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말 대신,그냥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볼게요.
P.34
때로는 의도와 상관없이 내뱉은 어떤 말들이 누군가를 난처하고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걸, 그로 인해 말로 빚을 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변변치 않은 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고른 말이, 못내 미안할 때가.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별 소용이 없어서, 말이 모자란다고 생각될 때가. 그런 때가 우리에게 몇 번쯤 있었다.
P. 50
그는 누군가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대회를 잘 인도하고 맺는 법을 알았다.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랄까. 대우를 바라지 않고도, 나서서 존중을 권했다. 그건 처지나 계급과 관련된 격식이 아니라, 인정이 많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태도였다.
P.164
슬픔은 힘이 세다. 금방 소거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보면, 대개의 일들이 슬프게 느껴졌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어쩌면 기억이라는 거, 추억이라는 거, 이런 거 모두 '슬프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랬다. 그게 아주 지난했던 시절이어도, 나쁜 일이라 다행이어도, 그냥 그 시간 자체가 그렇게 멀리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물이 찼다.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간단한 이유가 서럽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고 가는 감정도 결국 그런 것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가장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감정이어서가 아니고, 가장 무게가 나가서도 아니다. 시간과 관련한 모든 일에는 미약하게나마, 슬픔이 섞여 있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