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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 서유재 / 2016년 9월
평점 :
<학생에게 임금을>로 국내에 소개된 구리하라 야스시가 쓴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오늘의 상황을 회의하고 소시민적인 저항으로 반기는 드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시간강사이자 저술가이며 정치학자인 저자는 서른 중반의 나이까지 취직은 커넝 박사논문도 재심사로 밀리고 연애 2년 만에 결혼도 무산되고 연금생활을 하시는 부모님에게 저자의 연금 납부 독촉이 전가되면서 스스로 효자라고 자부했지만 결국 불효자가 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을 비틀어 꼬집으며 저자만의 새로운 격언으로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불황의 시대에 기업은 폐쇄하고 경제는 파탄이 난다. 비참한 노동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지만 실상은 불황이니까 해고는 어쩔 수 없고, 실업자는 저임금으로라도 일하고 싶어 하고, 온 국민이 단합하며 불황을 이겨내자며 일할 수 있는 데를 찾고자 한다.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고 복지 혜택은 물론 수당도 없는데 그저 열심히 일하라고, 무슨 일이든 일하는 보람은 있기 마련이라며 노동의 보람을 강조하고 선동하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굴절된 반인간적인 노동윤리에 반기를 들며 부채 사회 해방 선언을 한다.
누구나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 일 중 돈이 되는 일, 돈이 더 많이 되는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인간의 자격을 논하기에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을 달라는 말보다 그런 것만 일이라면 차라리 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14편의 다양한 에세이 속에서도 일관되게 노동과 소비로 만들어진 부채 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8시간 노동제나 주 5일 근무제가 아닌 노동 거부(노동시간제로)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모두 진심으로 절실히 일하고 싶어 할까.
오히려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해고가 되거나 일자리를 얻기 힘들 때는 돈을 받으면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아니,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일자리 찾기가 힘드니까 서로 도와서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쩌면 이러한 상호부조야말로 원래 노동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 아닐까.
모두가 춤추고 싶을 만큼 즐거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노동이 아닐까.
P.11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나 한 거야?
사회인으로, 성인으로 착실히 역할을 해낸다는 것, 정규직 일자리를 얻고 매일 괴로운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어른이야.
하고 싶은 일 같은 것만 해서는 안 돼.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잖아.
그런데도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니 다 큰 어른이 할 소리야, 그게? 그건 애들이나 하는 응석이라고.
당신은 연구가 재미있다든가, 산책 삼아 데모에 갔다 온다든가, 돈을 쓰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가난뱅이들의 변명으로 들리고 기분까지 나빠져.
어른들은 모두 괴로운 일이 있어도 참고 돈을 벌고, 그것을 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거야.
가난뱅이는 싫어. 정말 싫다구."
아무래도 내가 쇼핑을 가서 아무것도 사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P.47~48
동일본은 방사능 범벅이 되어 이미 부흥 같은 것이 가능하지 않은데도, "힘내라, 일본" 같은 구호를 남발하며 그 기반은 기족의 유대라고 떠들고 있다.
부흥을 위한 힘이 되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사능에 동요하지 말고 설령 병이 든다고 해도 일본을 위해 기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이상할 정도로 가족의 중요성이 선전되고 있다.
P.63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있는 것보다 자기 생에 만족하는 배부른 돼지가 되는 편이 오히려 더 좋다.
P.65
아아! 이것이 먹는다는 것인가. 이런 걸 쾌감이라 하는 걸까.
그 이후 나는 참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고구마든 뭐든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오면 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먹는 기쁨을 모르는 놈들이다.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엿한 사회인 되기’를 그만두어 버렸다.
P.69
솔직히 요즘에는 대 테러라는 말만 들어가면 뭐든 정당화되어 버리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것.
p.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