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이야기를 <매너의 문화사>를 통해 만나보았다.

이 책은 첫인사부터 굿나잇 키스까지, 소위 우리가 매너라고 부르는 행동 양식들이 상황에 맞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낯설지만 매력적이고, 익숙하지만 당혹스럽기도 해서 '매너'라는 긍정적인 행위로 평가받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때론 비양심적인 이야기들도 숨겨져 있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처음부터 까고자(?) 작정을 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유럽을 마치 '매사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클럽'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에 흠집을 낼 것이다!" 선언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눈앞에 드러나는 형식의 이면을 파고들어 '도대체 훌륭한 매너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과연 훌륭한 매너라는 게 존재하는지, 그저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된 정신적 울타리에 불과한 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유럽의 매너가 형성된 역사와 몇몇 엄격한 행동 규칙이 갖는 이른바 '미덕'이라는 것의 실체를 따져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럽인들의 행동 방식이 바뀌게 된 동기 중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의 그러한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결과를 보장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또한, 오늘날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을 '디지털 중세 시대'라 칭하며,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의 자화자찬과 악플러들의 장황한 험담들은 중세의 통제되지 못한 행실이 가상세계라는 새집을 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의 발전은 새로운 행동 기준을 탄생시키고, 달라진 생활환경은 새로운 사회적 능력을 요구한다.

인간의 존재 자체는 바뀌지 않으며, 인간에게는 '본래의 특성'이란 없기에 자신을 둘러싼 사회가 지향하는 곳을 향하여 나아가려 한다.

우리의 행동도 본질에서는 사회적 기분을 이행하려는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본질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배려하려는 마음에 있으므로, 진정한 문명과 진정으로 문명화된 몸가짐은 규칙과 본보기를 규칙처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전한 오성 (五性)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하고, 결정한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 문명인이다.

문명화된 대륙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계몽시대 유럽의 철학자다.

유럽은 정신세계의 발전을 선도하는 북극성으로 여겨지면, 세련된 문화로 세계의 다른 부분과 구별되었다.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기술하며, 유럽이 아니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야만적이고 문명화되지 못하였으며 거칠다고 주장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유럽 이외의 지역이 야만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가 바로 유럽과 같은 규격화된 상거래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계몽주의 철학자가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것이 딱히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모든 인간 공동체는 다른 동물 혹은 자신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다른 인간과 경계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모든 사회가 규정하는 '인간'개념의 의미는, 잠재적으로나 노골적으로나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일원에게 한정된다.

인간에게 외부인은 종류가 다른 인간이자 문명화되지 못한, 때로는 거칠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대상이며, 이 모든 성질을 '매너가 없다'는 한마디로 요약한다.

'인간답다'라는 말은, 곧 적절하게 처신한다는 뜻이며 상황에 맞는 몸짓으로 정해진 때에 정해진 말을 한다는 의미다.

p. 16~17

1530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이 예법서 <어린이들을 위한 예절 핸드북>은 예절이란 장르를 다룬 책으로는 최초이자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책이라 한다.

원래는 어린 왕족을 교육하기 위한 교본으로 이 얇은 교본을 썼다고 하는데, 몇 년 사이에 유럽 전역의 학교가 사내아이들을 교육하는 교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오늘날 '훌륭한 매너'라고 여겨지는 거의 대부분의 행동은 에라스무스 시대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오면서 계속 발전해오고 있단다.

'훌륭한 매너'는 애초에 귀족 계급이 자신들을 일반 민중과 구별하기 위한 도구로 개발한 것이었는데, 에라스무스는 "평범하거나 천박한 신분을 운명으로 태어난 자들은 예의범절을 갖추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그들의 복 없음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예법서의 교습 대상을 특정 계급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한다.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 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계층 간의 경계가 엄격했던 시절에는 '정확한' 인사법을 배우는 일이 엄청난 골칫거리였으니 인사예절을 '사회적 코르셋'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자 인사법, 악수 인사법, 키스 인사법, 포옹 인사법과 서로를 칭찬하고 친절을 베푸는 짜 맞춰진 인사치레까지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이 간소화되고 형식적인 인사 정도로만 남아있기도 한다.

