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주오일여행자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이 끝나서 그저 울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이 끝났는데도 전혀 변함이 없는 일상의 답답함을 써내야겠다고.

외롭고 고립된 섬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여행으로, 나의 글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첫 문장은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한 거 있죠'였다.

길었던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첫 문장을 쓸 때만 해도 이렇게 길게, 쓸데없이 구구절절하게, 남들은 절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여행의 불행에 대해 늘어놓게 될 줄 몰랐다.

내 안의 지옥도를 펼쳐 놓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았고, 불행을 전시하고 암흑을 활짝 널어놓으며 괴로웠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든 나에게로 걸어와 주길 바라며 다시 섬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생각이다.

괴로울 땐 괴롭다고, 외로울 땐 외롭다고, 섬처럼 고립된 누군가에게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계속 편지를 쓸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의미와 존재의 결론 대신 내가 여행으로부터 얻은 삶의 작은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P. 207~209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의 저자 주오일여행자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긴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오면 스스로도 변화할 테고, 아마도 완전 새사람이 되어 근사한 인생을 살 게 될 거라는 기대를 맘껏 품고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막상 여행에서 돌아오니 남은 거라곤 텅 빈 통장과 여행 후유증뿐이었다 한다.

2년을 방랑하느라 돈은 다 써 버렸고, 보통의 세계에 다시 편입하는 건 더럽게 힘들었고, 여행을 통해 어딘가 성장할 줄 알았지만 여전히 가진 건 온통 질문뿐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에 대한 막막한 고민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긴 여행을 마친 수많았던 여행자들은 화려한 사진만을 남기고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정말 나뿐인 걸까?

왜 아무도 여행이 끝난 후의 삶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은 걸까?


이 책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있는지 모른 채, 어느 날 문득 아주 먼 곳까지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은 어른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진심 어린 위로가 담긴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역시 '여행만이 답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꽤 근사한 삶이 시작될 줄 알았지만, 여행 전보다 훨씬 불안한 여행 후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 역시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꽤 근사한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여행 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 후의 삶은 여행 전보다 훨씬 불안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이 정말 나의 첫 번째 생일이긴 했나 보다.

인생을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 보면.

p. 8



모두들 정말 중요한 건 여행 후의 삶이라고들 말한다.

저자 역시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여행이 끝나면 전과는 다른 삶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모든 여행이 항상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화려하지 않듯, 여행 후의 삶도 누군가의 성공담처럼 멋지지만은 않더라는 것이다.

망했다.

여행이 끝나서 비로소 인생이 망한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을 위한 노란 화살표가 있다.

이 화살표는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화살표는 돌계단 아래 슬쩍 숨어 있기도 하고, 도로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기도 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마다 불현듯 길 위에 떠올라, '그래, 잘 가고 있어. 이 길로 쭉 가면 돼'라고 속삭인다.

말하자면 나는 여행이 끝나면 내 인생에도 노란 화살표가 군데군데 그려질 줄 알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으로 힘차게 걸어가는 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 아무리 기다려도 인생의 화살표는 나타나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려 봐도 노란 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길 잃은 여행자처럼,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이다.

p. 25



저자는 스스로를 여행하는 에세이스트라 말한다.

여행이 끝나고 그나마 하고 싶었던 일이 '쓰기"였다고 한다.

'쓰기'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일고, 되고 싶은 것도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며 보냈다고 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여행 후 생긴 구멍 난 마음이 조금씩은 살살 메워지는 것 같아 스스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은 곳으로 날개 없이 추락하고만 있는 스스로를 추슬러 열병처럼 다시 여행을 떠난다.

최후의 결정적 한 발, 마지막 회심의 어퍼컷을 날려 주고 링 밖으로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통장에 남은 돈 탈탈 털어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래, 나 빈털터리 미친놈이다!

그래, 난 또 여행 간다!

끝난 줄 알았지?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체제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사람과 이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

역시나, 전자는 부드럽고 부유하게 사는 편이고, 후자는 죽기 살기로 덤비다 얻어터지는 가난뱅이 축이다.

나? 애석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후자다.

세상에 순응하기보단 여행으로든, 음악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저항하기로 선택한 삶도 있는 법이니까.

그건 아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는 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나눌 수 있는 거라곤 깊은 밤 속에 숨겨 둔 혼란뿐인 별들.

그래서 우리의 여행과 구걸과 연주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세계는 지금 캄캄한 밤이고, 밤이 다 그렇지 않은가.

P. 120~121



저자는 여행과 일상, 두 개의 고리를 부여잡고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만들겠다 각오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일상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현실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걸음으로, 자기만의 리듬으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멋진 여행을 떠났다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우린 뭐가 될까?

철없는 우리가 자신을 향해 항상 던지는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철없는 대답 또한 알게 되었다.(중략)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중에서)


노래를 부르면 인생을 바꾸기 위해 유랑하는 코린, 집을 팔아 산 스쿨버스에서 여행하며 살아가는 마크와 올리버, 돌아가는 길을 몰라 여행을 멈출 수 없는 나.

그래서 무엇이 될지, 이 삶은 어디로 가는지 끝없이 물었던 우리들은 결국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을 향해 던지는 그 질문들 덕분에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오늘 밤, 여행을 끝낼 용기가,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겼다.

이 비가 그치면,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p. 178~179


인생은 색감 좋은 30초짜리 광고가 아니다.

달콤한 광고 뒤에 나오는 시청률 2%의 60부작 드라마에 더 가깝다.

광고처럼 즐거웠던 2년의 여행이 끝난 뒤에는 60부작 드라마처럼 지루한 20년의 일상이 남은 셈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재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10부쯤에 유학을 떠난다며 도도하게 중도 하차하는 조연이면 좋겠지만, 끔찍하게도 우리는 주연을 맡았다.

지루한 드라마에 반전을 넣어보려 주인공인 '나'는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지만, 극의 반등은 여전히 어렵다.

주인공이 온갖 역경과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최후의 한 방을 날렸는데, 빗나간 헛방이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55부의 기회가 남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드라마를 바꿔보아야 하지 않을까?

P.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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