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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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기억에 남는 장례식이라면 외할머니와 친정아버지를 보내드린 거였다.

외할머니는 고등학생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집에서 돌아가셨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염을 하고 입관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던 때였는데 장지가 있는 선산으로 가는 길, 꽃상여를 타고 가셨던 외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과 노제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친정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모든 절차가 시스템화되어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의 장례절차는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유족들은 장례지도사의 안내를 받으며 품목을 상담받고 결정하면 되었다.

입관에서부터 발인, 화장, 납골까지 3일장을 치르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으며 모든 일들은 절차대로 진행되었다.

의식처럼 행해졌던 장례 기간 동안 아버지를 추모하는 시간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었다.

49재를 올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추모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어드렸다.

인류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바뀌기 어려운 것이 장례문화라는데, 장례문화에는 그 민족만의 내세관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 전통성을 강하게 따르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가 힘들 것 같은 장례문화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으며 안장 법에도 다양한 선택 항목이 생겼고, 스몰 웨딩이 있듯 스몰 장례도 치러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일반적인 장례절차에 따른 장례식보다 생전에 고인이 즐기던 취미가 반영된 방법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 부부도 가끔 우리의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함께 여행한 사진을 영상으로 틀어주거나, 평소 즐겨들었던 음악도 좋고 아들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 곡을 틀어주었으면 좋겠고, 장례식도 결혼식처럼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간소하게 치렀으면 좋겠으며, 단순히 고인을 애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고인의 삶을 추억하는 방식으로 장례식을 치러주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읽으며 죽음에 관해, 장례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인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 장례업계에서 일하게 되면서 직접 경험했던 장례절차와 다양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장의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장의사다 보니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차갑게 식어 뻣뻣해진 시체를 면도하는 일, 시체를 방부처리하는 일, 부패가 심한 시체의 냄새를 참아내는 일, 화장이 끝나 재가 되어버린 인간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 녹아내리는 시체의 지방인 인간 기름에 젖는 일 등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신 화장이라 일컫는 시신 꾸미기는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희생하고 예쁘게 꾸며서 살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내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유가족들도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길 원한단다.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장례문화와 관련된 일들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인류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바뀌기 어렵고 전통성을 강하게 따르는 것이 장례문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는 이런 관행(장례문화)가 없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시신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지, 산 자를 위한 '구경거리'는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고,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책도 죽음에 관한 책이었는데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지는 삶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내 삶에 대한 만족도, 후회하는 정도, 행복도 등이 결국 내 죽음의 질을 결정할 수 있으니 죽음에 대한 준비는 여한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창 살아가는 중에도 우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 내가 볼 때 좋은 죽음이란, 지금까지 하던 일을 잘 정리하고, 전할 필요가 있는 좋고 나쁜 말을 전하고,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좋은 죽음이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견딜 필요 없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시간이 왔을 때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지만, 전설적인 정신분석가 칼 융의 말대로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죽음과 맺는 관계는 오직 그 사람만의 것이다. (31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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