적절한 인사로 첫 만남을 성공적으로 이끌길 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법서의 충고를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이러한 인사 방식이 지닌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된다면 사랑스러운 행동으로만 여겼던 인사가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 아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오른쪽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는데, 이 습관의 원래 주인은 로마 군인들이다.

그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다.

악수도 근본은 같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서 손에 칼이나 비슷한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악수가 인사법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유럽에서부터다.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확인하는 상징적 제스처로 활용됐다.

싸움이나 협상이 중재됐다는 의미로 악수를 한 것이다.

모자를 벗어드는 인사법은 중세 기사들의 풍습에서부터 비롯됐는데, 그들은 군주나 친구들 앞에서 적대적 의도가 없을 보여주기 위해 투구를 벗어들었다.

기사들에게 맨머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이었다.

모자를 드는 인사법은 역병이 창궐했던 이전 몇 세기 동안 더욱 사랑받았다.

사람들은 병을 옮기기 쉬운 볼 키스나 손 키스 대신 모자를 벗었다.

모자 인사는 다른 인사법과 비교할 때 확실히 위생적인 인사법이었다.

p. 47~48

중세에는 음주가 영적 생활에 속하기도 해 당시 수도원에는 술타령이 넘쳐났고, 프랑스 수도원에서는 매년 100일 이상 '술통 축제'가 열리기도 했는데 알코올음료가 이토록 사랑받은 데에는 깨끗한 식수가 부족했던 상황도 한몫했으며, 맥주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되기도 했단다.

만취는 오랫동안 유럽의 도시 거주자와 군인이 가장 선호하는 오락이었지만 대중적인 알코올 소비의 시대가 열리자 상류층은 과도한 음주를 비난하며 음주 습관을 바꾸었다.

교양 있는 시민은 적정량을 지키고 친밀한 사람들끼리 마시는 걸 선호했으며 귀족과 시민들은 아예 다른 기호식품을 선택함으로써 일반 대중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와 영국의 상류층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무렵부터는 '알코올중독'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데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빨간 얼굴의 애주가가 음산하고 공격적이고 범죄를 일삼는 알코올 중독자로 인식이 변화한다.

노동자 계급의 음주 형태가가 이런 인식 변화에 한몫하게 되는데 독주 한 잔에 고단한 삶의 걱정을 잊는 습관을 노동자의 전유물인 양 고착시켜 버렸고, 노동자의 음주 습관에 알코올중독이라는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습 전체의 도덕성 상실을 문제 삼기도 했다.

'영국 신사'는 주점에 모습을 나타낼 수 없게 되었는데, 주점이 노동자 계습이나 드나드는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란다.

예절이란 게 막 생겨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훌륭한 식사예절'은 유행하게 된다.

귀족을 겨냥해 쓰인 예법서들은 부를 나눠 갖게 된 시민계층이나 관료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일반 대중과 차별화해 자존심을 지키려 했으며, 목표 달성을 위한 방도로 궁중 예법을 따라 했다고 한다.

식기 도구 중 몇 가지는 중세부터 궁정 식탁에 올랐는데, 마치 식사예절과 같은 기능을 발휘했으니, 사용자의 신분을 돋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숟가락, 포크, 칼이 식기 도구로 널리 쓰이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럽 내에서의 차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유럽과 중국의 차이인데, 중국에서 칼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식탁 위에서 사라졌으며 음식은 주방에서 나뉘고 썰리고 요리되었으며 사람들은 젓가락만 들고 식사를 했다.

유럽인이 식사하는 광경을 본 중국인들은 '검을 들고 밥을 먹는 야만인'으로 여겼다고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궁정 문화는 극단적이라 할 만큼 까다로운 식사예절을 탄생시켰는데, 오늘날에도 식사예절은 사회적 차별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궁궁 에티켓을 연상시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면하는 데 있지 않다.

