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생각 - 이 세상 가장 솔직한 의사 이야기
양성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 가장 솔직한 의사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저자 양성관은 브런치 조회 수 100만의 작가 중 한 명이다.

10년 전 첫 책을 낸 이후로 이번에 다섯 번째 책 <의사의 생각>을 출간하게 된 중견작가이자, 사람들에게는 '대머리 선생님'으로만 기억되는 의사이기도 하다.

책 속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슈바이처나 이국종 같은 의사도 아닌, 피가 얼굴에 튀고 환자가 숨이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의사도 아닌, 지독하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한 의사의 평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연령, 성별, 질병에 구애됨 없이 가족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해 주는 가정의학과 의사다.

대학시절 무슨 과로 정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간단한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에서부터 간암, 폐암까지 광범위한 질환을 볼 수 있는 가정의학과가 자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개원의도 아닌 월급쟁이 의사로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경기 불황으로 인해 혹시라도 퇴직 권고를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다이어터를 핑계 삼아 엘리베이터도 안 타고 5층까지 걸어 다니며 원장님(=사장님)을 최대한 피하고 다니는 소심한 직장인이다.

환자가 오면 코로나 걸린 환자일까 걱정되고, 그렇다고 환자가 안 오면 매출 줄어 직장에서 잘릴까 걱정이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환자 스무 명만, 오로지 100% 예약제로 진료하고 싶은 마음을 10년 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중이다.

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가 아니라, 편안한 의자에 비스듬하게 반쯤 누워서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어디가 아픈지, 밥은 잘 먹는지, 운동은 하는지. 삶에서 힘든 건 없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이나 난관은 뭔지 살피며 진료를 보는 가정 주의치가 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하려면 엄청 부자이거나 진찰료가 10배 이상은 올라야만 가능한 일이니 가슴에만 품고 살아가야 하는 불가능한 꿈만 꾸어본다.

대기 손님이 없을 때만 특별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한 번은 배가 아프다고 온 고 3 남학생에게 '인생에 찾아오는 다섯 번의 기회'에 대해 강연을 한답시고 꼰대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감기로 온 운동부 학생에게 인생을 말아먹는 '도핑'과 '승부 조작'의 위험성에 대해 강연을 해주며 멘토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현장에서의 부끄러운 실수조차 솔직히 밝히고 있으며, 세 평짜리 진료실에서 의사는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준다.

'모든 게 문제투성이였다'에서는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대형사고가 날 뻔했지만, 병원도, 담당 과장도, 그 누구도 아무 말이 없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점, 응급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한 의사의 판단 착오, 그리고 포괄수과제 도입으로 인한 진료 형태의 변화에 따른 문제점들도 함께 지적한다.

'그 검사 꼭 해야 돼요?'는 의사가 환자에게 검사를 권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가 검사(숫자, 또는 사진으로 나오는 검사)를 하자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병의 진단을 위해서이며, 검사가 병원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며,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법적 책임 공방 등에 대한 방어 치료가 되기 때문이다.


"대개는, 대충 한 95% 아니 97%(그 어떤 근거도 없는 막연한 추측이다)는 괜찮거든. 내가 환자나 보호자면 당연히 집에 가겠지. 근데 또 그 1~2%가 막상 터지면 100%거든. 의사 입장에서는 99% 확실해도, 그런 환자를 100명, 천 명 보니까. 그러면 꼭 몇 명은 문제가 생겨. 그러니까 의사는 무조건 검사를 하자고 할 수밖에 없지."

이렇게 의학은 불확실하다. 게다가 서로 입장이 다르다. 아이에게는 괜찮을 가능성이 99%이지만, 천 명의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는 그 1%가 열 명이다.

(174~175p)



'의사, 셜록 홈스를 꿈꾸다', ''바닥을 보다.', '따뜻한 엄마 손길을 그리며' 등을 읽으며 저자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 느낄 수 있었다.

의대를 진학했을 때만 해도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될 수 있는 명의를 꿈꾸기도 했지만 어느 과 하나 쉬운 것이 없었기에, 명의는 잊고, 적어도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의사는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만났지만 그들도 누군의 아빠, 엄마, 아들, 딸 들이다.

생계를 위해 의사를 하고 있으며, 환자들이 아팠던 몸을 잘 치료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밖을 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덕분에 나았다'고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환자나 가족들에게서 큰 보람을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짝 무겁거나 진지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 답답한 이야기, 코 끝이 시큰하는 이야기, 유쾌한 이야기들이 골고루 있는 책이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라 한다."

꿈에 부풀었던 20대 초반에 읽은 [닥터 노먼 베쑨] 서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아직 질병도 돌보지 못하는 나는 작은 의사조차 되지 못했으니, 책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기만 하다.

(26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