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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 - 무공해 자연의 맛, 소박한 삶의 의미
원숙자 지음 / 유씨북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을 무렵부터 남편은 우리 부부의 인생 제2 막을 준비하자고 했다.
우선 본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평생 꿈꿔왔던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또한 져버리진 않았다.
혼자 하는 것보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찾아보았고, 주거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씩은 꿈꿔봤을 귀농이나 전원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이 있다.
둘 다 도심에서 나고 자라 시골에 대한 기억이라곤 방학 때 놀러 간 시골 할머니 댁이 전부였지만
시골의 소박한 삶과 직접 농사지으면 수확한 작물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귀농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여기서 환상이라고 말한 이유는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귀농의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누 부부가 귀농을 준비하며 반도심, 반시골 생활을 시작했었다.
완전히 낯선 곳도 아니었고 고모부가 자란 고향의 옆 동네쯤에 땅을 사고 조립식 건물을 지어
주말이면 농장 생활을 하러 시골로 내려갔다.
고모부가 아직 회사를 완전히 그만둔 상태가 아니었기에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씩 터를 닦으며 농사일을 배우며 작물을 키워 나가는 것도 좋았을 텐데....
특정 과수나무가 워낙 유명한 산지다 보니 너른 밭에 많은 과수나무를 심어 농사일에 대한 버거움이 큰 탓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과의 화합과 그분들에게 같은 마을 주민으로 인정받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쉽지 않았던 것이 마을 주민들과의 화합이었던 것 같다.
가장 시급했던 저수지의 물을 나눠쓰는 문제에서부터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었단다.
처음 들어갈 때 당연히 인사치레를 하며 한마을 식구도 잘 받아주십사 부탁도 드렸지만 관계를 맺어가는 게 쉽지 않았단다.
주말에만 농장에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욱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씩 고모네 농장에 놀러 가며 간접적으로나마 귀농생활을 접하게 되었다.
농장일 이란 게 결코 녹녹치 않음을 알았고 조그마한 집 앞 텃밭을 가꾸는 일조차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힘이 들었던 건 벌레였다.
기겁할 정도로 벌레를 싫어하는 나에게 귀농이라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란 걸 몸소 깨달았다.
모기한테 한방이라도 물리면 살이 퉁퉁 부어올라 열이 나고 저리고 아픈 나에겐 집 밖을 나가는 자체가 곤욕이었다.
살다 보면 면역도 생기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될 거라지만
벌레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귀농은 나에게 환상 속의 그대일 뿐이었다.
이미 귀농에 대한 마음을 접었음에도 <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를 읽어보았다.
은퇴 후 일흔이 넘은 부부의 귀농생활이 궁금했다.
내가 느끼고 보았던 모습 외에 또 다른 귀농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저자의 남편은 우선 고향으로 귀농을 했다. 마을 분들은 대부분 안면이 있고 친척인 분들도 있었다.
귀농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마을 주민의 텃세는 없어 보였다.
저자는 주말에만 농장에 왔지만 남편은 매일매일 농장에 살면서 농장 일을 하다 보니
보다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봄부터 겨울까지 잠시도 쉴 틈 없이 농장 일을 하는 농부의 수고스러움을 저자는 담담하게 적고 있었다.
하늘만을 바라보며 자식 같은 농사일을 하며 90도로 굽은 허리 한번 피기조차 힘든 일에 대한 고단함도 있지만
저자 노부부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준 고마움과 논과 밭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농장일 하는 남편과 꽃밭 가꾸는 게 더 좋은 저자의 알콩달콩 귀농이야기 <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는
논과 밭을 경작하며 느끼는 땅의 풍요로움을 찬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저자의 소녀소녀한 맘 또한 엿볼 수 있다.
바쁘고 치열한 도시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한 번쯤 꿈꿔보지 않을까.
나 또한 꿈꿔봤고 간접적인 경험으로나마 녹녹치 않은 귀농생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데 그들에게 환상만을 심어주는 책은 너무 비양심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는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여유와 낭만을 주는 곳으로만 그리지 않아 좋았다.
농촌으로 오세요~를 권장하는 홍보 서적은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귀농을 꿈꿔본다면
<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씨앗을 뿌리고, 순을 솎아주고, 흙을 덮어주고, 지지대를 꽂아주고,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잡초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농사짓는 일은
아기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농사를 짓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그에 있을 것이다.
집을 짓다, 밥을 짓다, 하나하나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p.40-
농장은 우리가 택한 '공부의 길'이다.
땅을 파면서, 씨앗을 뿌리면서, 열매를 거두면서, 새소리를 들으면서,
저것 봐, 논에서 들려오는 저 개구리 소리...
한번 밭에 안으면 서너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그만큼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하며 밭일에 몰입하게 된다.
흙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농작물을 작살내는 일이 되풀이된다 해도
이왕 들어선 길, 어떻게 해줘야 농작물에 해가 덜 갈까를 생각하는 것도 몰입의 시간일 수 있다고 믿는다.
-p.70~71-
봐, 아직은 괜찮아,
꽃밭 가꾸고 우리가 먹을 양식 우리 손으로 키우고 오이, 호박, 가지 따고
주위에 천지인 나물 뜯어다 반찬해서 꽃밭이 환히 내다보이는 식탁에 앉아
우리가 담근 포도주 한 잔 곁들여 밥 먹는 시간이 있잖아.
봐, 책 읽고 음악 듣고 담소하는 시간이 있잖아.
내 생애 끝이 왔을 때, 해놓은 일 없는 것처럼 허무해하지 말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게끔 지금을 살자.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