하는 작금의 상황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쯤 원주민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개산이 아닌 침략, 무번이 아닌 토벌, 번해나 번란이 아니라 원주민이 자기 땅을 지키려고 벌인 신성한 전쟁이었다고 말입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 다양한 민족의 다원화된 역사관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디 대만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민족이 겪었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길 바랍니다.”
- p.126

개인적으로는 중학생 시절, 금기시 되고 이야기되길 쉬쉬하던 이야기들을 조심스레 들려주던 국사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제주4.3과 광주항쟁,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한국 군인들의 만행 등. 지금은 정리되거나 진행 중인, 사과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역사적 아픔과 어두운 부분들에 대한 인사이트를 열어주려 했던 그 선생님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정학적 위태로운 위치와 한때 수출대국의 명성이 지금은 시들해진 듯도 하지만, 여전히 TSMC의 반도체 그리고 대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엔비디아는 다시금 대만의 힘을 기억하게 하는 현재진행형의 증거다 싶습니다. 그리고 냉전시대를 지나 작금의 신냉전 시대를 통과하며 외교정책과 유연하고 막강한 문화선점으로 세계 선진국 진입을 노려왔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위치를 돌아보기 위해서, 대만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유의미하다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은 흥미롭게 대만을 만나보는 에피타이저로 꽤나 괜찮은 선택이 될 듯합니다.

미식과 쇼핑을 위해 찾는 대만 여행 전에 그 나라의 실체를 이해하고 방문한다면 여행의 재미도 배가 될 듯 하고.

그나저나, 조만간 대만 여행이나 출장, 일정 잡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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