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는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소멸, 노년, 자살, 사별 등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된다고 한다.
생전 처음 줄리언 반스의 책을 접하면서 솔직히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4백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이 저자인 줄리언 반스 자신과 가족, 친구, 죽음을 주제로 저자가 불러들인(?) 예술가들에 관한
일화로 채워져 있다.
20대 때 무신론자였던 그는 60대로 넘어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도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단다.
그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때로 죽음이 극화된 절체절명의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단다.
가족의 죽음과 역사 속 위인들의 경구를 통해 죽음을 깨닫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죽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책에 의지하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이유로 줄리언 반스는 작가와 작곡가 들이 남긴 기록들을 파헤치게 되었다고 한다.
아서 케스틀러의 <죽음과의 대화>에서 "난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죠."란
말에
죽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했던 자신의 부모님처럼 될까 봐 두렵다는 고백을 한다.
몽테뉴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에
줄리언 반스는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라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금 삶을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하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습관화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예기치 못한 때에 엄습해온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친해져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이다.
난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게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리석은 실수를 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
죽음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자기를 벗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예전같이 않은 체력을 느끼며 아픈 데가 점점 많아질 때... 이러다가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성큼 다가올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지인들의 부고장을 받았을 때...
우리는 이럴 때 생전 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문득문득 떠 올리면서도 우리 중 일부는 천년을 계획하고 있다.
죽음은 나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영혼의 의지대로 나의 육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육신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노화로 인해 그 기능이 다할 것이다.
아무리 현대 의학 기술이 나날이 발전한다고 해도 모든 장기를 다 대처해 나갈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육신의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세상을 보는 눈,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데 물질에 대한 욕심과 자식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면 죽음은 진정한 자유의 시작일까?
죽지 않고 자유를 만끽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삶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물질과 명예 같은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심지어 육신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마저 자유로워 질 때 비로소 죽음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고, 욕심을 비우면서 내일 사과할 일들은 처음부터 하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은 내일로 미루지 않고 즉시 감사해하면서 살고자 한다.
새삼 영화 속 명언을 다시 한번 떠 올려 본다.
오늘 현재(the present)는 소중한 선물(present)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