스타일과 매너가 중요하고 웨이터와 손님의 행동은 정해진 양식에 철저히 따르며 제스처와 몸가짐, 식기의 활용과 자리 배치 등이 엄격하지만 우아하게 통제된다.

'품위 있는' 행동을 규정하는 이 모든 코드들이 어우러진 한 번의 식사는 현실 속 일상이 아니라 규격화된 행사가 된다.

'자연 욕구와 분비물'편을 읽는 동안은 찜찜함과 역겨움을 느낄 정도였다.

중세와 근대의 일반인들은 배뇨, 배변, 배설 등의 자연 욕구가 오면 그 자리에서 용변을 해결해버렸는데 변기나 보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길에다가 노폐물을 버리거나 공공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런던 브릿지 인근 838가구가 하나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했으므로 대부분 템스강에서 용무를 해결했다고 한다.

중세 귀족들의 성에는 변소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처음부터 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화려한 화장실을 자랑거리로 삼아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했단다.

루이 14세 시절 베르사유에는 이런 변소가 모두 264개나 있었다니 변기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면류관 역할을 한 셈이다.

중세 전성기에 목욕과 세안은 목욕을 하는 동안 마음의 때가 벗겨지고, 죄가 씻겨 나간다고 믿어 양심의 정화와 동일한 선상에 있었다.

중세 도시에는 공중목욕탕과 사우나가 있었는데, 이런 시설들이 부분적으로 매춘에 사용되다 보니 14세기 들어 가톨릭교회는 '죄악의 심장부'란 이유로 공중목욕탕을 폐쇄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2백 년간 유럽에는 사회 최상류층도 개인의 청결에 큰 의미를 주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

손과 얼굴만 매일 씻으며 그만이라 생각했으며 머리에 이가 득실거려도 씻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다.

의복이나 향수, 향수가 뿌려진 가발 등을 활용하면서 씻어야 할 이유는 더 줄어들었다 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했고, 루이 14세의 침대에서는 벼룩이 발견될 정도였지만 불쾌한 냄새는 향수로 가리고, 얼룩은 파우더로 덮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처럼 씻는 행위는 오랫동안 위생 관념보다는 도덕관념과 연결된 주제였다.

중부 유럽 사람들이 '핀란드 사우나'란 단어에서 아직도 유곽의 붉은 등을 떠올리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옛날에는 다른 사람 사람 앞에서 운다고 해서 난처할 게 없었으며, 울 수 있는 능력은 연민과 품위의 증거였고, 지체가 높은 사람일수록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눈물이야말로 엘리트 계층이 '감정적일 수 있는 특권'을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였다.

하지만 '이성의 시대'라고 불렸던 계몽기가 도래하면서 과도한 감수성을 자제하라 가르쳤고 눈물을 억제하라고 가르쳤다.

19세기 교육 방침에서는 성별 간 엄격한 차별이 강조되었는데, 여자는 부드러움, 순수함, 덕스러움, 강한 모성애의 상징이었고, 남자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했으며 남성성, 활동성, 명예, 강인함 등을 갖추어야 할 품성의 우선순위에 놓았다.

19세기 말에는 감정 표현을 신경 질환의 일부로 보는 시간이 생겨나게 되면서 눈물은 의학적, 심리학적 현상으로 해석되었고, '과도한' 감정 표현은 부자연스러운 히스테리적인 상태로 분류했다.

옛날에는 동물이나 정상인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 다른 사회계층, 다른 종교의 신도 등 절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는 대상을 웃음의 원천으로 삼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사람들은 귀족 관료들의 사형 장면을 보며 웃었고, 18, 19세가 영국 사람들은 거인이나 난쟁이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19세기 영국 시장에는 아프리카인들을 전시하기도 했으며, 이 '검은 미개인'들은 시장 내 중앙광장으로 끌려와 날고기를 뜯어먹고 전사의 춤을 추도록 강요받았다.

