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콤한 밤 되세요 ㅣ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평점 :
저자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가 모두 허구라 말한다.
'드림초콜릿'이라는 호텔에서 일한 적도, 그런 호텔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자살을 시도한 적도 없고 정신병원은 근처에도 가본적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기함하게 될 엄마 때문에라도 다시 한 번 더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허구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달콤한 밤 되세요>는 불면증 환자 나명(나주임)의 좌충우돌 호텔 체험기다.
나명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서 불면증을 앓게 되고, 결국 불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도박중독자 박 사장의 꼬드김에 넘어가 '드림초콜릿 호텔'에 캐셔로 취직하게 된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아빠진 호텔에서는 매일매일 어이없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그 속에서 나명의 불면증은 서서히 치료되 듯 안정을 찾아간다.
호텔 캐셔라는 직업을 통해 호텔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군상들을 모습을 알 수 있는 '호텔 체험기'로서의 이야기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스스로 슬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나명의 이야기 속에서 유쾌한 웃음과 함께 먹먹한 슬픔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모든 이야기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을 믿기로 하겠지만, 용산역 앞 어딘가에 드림초콜릿이라는 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호텔이 있을 것만 같고, 이젠 퇴사하고 없겠지만 다소 엉뚱한 나명이 해맑은 표정으로 차 키를 꼭 받으려 애쓰는 캐셔로서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내용과는 너무도 무관한 달달한 책표지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드로잉메리의 작품이다.
책 표지만 봐선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기 십상이지만 내용은 앞서 밝혀 듯 달달하지만은 않은 달콤 쌉싸름하다.
드로잉메리는 인스타그램 1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데 <달콤한 밤 되세요>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아픔을 가슴에 담고 있지만 밝고 씩씩한 나명의 모습을 잘 그려준 것같아 더더욱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시체를,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할까 염려하는 갸륵한 마음이 모든 자살 시도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운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울 거예요,
그러나 절망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가서 죽어요.
그중에서도 호텔은 자살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에요.
무엇보다도 아들 밥 챙겨주려고 어머니가 현관문 열고 들어오다가 기함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지 않아요.
그것이 호텔이나 모텔, 여관 같은 곳에서 죽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이죠.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당신의 죽음은 산업재해입니다.
P. 102~103
오발탄 아줌마도 다른 폐쇄병동 환자들도, 다만 자기 안의 심연에 갇혔을 뿐, 적어도 남한테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욕망도 과하면 병이다.
거기에다 공감능력마저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글자 한 줄, 말 한마디로도 듣는 이의 가슴을 찢을 수 있는 '진상'이 된다.
정신병원 바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저 수많은 진상들의 정상성은 무엇으로 증명 가능할 것인가.
p. 137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들에게 이런 얘길 들려주었단다.
유언처럼, 마지막 남기는 아비의 유지처럼.
사민아,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어.
네 무덤 위에 꽃을 뿌리며 네 몫의 삶을 대신 살아주겠다는 건 남아 있는 자들의 자기 위안일 뿐이야.
네가 살지 않는 삶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란다.
P.166
근데 개새끼들이, 사람이 죽어나가도 괜찮은 줄 알잖아.
사람 함부로 잘라도 되는 줄 안다고. 그게 싫어. 존나게 싫다고.
그런 게 존나게 싫은 우리 같은 놈들도 이제 몇 안 남았소.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이제 끝났어.
근데 말이오. 우리 같은 미친놈들마저 다 잘리고 쫓겨난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소?
난 벌써부터 두려워요.
비상 버튼을 눌러줄 동료도 없고 안전 펜스도 없는 채로 지금도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다고, 저 안에서는.
그래, 리재가 그 이름 긴 당 들어가서 무얼 바꿨소? 법을 바꿨소? 하다못해 국회의원이라도 하나 맨들었소?
P.193~194
일부일처제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쓰레기 분리수거 지침도 무너지고, 심지어 물탱크와 문짝까지 무너지는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기이한 일이었어요.
이 호텔은 나에게 이렇게 호통 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민낯이다!
p. 261