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유 자이언트 픽
김빵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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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주기로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설 연휴기간이라 그런 주기에 닿아있는 친척들, 고향 선후배, 시리즈 영화 등. 자이언트북스의 자이언트 픽으로 내놓은 앤솔러지 첫 번째 책인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만난 것이 정확하게 1년 전이었습니다. 재기발랄 했던 첫 책만큼이나 고른 이야기적 재미와 가려 담은 문장들이 빼곡한 두 번째 자이언트 픽, <투 유>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다섯 명의 작가가 분명한 자기 재료들로 버무려 내놓은 다섯 작품, <좀비 라떼>, <시간과 자리>,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투 유>, <이방인의 항해>을 먹음직스레 플래이팅해서 제공합니다.

 

눈치챘겠지만 나도 감염자야. 너나 나나 공격성은 없으니 반만 좀비인 거지. 내가 반반을 엄청나게 좋아했거든?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짬짜면이나 탕볶밥. 피자 반반, 만두 반반, 갈릭 팝콘과 치즈 팝콘 등 무수히 많은 반쪽을 섭렵해왔는데, 보니까 둘 중하나가 꼭 먼저 동나더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언젠가 우리의 확률이 백이 된다는 뜻이야. 잡아먹히는 날이 오긴 올 거야. 치료제에든, 바이러스에든.”

- p.17, <좀비 라떼>

 

이제는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코로나 시절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는 <좀비 라떼>의 설정과 이야기들은 그 때 우리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를 묘하게 헤집고 나오는 묘한 긴장과 기대를 아우르며 두 개의 소리굽쇠처럼 이야기와 독자를 공명하게 합니다. 이럴 수 있는 건 어쩌면 잘 짜여진 대화와 상황묘사 덕분에 독특한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이내 이야기 속으로 쓰윽 빠져들 수 있게 때문일 듯합니다. 이야기는 가볍게 툭툭 흘러가지만 담아낸 정서는 제법 묵직한 구석이 있습니다.

 

나는 망설이다가 하나와 내 구명조끼를 끈으로 연결한 후 수영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쳐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쳤다. 살기 위해서, 새로운 빙하에 인사하기 위해서.”

- p.153,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마지막 남은 빙하를 보러가는 크루즈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새로운 빙하를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대하고 삶을 이어갈 새로운 희망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의 숨가쁨이 주는 묘한 감동이 내내 페이지의 여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불행의 이유가 있지만 또한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아낼 이유도 있으니, 그러니 함께 살아낼 이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일단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작은 든든함.

 

앤솔러지라는 제한된 물리적 길이는 어떻게든 독자들을 설정으로 얼른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일터, 다섯 이야기는 다른 재료들로 토핑을 두른 슈퍼수프림이나 콤비네이션 피자 같은 모양새이지만, 두툼하지만 담백하게 반죽된 마음이라는 도우를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들로 나뉘어있지만, 다 읽고 입 안에 남는 뉘앙스가 엇비슷하다 싶도록 여러 가지 의미로 폭신해집니다.

 

그 물류 창고에서 사람이 죽었던 건 알고 있죠?”

물류 창고에서 열네 시간가량을 근무하던 사십대 여성 노동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사건이었다.

- p.195, <투 유>

 

그럼에도 붕붕 떠다니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곳곳에 지금 우리의 시간들을 슬쩍슬쩍 품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위기, 노동자의 처우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바이러스와 백신에의 공포 등등. 그래서 책 제목 <투 유>는 구소현 작가의 이야기 제목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마음을 담은 엽서나 편지 같은 이야기들이기도 해서 인 듯합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지금을 잘 살아보자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그러지 못했던 과거에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는 잘 해보겠노라고 말입니다.

각양각색, 천차반별이지만 우리 안에 흐르는 좁던 넓던 그 마음의 강물 소리는 그렇게 하나로 이어져 바다로, 바다로만 흘러가야 할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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