남의 고통을 보면 느끼는 기쁨과 궁정 광대의 전통은 서커스랑 제도를 통해 민중을 위한 오락으로 살아남았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수많은 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멀쩡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일상을 보여주며 웃음거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성'과 '성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들의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인간의 행동들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중세에 모욕이란 말 그대로 상생 결단의 문제였기에 사회계층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명예를 훼손당하면 곧장 칼로 손을 뻗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누구보다 귀족들에게 폭력은 삶의 즐거움이었다.

중세 귀족의 행실은 폭력에 물들어 있었으며, 극기와 자제를 훈련받은 성직자들도 이런 성향을 완벽히 지우지 못했을 정도였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소풍 삼아 사형을 구경하러 갔는데, 사람들은 희생자의 비명과 저주에 마음이 사로잡혔고 대리만족을 느꼈으며 관중들 간에도 폭력이 횡행했다고 한다.

현대적 인권 해석의 틀에서 보면 타인의 고통에서 기쁨을 찾는 태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사회적으로 통제되어야 할 행위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수형이나 능지처참, 고문 등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진 않지만, 그렇다고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본능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액션 영화, 복싱, 프로레슬링 등의 공격적인 스포츠를 통해 서로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줄기차게 행사하는 모습을 관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문화 속 가상의 폭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에서 폭력은 빠질 수 없는 요소라 하겠다.

중세 사회에서 여자들은 기사들을 위해 준비된 상이었다.

기사들은 결혼을 통해 성의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결혼과 관련된 풍습은 결혼을 하나의 거래로 생각했던 의도를 드러낸다.

딸을 사위에게 '넘겨주고', 장인으로부터 아내를 '넘겨받는'것은 중세의 유물이다.

당시에 결혼이란 딸을 다른 남자의 소유물로 이전하는 절차였다.

19세기 사람들은 '욕망'을 말하고, 요즘 사람들은 '관계'를 말한다.

성을 말할 때 사용되는 표현의 변화는 오늘날의 성이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삶의 영역보다는 사회적 영역에 속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명화된 인간은 보편적인 관념에 따라 욕망과 사랑의 대상 혹은 증오의 대상에게 즉흥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

에로티시즘과 관련된 산업에서 모든 것이 물리적 요소 없이 시각적으로만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의 시각적 환경은 갈수록 더 많은 성적 자극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극이 충동적인 성행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사회적 행동에 대한 기준과 풍속이 행위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매너와 사회적 문명화가 인간의 본능적 행동을 제한하는 정신적 울타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지막 디지털 중세 시대를 통해 저자는 오늘날 인터넷 세계의 예절 지도서인 '네티켓'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전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바꾸었으며,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문명화에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공격적 행위들을 제어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의 자화자찬과 악플러들의 장황한 험담을 보고 있자면 중세의 통제되지 못한 행실이 가상세계라는 새집을 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직접 사람과 마주치고 소통하는 기회가 사라지면, 정중하게 행동하는 법과 공격적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덜 민감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이 소통하고 있는 상대의 성격을 자기 마음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상대의 성격보다는 자신의 바람, 욕망, 희망 등이 중요하게 반영되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판타지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구축하게 되고, 새로운 정체성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쟁터가 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니 소통하다가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

인터넷에선 아무런 제한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며, 상대의 반응을 그 자리에서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

여차하면 컴퓨터를 꺼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결국 말라죽고 말았다.

오늘날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화상이 구축하고 있다.

SNS가 나르시시스트적인 행동을 부추긴다는 조사와 연구결과가 넘쳐나는데 문제는 그들 자신의 미화된 자화상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착취하여는 욕망도 도드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가상세계 안에서 더 이상 감정 표현을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디지털 중세기'가 열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새로운 공격성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비록 말에 지나지 않은 칼이란 무기로 대화 상대를 내리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중세기'에서는 맞대응과 비아냥거림, 공경과 연민의 상실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위대한 역사철학가인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새벽녘에 날개를 펼친다"라는 말을 남겼다.

고대 사람들은 부엉이가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를 동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터넷 세계 속 시간에서 부엉이는 어디에 있는가.

짐작건대, 둥지에 앉아 두 눈을 꼭 감고 있을 것이다.

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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