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호기로 움직이는지라 뭐가 뭔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시작한다.
20대는 객기가 넘치는지라 무슨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한다.
30대는 경험이 쌓이는지라 일을 하다 보면 길이 생기리라 믿으며 시작한다.
40대는 지혜가 제법 쌓인지라 겁이 없으니 나름대로 결과가 잘 되리라 확신하며 시작한다.
50대는 몸이 서서히 애를 먹이는지라 조금 있다가 생각해보고 답을 한다며 새로운 일의 시작을 주저하기 시작한다.
60대는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므로 남이 하는 일에 훈수를 둘뿐 자신이 직접 뭔가를 하기가 두렵다.
70대는 건강한 사람과 골골한 사람이 확연히 나뉘므로 몸의 사소한 변화도 심장이 벌렁거리니 무얼 하자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
80대는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므로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려고 한다.
90대는 혼자 다니기가 점점 어려워지므로 사소한 일도 몇 번씩 확인하고 다짐을 받고서 움직인다.
(P. 4~5)
이렇듯 나이에 따라 무언가를 시작하는 방식도 다르다.
저자 본인과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적은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살펴보면 일반적인 나잇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50대를 살아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중용'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그는 2011년도에 출간한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을 통해 대한민국에 동양 고전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많은 동양 고전 중에서 50대를 위한 책으로 '중용'을 선택했는데, 첫째, 중용이 도덕 설교를 늘어놓은 책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극단의 시대에 삶의 중심 잡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고, 둘째 대충 고민하다 어물쩍하게 타협하는 결론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인간의 한계 안에서 내리는 최선의 결론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한다.
중용(中庸)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말한다.
중용사상(中庸思想)은 극단 혹은 충동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도(道)를 택하는 유교 교리로 신중한 실행이나 실천을 뜻하기도 한다.
불교에는 중도(中道)라 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길, 바른 도리를 뜻하는 말이 있다.
'중간을 간다는 것'은 매 순간순간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치에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용기를 내는 과정이며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달성하지 못했을 때 불만족 상태를 느끼게 되고, 달성했지만 워낙 머무름이 짧아 다시 불만족 상태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살아가다 보면 목표를 잃을 때도 있으니, 불만족 상태를 경험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방향과 목표를 설정할 줄 알고, 목표를 따라가다 마주하게 되는 불만족 상태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목표 달성과 불만족, 실패와 성공이라는 상태는 함께 공존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는 그 어느 즈음의 중간이라는 상태에 머무른다.
목표란 언제가 반드시 달성되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보다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로서의 의미를 찾게 된다면 삶의 중심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때 끝까지 고민하지도 모든 방안을 검토하지도 않고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일을 서둘러 마치는 얼치기도 아니고 그냥 대충 넘어가려는 어물쩍도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고 다른 쪽이 무조건 나쁘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도 아니다. 중용은 인간의 진실에 따라 모든 것을 걸고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도전하는 길이다. 사람이 기우뚱하다가도 중심을 잡게 하는 삶의 무게추다. (P. 7)
1강에서는 '중용'이 쓰인 시대적 배경을 '극단'에 주목해서 살펴보는데 중용이라는 가치가 전쟁의 시대를 풀어가는 덕목으로 간주하는지를 살핀다.
소은행괴(해괴한 주장을 늘어놓고 괴상한 짓을 벌임)한 세상에서 중용이 광기화된 사람을 멈추는 제동 장치로서의 내용을 살핀다.
2강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모르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듯해도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하는 언행은 완전히 숨길 수도 없고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다른 사람이 모르니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아는 것이 은연중에 행동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영원한 비밀은 없기에 '중용'에서는 혼자 있을 때조차 세상이 다 보고 있다고 말한다.
3강에서는 '중용'처럼 사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공자도 중용대로 사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과연 중용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자신에게 조금도 거짓 없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으면 하던 일도 중도에 그만두기 쉽지만 진실하다면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끝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4강에서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국 한 걸음씩이 쌓여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상식적인 덕목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범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중용대로 살아가는 도리가 결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5강에서는 마음 근육의 중심 잡는 길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음도 확고한 기준이 서 있으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머리가 아플 수는 있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중용'에서 '중'은 기울어지지도 치우치지도 않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이고, '용'은 늘 있는 평범한 일상을 가리킨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로 감정도 흔들리고 기분도 들쑥날쑥, 의지도 강약이 있고 지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
감정이 흔들려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면, 모든 것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흔들림을 막을 수 있으니 상황에 어울리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하루 얼마의 시간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6강에서는 마음의 근육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기우뚱거리지 않고 곧바로 설 수 있는 삶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마음의 근육은 키울 때는 철저히 자신과의 대결이라면 삶의 근육을 키울 때는 싸워야 할 대상이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므로 다양한 삶 속에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삶에서 중심을 잡으면 기우뚱거리지만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7강에서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삶으로 들어서는 중용에 관한 이야기로 옳고 가치 있는 것의 실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중용이 아무리 좋은 덕목이라고 해도 무조건 덮어놓고 실천할 수는 없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용기만을 내세우면 만용이 될 수도 있다.
중용을 비롯한 유학에서는 'a 하지만 b 하지 않는다'는 형식을 제시하는데,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도움을 주더라도 너무 의존하여 자립심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8강에서는 중용의 논의를 바탕으로 진실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진실을 뜻하는 성(誠:정성 성)은 중용에서 매우 중요하게 논의되는데, 성(誠)이 천(天)이 운행하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에게 진실은 남에게도 진실이며, 내게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남에게도 그러하다.
내가 진실을 따라가며 성취를 맛보았지만 남은 진실에 어울리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진실은 내가 누리는 것을 남도 누리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진실을 만나려면 눈과 길을 열어야 하며, 마음의 눈도 열고 끊임없이 묻고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진실을 우리에게 자신의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준다 한다.
9강에서는 진실이 국가와 개인 차원에서 현실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진실을 삶의 틀로 담아내기 위해 구경(九經 : 아홉 가지의 규칙)을 제시하는데 정치 지도자가 천하나 국가를 통치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정치 지도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추진하면서 점검해야 할 체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진실은 허위와 가짜에 대해 절대적인 우위에 선다.
진실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10강에서는 효(孝)가 중용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맥락에 대해 살펴본다.
중용이 쓰인 시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가 그리 멀리 않았기에 죽은 자에게 의지하며 든든함을 느끼기도 하고 죽은 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제사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점 간소화되는 제사는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11강에서는 중용과 진실을 따르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천(天)과 사람(人)의 관계에서 천이 이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용이 쓰였던 시대에는 천(天)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관련을 맺었던 때로 천이 땅과 함께 만물의 어버이로 간주하던 때였다.
요즘의 정치는 신이 아니라 사람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면 된다.
12강에서는 중용과 진실을 뜻하는 성(誠)을 바탕으로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면서 필요한 지혜에 관해 이야기한다.
30대는 이립(사회에서 자신의 자신을 잡는 시기), 40대는 불혹(여러 길 중에서 헷갈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는 시기), 50대는 지천명(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계를 인지하는 시기), 60대는 이순(다양한 목소리를 듣더라도 차분히 듣고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공자는 말했다.
저자는 50대에서 6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요한 덕목으로 포용을 꼽았다.
포용은 나를 비우고 남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나를 세우고 남을 버릴 수도 있고, 나와 남을 모두 버릴 수도 있고, 남와 남을 모두 담을 수도 있다.
포용은 나만 옳은 것도 아니고, 남만 그른 것도 아니므로 포용하려면 주위를 편하게 둘러보며 다양한 일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